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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와 태풍 사라호의 추억♠

작성자定久|작성시간13.11.15|조회수46 목록 댓글 0

                         ♠박정희와 태풍 사라호의 추억♠

 


  박정희와 태풍 사라호의 추억♠
 
1959년 9월 사라호가 찾아 왔을 때
우리는 세계의 최빈국에 속했다,
그때 필리핀은 아시아의 선진국이었고 6.25 참전국이기도 했다,
 
필리핀의 기술자들이 장충체육관을 지었고,
1966년에는 박정희가 돈을 빌리러 필리핀을 방문하기도 했다,
그 때 박정희는 '우리 대한민국도 필리핀처럼 풍요롭고
행복하게 살게 만들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다,
 
 
 
사라호가 우리를 찾아오고, 하이옌이
필리핀을 방문하기까지 약 두 세대가 흘렀다,
하이옌의 필리핀의 모습은 사라호의 우리의 모습을 닮았다,
두 세대 만에 두 나라의 모습은 정 반대쪽에 서있는 것이다,
 
우리는 초가집의 나라에서 대리석의 나라로 탈바꿈을 했고,
필리핀은 판자 집의 나라로 국내총생산
세계165위로 후퇴를 했다,
결정적으로 우리에게는 박정희가 있었고 필리핀에는
박정희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라디오가 생기고부터 부모님은 태풍예보를 들을 수 있었다,
그것은 불시에 기습을 받는 것보다 전투에서 유리했다,
태풍예보가 내려지면 부모님은 초가지붕 위에
무거운 것들을 올려놓거나 끈으로 더 동여매기도 하셨다,
바람에 날라갈 만만 것들은 안으로 옮겨놓고,
창호지를 바른 문에는 비닐을 씌우거나 멍석을 대기도 하셨다,
 
이런 원시적인 무기를 들고 비바람과 싸우는
민초들 앞에 지도자가 나타났다,
박정희는 그런 방법을 쓰지 말고
비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석조건물을 짓는 방법을 알려줬다,
 
 
 
석조건물을 짓기 위한 단 하나의 방법,
그것은 열심히 땀을 흘리는 '근면'이었다,
박정희는 근면이라는 하나의 무기로서 굶주림을 물리치고
인간을 괴롭히는 자연재해를 물리쳤다,
 
필리핀에 목제건물 대신에 대리석건물들이 들어서 있었다면
피해는 훨씬 줄었을 것이다,
필리핀에도 박정희가 있었다면 1만여 명 이상이 사망하는
저런 대 참극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필리핀 중부 지역 Leyte시의 처참한 모습,

이번 참사에서 10,000이상이 희생되었다고한다.

 

 박정희가 사리사욕을 탐했다면 우리도 필리핀을 닮았을 것이다,
그러나 개인적 이익이나 명예보다 언제나
국가와 민족이라는 대의를 선택했던 박정희가 있었기에
우리는 어지간한 태풍에 코웃음을 치게 되었다,
박정희가 있었기에 대리석 건물에 살 수 있었기 때문이다,
 

▼Haiyan이 남긴 Iloilo지방의 처참한 모습


[글, 옮김, 編輯: 定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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