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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청년회

[스크랩] 수월스님 - 마하연 이야기(무를 먹다 턱이 빠져버린 공양주)

작성자*혜공*|작성시간15.11.24|조회수41 목록 댓글 0

마하연의 수행자들도 한 치의 틈 없이 독사처럼 수월을 노렸다.

글도 모르는 선지식, 볼품없이 생긴 선지식, 나이도 새파란 선지식,

법문 한마디도 제대로 못하는 선지식.....

그러나 수월은 저 된장국 스님처럼 그저 말없이 일만 했다.

 

그는 마치 자신이 선지식임을 도무지 모르는 선지식 같았다.

낮에는 산에 들어가 나무만 하고 밤에는 절구통처럼 오도카니 않아 온 밤을 밝혔다.

인사를 해도 대꾸하는 법이 없었고, 쓸데없는 빈말에는 아예 돌아보지도 않았다.

 

참으로 수월의 삶에는 그림자가 없었다.

아니, 어느 때는 그림자만 있었고, 또 어느 때는 그 그림자마저 거두어버렸다.

그러니 마하연의 영리한 독사들이 아무리 수월을 물려고 틈을 노려도 그때마다 헛일이 되고 말았다.

삼독이 끼어 있는 눈에는 하루 내내 한 가닥의 번뇌도 일지 않는 수월의 모습이 아예 보이지도 않았으니 말이다.

칼 쓰는 법을 완성한 사람이 그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듯 번뇌 없는 수월은 어떤 독사도 신경 쓰지 않았다.

 

어느 날이었다. 금강산에 사는 멧돼지들이 떼로 몰려와 마하연 텃밭을 죄다 파혜쳐 놓았다.

그래서 수월은 나무하고 남는 시간에 그 텃밭에 채소를 가꾸었다.

번뇌 없는 손길로 가꾼 덕분인지 채소는 탐스럽게 자랐고 벌레도 생기지 않았다.

금강산에는 겨울이 빨리 온다. 수월이 기른 채소는 대중이 겨울을 나면서 먹을 김장을 담그기  위한 채소였다.

어느덧 법기봉을 뒤덮은 나뭇잎에는 가을이 내렸고, 수월이 가꾼 채소들도 줄기차게 자라던 것을 멈추고 가을을 맞고 있었다.

 

마하연에 공양주 스님이 있었다.

그가 하루는 수월이 가꾼 채소밭옆을 지나가다가 너무나 잘 자란 무에 눈길을 던졌다.

공양주는 그렇게 곱고 탐스럽게 자란 무를 아직 본 적이 없었다.

결국 한 입 베어먹고 싶은 충동을 이기지 못하고 팔뚝만한 무 하나를 쑥 뽑아들고 입을 크게 벌렸다.

그 순간 공양주는 자지러지는 듯한 아픔을 느끼고 저도 모르게 물었던 무를 내던지고 말았다. 턱이 빠져 버린 것이다.

 

밤새 끙끙 앓다가 겨우 잠이 든 공양주는 꿈속에서 산신을 만났다.

산신은 몹시 화가 난 얼굴을 하고 큰소리로 꾸짖었다.

" 그대는 그 무가 어떤 분이 기른 무인지를 몰랐더란 말인가. 어리석은 그대 때문에 나까지 죄를 짓게 되었구나!"

 

잠에서 깬 공양주는 두렵고 무서운 마음이 들어 그대로 누워 있을 수가 없었다.

수월이 잠을 자지 않음을 잘 알고 있던 공양주는 곧바로 조실 스님의 방으로 달려가

눈물을 흘리며 참회하고 더듬거리며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수월은 공양주를 데리고 산신각으로 갔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 뭐 그깐일로 그랴 " 그러자 공양주의 턱은 감쪽같이 나았다.

 

이 이야기는 '삼한의 조실' 이라고 일컬어지는 나옹스님에 얽힌 이야기를 생각나게 한다.

중국에 들어가 임제선의 맥을 이어 온 나옹은 공민왕의 간청을 물리치지 못해 신광사 주지가 되었다.

신광사는 나라의 중대한 일들을 결정하는 왕실에서 운영하는 큰 절이었다.

 

주지로 간 지 얼마 되지 않은 1362년 겨울, 홍건적이 갑자기 쳐들어와 임금과 백성들이 모두 피난을 갔으나

나옹은 많은 스님들과 함께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한가롭게 지냈다.

때때로 수백의 홍건적들이 떼를 지어 신광사로 쳐들어왔으나 태연히 맞는 나옹에게 그들은 절까지 올리고 물러났다.

그러나 대중은 불안하여, 나옹에게 몇 번이고 난을 피해 떠나자고 졸랐다.

나옹도 하는 수 없이 대중의 뜻을 따르기로 했다.

그날 밤이었다. 어떤 신인이 의관을 갖추고 나타나 나옹에게 말했다.

" 스님께서 떠나시면 이 절은 없어지고 말 것입니다. 스님께서는 뜻을 굳게 가지소서."

 

이튿날 나옹이 도량을 돌며 살펴보았더니 지난 밤 꿈에 보았던 신인의 모습이 바로 토지신의 모습과 같았다.

나옹은 대중과 함께 끝까지 신광사에 남아 쳐들어온 홍건적들에게 자비를 가르쳐주었다.

토지신과 산신은 이름은 다르지만 같은 신이라는 점에서 다를 바가 없다

이 이야기는 끝없이 푸른 하늘에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별 무리가 모여 살듯이,

번뇌 없는 성자들의 세계에도 수없이 많은 가지가지 중생들이 행복을 노래하며

살고 있음을 귀띔해주는 이야기는 아닐런지.

 

이 일이 있은 뒤 수월은 바람처럼 금강산을 떠났다.

 

 

출처 - 물 속을 걸어가는 달 - 김진태 지음 - 학고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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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원문 : 단군선원 천지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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