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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 바지에 남방셔츠, 왕골슬리퍼♠

작성자定久|작성시간13.11.17|조회수61 목록 댓글 0

                     ♠헌 바지에 남방셔츠, 왕골슬리퍼♠

 

 

♠헌 바지에 남방셔츠, 왕골슬리퍼♠

<1997-05-28 이태교(전 한성대 교수ㆍ언론인)>

 

내가 한국일보 정치부 기자로

국가재건최고회의에 출입하고 있던

63년 8월 29일은 박정희 의장이 민정참여를 위해

지포리에서 전역(예편)하기 하루 전날이었다.

이후락 공보실장이 나에게 전화로 만나자고 했다.

 

이 실장은 놀랍게도 박 의장이

다음날 읽을 전 역사를 나에게 내놓았다.

연설문을 읽어보고 그날 저녁에 박 의장에게

스피치 레슨(?)을 해주라는 주문이었다.

나는 연설문만으로도 특종인데

박 의장과 독대를 주선해 주겠다니 흥분할 수밖에 없었다.

 

▲경찰체육대회를 관람하는 박정희 의장(앞줄 중앙).

뒤로 최고회의 대변인 이후락 공보실장(우측)과

박종규 의장 경호대장(좌측)의 모습도 보인다.

 

바로 그 전 역사에는 “다시는 나와 같은 불행한 군인이

나타나지 않기를 바란다”는 역사적인 문장이 들어 있었다.

연설문을 읽어본 다음 이 실장과 나는 곧장

장충동에 있는 최고회의 의장 공관으로 달려갔다.

 

얼마 후 박 의장이 가벼운 미소를 지으며 나타났다.

이 실장은 나를 박 의장에게 소개하고

오늘 나와 동행한 이유를 설명했다.

가까이에서 본 박 의장은 검소하고 인간적이었다.

 

▲소탈한 서민의 식사. 1962년 경복궁에서 열린

5.16혁명 1주년기념 산업박람회의 농민식당에서

1백50환짜리 비빔밥을 맛있게 먹는

박정희 의장 내외. ⓒ 자료 사진

 

많은 세월이 흐른 것 같은 낡은 바지,

농부들이 농사철에나 입음직한 남방셔츠에

왕골 슬리퍼를 신은 박 의장의 복장은

소박한 시골 아저씨 모습 그대로였다.

그러나 박 의장의 광채가 번뜩이는 눈매는

나를 압도하고 있었다.

 

연설문을 한번 읽어보라는 이 실장의 말에

박 의장은 “내일 읽어보지”하고는 “이 기자도 왔으니

술이나 한잔 하자”고 했다.

술이 나오자 박 의장은 감회어린 눈으로 벽 쪽을 가리키며

“이 기자, 저 군복이 내일 마지막으로 입을 옷이야”

하면서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박정희 의장은 체육대회에 직접 참여해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꼬마경찰 봉투줍기’ 경기에 참가한 경찰가족

소녀의 손을 잡고 뛰어가는 박정희 의장.

 

술이 몇 순배 돌면서 박 의장은 영욕으로 점철된

군 생활을 회고한 다음 민주공화당 창당,

경제개발 청사진, 새마을운동에 대한 기본구상 등

그의 통치철학이 끝없이 이어졌다.

 

나는 술에 취해 거의 인사불성이면서도

박 의장의 한마디도 놓치지 않으려고

마음속으로 메모해 나갔다.

시간은 어느덧 통금시간을 지나 새벽으로 치닫고 있었다.

이 실장의 건의로 겨우 술자리를 끝내고

나는 경호실 차를 타고 신문사로 돌아왔다.

 

▲전역식을 마친 후 단상에서

내외 참석 인사들의 축하를 받고 있다.

 

나는 그날의 면담 내용을 이 실장과

오프 더 레코드(비보도)조건으로 굳게 약속했지만

큰 문제가 되지 않을 내용만 골라 작은 박스기사를 썼다.

30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생각해 보아도

박정희 대통령의 지도자로서의 비전과 선견,

 

강력한 지도력, 청렴, 그리고 국민에게 ‘하면 된다’는

신념을 심어주고 가난에서 해방시킨 점 등

여러 가지 면에서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탁월한

지도자의 한 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축하 파티석에서 하우즈 유엔군사령관과 함께

축하 케이크를 앞에 놓고 ‘이별의 곡’을 듣는

박정희 대장과 육영수 여사의 모습.

[글, 옮김, 編: 定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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