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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성경....교육자료1

작성자거짓선동 out !!!|작성시간16.12.20|조회수86 목록 댓글 0
이 글은 언론의 관련기사, 추천 참고 문헌, 각종 시사 사전 등과 제가 인지하고 있는 부분들을 취합하여 작성한 글입니다.

앞서 통혁당 사건을 서술했을 때,
계보상 인민혁혁당(인혁당) 사건이 앞서기에 먼저 다루려고 했지만, 논란이 있는 사건이라서 그냥 넘어 갔었습니다. 혼란을 드리는 것 보단 차라리 다루지 않는게 더 좋을 것 같았어요.

통혁당 이후 남민전 글을 쓰기로 맘 먹고 준비를 하다보니,
결국 인혁당을 빼고는 안되겠더라구요..
그래서 인혁당을 한번 언급해보려 합니다.

구체적인 사실들과 명확한 정황이 있음에도 시간이 흘러서 해당 사건들의 진위여부가 논란이 되는데엔,
좌파 정권들이 '과거사위' 등을 이용하여 좌파들의 요구를 수용해 왔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상과 정통성이라는 부분에 흠결을 남기고 싶지 않았거나, 북한에게 이쁨을 받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찌되었든, 인혁당 사건의 실체와 진위는 앞으로도 많은 시간이 지나서 국내 좌익척결이 완료가 되어서야 명확히 기술 되리라 생각하고,
국내 종북 계보를 정리해본다는 차원에서 표면적인 것들만 나열해보겠습니다.

#. 1
인혁당 사건은 두가지로 분류가 됩니다.
보편적으로 인정되어지는 개념으로 간략히 정리해보자면 아래와 같습니다.

#. 2
1차 인민혁명당 사건.
1964년 8월 14일, 김형욱 중앙정보부 부장은 도예종, 양춘우 등과 언론인, 학생 41명을 검거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이를 통상 '제1차 인혁당 사건'이라고 불러요.

중앙정보부에 따르면 "이들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노동당으로부터 지령을 받아 반정부 조직인 인민혁명당(인혁당)을 결성하여 각계 인사를 모으면서 국가 사변을 기획했다"라고 했습니다.

#. 3
2차 인민혁명당 사건.
1973년 10월부터 시위 등을 통한 박정희 정부의 유신 체제에 대한 반대운동이 본격화되었습니다.
이러한 와중에 1974년 4월 3일 저녁, 박정희 대통령은 '민청학련이라는 지하조직이 불순세력의 배후조종 아래 사회 각계각층에 침투해 인민혁명을 기도한다'는 요지의 특별담화를 발표하고,
민청학련과 관련된 일체의 활동을 금지하는 긴급조치 제4호를 공포합니다.

4월 25일, 중앙정보부는 민청학련 사건 수사상황발표에서 민청학련을 '공산주의 사상을 가진 학생을 주축으로 한, 정부를 전복하려는 불순 반정부세력'으로 규정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긴급조치 제4호 및 국가보안법 등을 위반한 혐의로 1천 24명이 영장 없이 체포되고,
그 중 253명이 군법회의 검찰부에 구속송치되었습니다.
5월 27일, 비상보통군법회의 검찰부는 민청학련 사건 추가발표에서 민청학련의 배후에 인민혁명당 재건위원회가 있으며, 이들이 인민혁명당을 재건해 민청학련의 국가 전복 활동을 지휘한 것으로 발표했다.
소위 인혁당 재건위(제2차 인민혁명당) 사건입니다.

#. 4
위의 사건개요는 제 생각이나 제가 가진 지식을 기반으로 하지 않았습니다. 서두에 밝혔 듯 현재 보편적으로 인식되어지는 개요입니다.

#. 5
좌우를 대표하는 박근혜 대통령과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을 보면 인혁당에 대한 인식의 차이를 확실하게 볼 수 있는데요.

2002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서 인혁당은 조작된 사건이라고 단정지었고,
2005년 국가정보원 과거사건 진실 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과거사위) 또한 조작이라고 결론을 내게 됩니다.
반면에 박근혜 대통령은 "가치가 없고 모함이며 진실성이 없다"라고 주장했어요.

당시 외신들도 인혁당 사건에 대하여 우리 정부를 비판하는 기사를 실었지만 해당 기사들의 원문을 보면,
사건의 실체보단 민주주의적 가치관에서 바라본 유신과 장기집권을 비판하는 것이므로,
이러한 외신들을 들어 인혁당 사건을 조작이라고 하는 것은 선동이라 생각합니다.

#. 6
1차와 2차는 완전히 다른 방법으로 접근해야 실체를 파악하는 것에 도움이 됩니다.

1차는 실체가 있었던 사건이며,
2차는 당시 사법부의 무리수와 절차적 억지가 틀림없이 존재하고, 당시 정부의 과도한 대응도 분명히 있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박근혜 대통령께서도 직접 사과를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2차 사건이후 연루자들의 활동을 보면 일정 부분은 우리 우파적 입장에서 마냥 '조작'이었다라고 인정하기엔 무리가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당시 1차 사건에 연루되었던 박범진 전 국회의원은
"당시 인혁당의 강령 내용은 민족자주적인 정권을 수립해서 북한과의 협상으로 통일을 시도한 것이었다. 위에서 아래로 관리하는 지하당이었으며, 2005년 국정원 과거사위의 발표처럼 지하당이 아닌 이념 서클이었다면 구성원을 비밀로 할 필요가 있었겠느냐"라는 반문으로 실체를 인정했습니다.

인혁당 사건의 실체를 알아보기 위해선 반드시 언급해야할 분이 계시는데요.

[보수가 이끌다-한국 민주주의 기원과 미래]의 저자 안병직 교수님입니다.
이 안병직 교수님의 의견을 중심으로 인혁당 사건을 한번 들여다 보겠습니다.

#. 7
1차 사건은 북한과의 관련성이 명백합니다.
남파간첩 김영춘에 포섭된 도예종, 이재문, 빨치산 출신 박현채 등이 조선노동당을 기반으로한 정강에 따라 62년 1월에 조직된 지하당입니다.

일반적으로 '지하당'이라고 하면 조선노동당의 지령에 따라 활동하는 비밀조직을 뜻합니다.

이후 인혁당은 64년에 검거되었고 이와 같은 사실은 김대중 노무현 정권에서도 부인되지 않았어요.
즉 실체가 있다는 뜻으로 이해됩니다.
안병직 교수님은 이 빨치산 출신 박현채를 만나 좌익 활동을 시작하게 됩니다.

#. 8
이제 논란이 많은 2차 사건을 보겠는데요.
1차 사건들의 주요 가담자들은 다시금 유사한 투쟁에 나서게됩니다.

도예종은 73년 2차 인혁당 재건에 나섰고,
우동읍 김배영은 1차 사건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뒤 월북을 했어요. 이것만 봐도 이적성이 명확하죠.
그리고 이재문, 임동규 등은 79년 공산주의 폭력혁명 조직인 남조선민족해방전선준비위원회... 즉 남민전 활동을 시작합니다.
바로 이 부분 때문에 통혁당 이후 남민전을 다루기 위해선 인혁당에 대한 이해가 필요해요.
이러한 관련성을 쏙 빼놓고선, 남민전을 반독재 투쟁의 정의라며 미화하고 포장하는게 오늘 날 좌파들의 실체거든요.

차후 남민전에 대해서 자세히 살펴보겠지만,
간략히 말하자면 남민전은 대한민국에서 공산혁명이 성공하면 북한에 지원을 요청하여 적화를 달성한다라는 계획을 모의한 반국가단체에요.

조직을 상징하는 깃발, 즉 남민전의 전선기를 보면 '사회주의 혁명의 희망'을 뜻하는 붉은별이 그려져 있어요.
이 깃발은 2차 사건으로 사형이 집행된 도예종 등 소위 8열사가 입었던 내의를 염색한 천으로 만들어졌습니다.

#. 9
안병직 교수님은 저서를 통해 건국 후 60년 동안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룩한 보수 우파세력의 발자취를 뒤돌아보면서 민주화운동을 종북주의와 분리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개념을 조금 정리하셔야 하는데요.
제가 이해하기에는 "종북주의자를 처단하고 척결하는 것이 진정한 민주주의다" 입니다.

즉 국민이 순수하게 갈망하여 실천에 나서는 민주화운동과 불온 세력의 선동에 의하여 촉발되는 민주화운동은 분리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수님의 주장대로라면 그간 우리니라의 민주화운동 중 순수성이 결여되는 경우가 분명 있었다는 것이죠.

안교수님은 62년 서울대 대학원 재학 당시,
인혁당 핵심 가담자인 박현채 교수의 지도 아래 사회주의자가 됐다고 고백합니다.

안교수님 선배인 박현채는 6.70년대를 대표하는 좌파 경제학자입니다. 박현채는 6.25때 북한의 인민군이 패하고 철수하자 16세에 산으로 들어가 2년동안 빨치산 활동을 벌인 인물이에요..
참 이해가 되지 않는게 어떻게 살아 남아서 서울대 교수까지 될 수 있었을까요..

아무튼 서울대라는 소속과 교수라는 사회적 지위를 이용하여 후학들을 상대로 의식화 공작에 앞장 서온 인물입니다.

#. 10
2차 인혁당은 1차 사건 연루자들이 73년에 재건한 조직입니다.

당시 법원은 2차 인혁당에 대해 "북한의 소위 인민혁명 수행을 위한 통일전선에 영합, 공산국가 수립을 결의해 인혁당을 조직한 뒤 민청학련을 조직해 학생 데모, 대중 봉기를 유발토록 조종하는 등 내란을 모의했다"고 결론 지었습니다.

정부는 저들에게 '8열사'로 추앙되는 도예종, 서도원, 하재완, 이수병, 김용원, 송상진, 우홍선과 학원관련자 여정남 등 8명의 사형이 확정되자 바로 사형을 집행했습니다.
이후 이 2차 사건을 두고 논란이 일었던 것은 정권의 공권력 남용에 대한 부분이었고, 진상조사와 재심요구가 이어졌습니다.

조금 조심스럽지만, 이러한 절차가 진행되는 과정에 정부의 실책이 있었다는 것은 분명히 인정해야 할 듯합니다.
다만 현재에 이르러서 현재의 잣대를 가지고 과거를 판단하는 것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법이 필요없게 되니까요.

#. 11
2005년 12월 노무현 정권의 과거사위는 민청학련 사건과 인혁당 사건을 재조사했고,
97년 1월 법원은 판결을 통하여, 73년 당시 법원이 2차 인혁당을 반국가단체로 규정해 도예종 등 8명을 사형한 '무리한 법집행' 부분을 무효로 판단했습니다.

하지만 잘 이해하셔야 할 것은, 이 재심 판결이 2차 인혁당의 실체가 없다거나, 조작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북한과의 연계성에 대한 증거가 충분하지 않을 뿐,
1차 인혁당으로 복역한 도예종 등이 흩어져있는 세력을 규합하여 독자적, 자발적 지하혁명조직을 건설하려 했던 것은 분명했습니다.

즉 인혁당 사건을 두고 아무 근거없이 조작이라고 말하는 좌파가 있다면,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근거로 들어 제압해야 할 것입니다.

좌파정권이 역사적 진실을 뒤 엎고, 각계각층의 좌파들은 이를 미화시켰어요. 우리마저 현혹되어 진실을 궁금해하지 않는다면..
어느새 사실로 단정되어 잊혀지게 될꺼에요.
그리고 우리 아이들이 그걸 배우며 자라겠죠.

#. 12
김정강이라는 좌익운동가가 있습니다.
박정희 정권 시절에 활동했고, 인혁당 사건의 핵심 가담자인 도예종과도 절친이었어요.

이 김정강은 다음과 같은 발언으로 인혁당의 존재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인혁당은 제1차 사건 때부터 실제로 존재했다. 도예종은 스스로 '이번에 검거되기는 했으나 법정투쟁에 의해서 승리적으로 넘어왔고 당은 노출되지 않았으므로 전략적으로 승리라고 봐야한다'고 말하면서 앞으로 당이 재건되면 입당하라고 권유했다"

김정강의 다른 인터뷰도 한번 볼까요.
"인혁당은 법정투쟁(조직의 실체를 부인하는 투쟁)에서 성공했습니다.
검사들은 좌파사건들애 대해서 잘 모릅니다.
잘 모르기 때문에 그 사람들이 일제히 부인하니까 처음에는 당황했죠. 나중에는 이 사람들이 엉뚱하게 걸려들었구나 하고 착각을 한 거지요.
결국에는 조직으로서가 아니고 고무 찬양 조항으로 유죄가 돼서 교도소로 넘어왔단 말입니다."

이 발언들을 두번 세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이 발언을 통해서 우리는 세가지를 유추할 수 있어요.
1. 구속되고 사형이 집행되어 종결되는 시점까지도 실체는 드러나지 않았다.
실체란 '조작'의 개념이 아니라 '몸통'이다.
2. 이후 좌파 정권들은 '몸통'은 덮어두고 '조작'을 운운하였다.
3. 재조사 시점에 우파정권이 있었다면 이 사건의 '몸통'을 파헤쳤을지도 모른다.

#. 13
제가 2차 인혁당 사건까지도 실체가 있었다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관련자들의 이후 행적 때문입니다.
당시 사형이 집행된 8명을 제외하고 모두 석방됐는데 이들은 모두 이적단체와 친북단체의 활동을 주도하는 세력으로 이어져 왔거든요.

몇몇을 보자면,
전창일은 조국통일법민족연합남측본부, 즉 범민련 남측본부의 결성 준비위 부위원장과 2005년 인천 맥아더 동상 파괴를 주도한 통일연대 고문으로 활동했어요.
김한덕은 범민련 남측본부 부의장,
나경일은 범민련 남측본부 대구경부연합 부의장,
이태환은 범민련 남측본부 상임위원,
임구호는 6.15 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위원등으로 활동했습니다.

정부에서 일 좀 할려고하면 죄다 몰려와서 떼를 쓰는 조직들... 그 조직 중에서도 절대 빠지지않는 그것들이 보이시죠?

주사파 중 이석기의 경기동부연합으로 대변되는 계보상 '사람사랑'이 주로 활동하는 영역이 6.15 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입니다.

#. 14
2차 사건 재심판결에서 나오는 "무리한 법집행'은 사실로 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2차 인혁당이 북한과 연계된 1차 인혁당 핵심 가담자들이 재건했다는 것 또한 명백한 사실입니다.

그리고 인혁당 사건은 북한의 체제전복 시도의 계보라는 측면에서 남로당과 통혁당에 위치하고 있으며 이후 남민전에 형향을 미치고,
남민전은 다시 중부지역당까지도 이어집니다.
이선실이 개입한 유명한 간첩단 사건입니다.


인혁당과 같은 사건을 통해서 우리가 인지해야 할 것은 두가지입니다.

하나는,
운동권 단체들의 시위와 선동에 빌 붙어서 들어서게 되는 좌파정권을 경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건 정권이 운동권 단체들에게 빚을 진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즉 해당 좌파 정권은 그 빚을 갚아야하죠.
갚는 방법은 다양합니다.
돈을 주거나, 자리를 주거나, 또는 과거 10년의 좌파정권들 처럼, 과거 사건을 뒤 엎어 줌으로써 민주화 유공자로 사회에 복귀시켜주고 각종 이권에 참여시키는 방법들도 있을 것입니다.
이래서야.. 나라가 정상적으로 돌아갈리가 없겠죠?

둘은,
인혁당과 통혁당, 남민전 등의 지하당들은 체제전복의 기틀을 만들고 북한을 끌어들여 적화 시키는 것이 최종 목표일 것입니다.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각종 시위들..
순수성을 가지고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사람들도 많을텐데요.
그들에게 권고해야합니다.
"당신의 순수성이 누군가에 의하여 오염되고 있는건 아닌가?"라며 진실을 파헤쳐 보라고 설득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런 자발적 참여자에게 우파로의 전향을 권할 것이 아니라, 진정 순수하다면 국회로 가서 헌법 수호를 주장하고, 검찰과 법원으로가서 정치권의 눈치를 보지 말라고 말하며, '공정하고도 엄정한 법 집행을 요구해야 한다'라는 논리로 핵심을 명확하게 짚어줘야 합니다,

만약.. 좌파가 다음 정권을 잡는다면, 이석기의 사면과 모 정당의 부활이 현실이 될지도 모르겠군요.

사람을 일단 죽여놓고, 그 살인의 이유와 정당성을 억지로 맞추기 위해서 선동과 날조를 즐기는 오늘날의 언론과 정치권을 보면,

"아... 적화되기 딱 좋은 날이다"라는 생각에 온 몸이 떨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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