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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비침투 지역을 찾아간 퍼스트레이디.♡

작성자定久|작성시간13.10.03|조회수29 목록 댓글 0

                    ♡공비침투 지역을 찾아간 퍼스트레이디.♡

 

 

♡공비침투 지역을 찾아간 퍼스트레이디.♡

1968-12-13.

 

1968년 11월 초, 울진삼척을 중심으로 한 경북과 강원 일대에

북한 민족 보위성 정찰국 124군부대 소속

무장공비 120여명이 침투했다.

 

당국은 해당지역에 을종사태를 선포하고 대간첩본부 지휘 아래

해병 특전사 등 2개 사단병력과 향토예비군을 출동시켜

두달 동안 1백13명 사살, 생포 5명, 자수 2명의 전과를 올렸다.

 

 

▲공비침투 지역의 예비군과 주민들

 육 여사는 울진삼척 지역의 산골을 찾아가

공비 만행에 희생된 유가족과 예비군들을 위로했다.

 

그러나 우리 측도 군과 민간인 사망자가

70여명에 이르는 큰 피해를 보았다.

그중 12월 9일 밤에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산골마을

이승복군(당시 9세) 집에 침입해;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저항하는

이승복군과 가족(모, 여동생 등 4명)을 학살한 것이

대표적인 희생 사례로 기억되는 공비 만행사건이다.

 

 

▲행정기관과 군 관계자에게

주민들의 생활 보호를 당부하는 육 여사.

 

이때 대통령 부인 육영수 여사는 직접 현장을 찾아가

무장공비에 희생된 가족을 위로하고 예비군을 격려했다.

육 여사가 울진삼척 지역에 간 것은 12월 13일.

 

1.21사태 때 육 여사는 청와대 인근에

공비가 출현했다는 소식에 놀란 시민들이

금을 사재기하고 피란 갈 채비로 술렁거렸던 일에 대해

“내 집을 내가 지켜야지 어디 간들 온전하겠느냐”고 탄식했었다.

 

육 여사 손을 잡고 흐느끼는 할머니.

 

이후 정부는 공비가 출몰하는 산골오지의 화전민들에게

이주비를 주어 하산을 권유하고 또는 취로사업을 벌여

가난한 산골 농민들의 생계를 도왔다.

 

박정희 대통령이 1972년 10월 유신을 선포하는데

정치적 이유를 근인(近因)으로 들고 있거니와 보다

분명하기로는 1968년의 1.21사태와 울진삼척 공비침투사건

등에 원인(遠因)이 있다는데 이론이 없다.

 

 

육 여사가 현장을 찾아간 것은

아직 공비 소탕작전이 끝나지 않은 때였다.

 

특히 공비 시체 앞에서 브리핑하는 부대장에게 야당 정치인이

“진짜 북에서 내려온 군인이 맞는가”라고 물었던 일이라든지,

안보 위기에 아랑곳없이 향토예비군 폐지로 국민을 선동하는

정치공세에 환멸을 느껴 강력한 통치체제의 필요성을

절감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글, 옮김, 編: 定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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