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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서 별이 가장 많이 뜨는 곳, 추전역★

작성자定久|작성시간13.11.04|조회수36 목록 댓글 0

                  ★대한민국에서 별이 가장 많이 뜨는 곳, 추전역★

 
★대한민국에서 별이 가장 많이 뜨는 곳, 추전역★

<2008-12-16>

 

강원도 태백시에서 정선군 고한읍 쪽으로 약

10킬로 정도 가노라면 추전역 삼거리가 있고,

거기서 좌측으로 돌아 500미터를 더 가면

‘한국에서 제일 높은 역’이라는 이정표가 눈에 들어온다.

 

이정표를 지나 조금 더 가면 어느덧 해발 800미터를 넘어서는

하늘 밑 외로운 곳에 건물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다.

행정구역상 강원도 태백시 삼수동에 위치한 추전역이다.

 

하늘에 가장 가까운 역인만큼 연평균 기온이

가장 낮아 눈도 가장 많이 오고 여름 더위를 전후해서는

9월에서 5월초까지 난로를 피워야 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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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선 추전역에는 열차가 하루에 45편이 지나가지만

정차하는 것은 딱 두 번뿐. 그나마도 승객의

승하차를 위한 것이 아니라 열차 교행을 위한 잠깐 멈춤이다.

 

기차 승객들은 인근 태백역을 이용하고 높은 산중의

추전역까지 숨 가쁘게 올라와 기차를 타는 사람은

1년 내내 단 한사람도 없다.

 

승객의 왕래가 없는 대신, 한국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역을 보고 싶어 철로가 아닌 육로로 일부러 찾아오는

여행 손님이 1년에 열댓 명 정도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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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그립고, 사람이 나타나면

무조건 반가운 곳이 추전역이다.

그래서 추전역 대합실에는 지상의

다른 역에서 볼 수 없는 방명록이 있다.

 

방명록에는 이곳을 찾은 손님들이 남긴 자연과

인간에 대한 사랑의 추억이 알알이 들어차 있다.

그리고 방문객들은 거기서 뜻밖으로 만난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기억도 빠뜨리지 않는다.

역 대합실에 박 대통령의 빛바랜 흑백사진이 걸려 있다.

 

박 대통령이 외진 산간의 추전역에 나타났었던 것이다.

태백선은 탄광지역의 자원개발을 위해 건설된 에너지선이다.

1975년 12월 19개 역의 전구간이 완공되기 이전,

 

 

험준한 산악과 협곡이 즐비한 태백산맥을 가로지르는

난공사를 거쳐 1973년 10월16일 고한∼태백(옛 황지)

15킬로 구간의 고한선을 개통하고 추전역에서

대통령 참석하에 기념행사가 열렸다.

 

박 대통령은 레일을 침목에 고정시키는 금으로 된

개못(犬釘, dog spike)을 직접 박고, 김신 교통부장관,

이동화 철도청장, 이직상 초대 추전역장과 함께

개통 테이프를 잘랐다.

 

▲1973년 10월16일 추전역에서 태백선의 일부 구간인 고한선 개통 테이프를 끊는 박 대통령 일행. 이 사진이 추전역 대합실에 전시되어 있다.

※2006년 추전역을 다녀온 한 신문기자는

다음과 같은 기사를 썼다.

 

-1973년 한국은 10월 유신의 서슬이 시퍼렇던

‘겨울 공화국’이었습니다.

태백선 개통 2주일 전 서울대 문리대 생 300여명은

유신 후 첫 시위를 벌였습니다.

 

다음 달 한국기자협회는 사실보도를

다짐하는 결의문을 채택합니다.

하지만 더 살펴보면 다른 풍경도 눈에 들어옵니다.

그해 7월 역사적인 포항제철 1기 설비가 준공돼

쇳물을 쏟아내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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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06월10일 농어촌 고리채 정리법 공포.

 

소양강댐 완공과 남해고속도로 개통도 같은 해였습니다.

독재에 저항한 민주화운동을 지금도 높이 평가합니다.

세월이 흘러 일부 ‘민주 투사’가 보여 준

일그러진 행태는 실망스럽습니다.

 

하지만 얼어붙은 시대에 민주주의를 외친 열망과

투쟁이 옳았다는 생각은 변함없습니다.

그러나 1970년대 경제성장도 정당한 평가를 받을 만합니다.

 

그 시대의 땀이 없었다면 찢어지게 가난했던 한국이

지금 같은 경제대국으로 떠오르긴 어려웠을 겁니다.

지금 우리 국민을 먹여 살리는 주요 산업이

모습을 드러낸 것도 그때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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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04월21일 새마을 운동 노래 작사, 작곡.

 

후진국이 민주화와 경제발전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아쉽지만 이런 이상적 공존(共存)은 없었습니다.

 

굴곡은 있었지만 한국처럼 산업화를 거쳐

민주화까지 이룬 사례도 손꼽을 정도입니다.

우리 현대사는 한쪽만 옳고 다른 쪽은 틀렸다고 여기는

이분법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잘 보여 줍니다.

추전역에 서서 한국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생각해봤습니다.

 [동아일보]2006-04-16 / 권순활 경제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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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전역은 1973년 10월 16일

고한선 개통과 함께 영업을 개시했으며,

열차는 보릿고개 시절 자원개발의 열기와 더불어,

그림 그리는 아이들이 시냇물을 검정색으로 그리고

“검은 땅에서도 꽃은 피더라”는 탄광촌의

애환을 함께 싣고 달렸다.

 

달리는 열차의 굉음은 곧 국가경제의 성장 동력으로 이어졌고

대체연료인 무연탄의 공급으로 산림녹화도 가능했다.

박 대통령은 추전역에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대한민국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추전역은

그리움이 가장 높이 쌓여 있는 곳이며,

밤하늘의 별이 가장 크게 보이고 가장 많이 뜨는 곳이다.

미래의 꿈길을 내다보았으리라.

 

[글, 옮김, 編: 定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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