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드러운 직선’ 육영수♣(1)
<2006-12-24 김인만 작가>
정치학 전공의 한 여교수는 신사임당 초상화가
새삼스레 눈에 익은 느낌이 들어 어디서
보았던가 생각해 보니 육영수 여사의 모습이더라고 했다.
흰 저고리에 검은 치마를 차려 입은 모습의 단아하고
청초한 느낌이 육여사 영정을 보는 것과 똑같고,
이목구비도 서로 닮은 것 같다고 말하고 있다.
![](http://cfile212.uf.daum.net/image/1310A7274AE7D406659E24)
사대부 집안의 아녀자들이 유교문화의
좁은 울타리를 넘기가 어려웠던 그 시대에
신사임당은 지아비를 섬기는 부덕(婦德)뿐 아니라
독창적 삶의 추구와 아울러 대학자 율곡을 훈육한
모성으로 역사에 뚜렷한 자취를 남기고 있다.
육 여사는 평생 동안 남편에게
‘여보’ 호칭을 쓰지 못하고 “이거 보세요”,
“어디 계세요”라는 말로 불렀다고 한다.
![](https://img1.daumcdn.net/relay/cafe/R400x0/?fname=http%3A%2F%2Fwww.516.or.kr%2Fup_fd%2Fboard%2Fnews_img%2F2010%2F05%2F19%2F20105192342355268.jpg)
그런가 하면 어느 해 여기자들이 부부싸움에 관해 묻자
육 여사는 “큰일을 하시는 분이니까 꾹 참고 있어요.
불만을 한데 모아 두었다가 물러나시면,
한번 호되게 공격하려고 벼르고 있어요”라고 말해
폭소를 자아낸 적이 있다.
육 여사의 온화하고 자상한 내조가 대통령의 근엄하고
딱딱한 이미지를 부드럽게 풀어내는 데
적지 않은 역할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러나 육여사는 양보할 수 없는 어떤 원칙,
지켜야 할 법도와 가치관에 관해서는 흔들림이 없었고
남편 앞에서도 결코 물러서지 않았다.
![](https://img1.daumcdn.net/relay/cafe/R400x0/?fname=http%3A%2F%2Fwww.516.or.kr%2Fup_fd%2Fboard%2Fnews_img%2F2010%2F01%2F04%2F2010145532025679.jpg)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꼭 알려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면
역정을 들어도 끝까지 뜻을 굽히지 않았다”는
박지만의 말에서도 육 여사가 고분고분,
유순하지만은 않았음을 알 수가 있다.
신사임당은 남성 의존 형이 아닌 엄격한 봉건주의의
틀을 깨고 나온 자립자존의 여성상으로서,
육 여사 역시 여성에게 보수적이었던 고정관념을 깬
‘가장 적극적인 퍼스트레이디’로서 두 사람은
온화함과 올곧음을 겸비한 ‘부드러운
직선’의 소유자라고 할 수 있다.
![](https://img1.daumcdn.net/relay/cafe/R400x0/?fname=http%3A%2F%2Fwww.516.or.kr%2Fup_fd%2Fboard%2Fnews_img%2F2009%2F04%2F17%2F200941714275580584.jpg)
최근 육 여사의 일대기를 다룬 소설이 나왔다.
남지심의 장편 ‘자비의 향기 육영수’가 그것이다.
육 여사에게서 강조되지 않았던 불교적 삶에 비중을 둔
새로운 소설이라 한다.
육 여사는 불자였다.
1960년대 초부터 서울 우이동의 도선사에
자주 찾아가 불공을 드렸고, 청담 대종사에게 받은
대덕화(大德華)란 불명도 있다.
![](http://cfile239.uf.daum.net/image/1739D2474ED79AC2131650)
[글, 옮김, 編: 定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