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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를 잃고…작아 보이던 아버지♡

작성자定久|작성시간13.09.10|조회수24 목록 댓글 0

                             ♡어머니를 잃고…작아 보이던 아버지♡

 

♡어머니를 잃고…작아 보이던 아버지♡

<2003-06-01 : 박근혜>

 

어머니께서 총탄에 돌아가신 것은 이후

나의 삶과 아버지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나는 프랑스에 유학을 하다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왔는데

아버지가 공항에 마중 나와 계셨다.

 

어머니를 잃은 슬픔이 말할 수 없이 클 텐데,

딸을 생각해서 공항까지 손수 마중 나오신

아버지의 마음을 생각하니 이루 말할 수 없는

감정이 복받쳐 올랐다.

 

▲육영수 여사 추모음악회. 1974년 9월

4일 국립극장. ⓒ 국가기록원

아버지는 내가 프랑스로 유학 가 있을 때

청와대 뜨락에 핀 철쭉과 라일락, 목련을

손수 사진 찍고 일일이 설명을 달아서 편지로 보내주셨다.

 

그리고 나한테서 편지가 왔다는 소식을 들으시면

편지를 보시려고 몇 계단씩 뛰어서

2층으로 올라오곤 하셨다는 아버지….

 

 

아버지는 경황이 없으신 중에도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손수 편지에 써서

동생 편에 보내주신 분이다.

그런 아버지를 공항에서 만나 뵈었을 때,

그 모습이 그렇게 작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그 후 어머니를 대신해 아버지를 도와드리는 일을

함으로써 나의 인생이 바뀌었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 나의 정치생활에도

큰 영향을 주고 있다.

당시 나는 갓 대학을 졸업한 20대의

나이였기에 감수성이 예민했다.

 

 

 

너무나 충격적인 일을 겪고 나서 숨 돌릴 겨를도 없이

해야 했던 일들은 한창 흡수력이 빠른 젊은 나이의

나에게 살아있는 가르침을 주었다.

 

어머니의 빈자리 때문에 청와대가 쓸쓸하고

황량하게 보이지 않도록 채우기 위해서

나는 정말 열심히 살았다.

 

 

아침에 아버지가 식사하실 때에는 신문을 읽어드렸고,

각종 현안들에 대해서 아버지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이야기를 나누고 질문을 많이 했다.

차를 타고 국토를 둘러볼 때에는

지역개발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특히 많이 했던 것은 역사와 안보,

우리 경제의 발전에 관한 이야기였다.

중요한 이야기는 식탁에서 많이 이루어졌다.

 

 

 

아버지는 식사 중에 늘 나라 얘기를 하셨고,

미국을 비롯한 외국과의 문제,

나라 전체가 잘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는

이야기를 많이 하셨다.

자연 나 역시 모든 관심사가 국익과

나라 걱정에 쏠리게 되었다.

 

그 후 오랜 시간이 흘러 정치를 시작한 후

나는 너무나 많은 일들이 ‘국익 최우선’이 아니라

정치인 자신의 이익이나 관심사,

정치인이 속한 정당의 이익과 집권을 위해서

결정되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정말 속상하고 한탄스러워 분노가 일었다.

도대체 정치를 하는 근본 이유가 무엇인가?

어떤 사람들은 “왜 그렇게 일일이 따지고 드느냐”

“저쪽 편드는 거 아니냐.”고도 한다.

 

하지만 내가 그냥 배지 달고 왔다 갔다 하면서

편안하게 정치를 한다면,

그것은 평생 나라 걱정을 하시며 국익을 생각하셨던

아버지에 대한 불효일 것이다.

 

 

[글, 옮김, 編: 定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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