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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새재의 꿈♠(1)

작성자定久|작성시간14.01.16|조회수52 목록 댓글 0

                          ♠문경새재의 꿈♠(1)

 

 

 ♠문경새재의 꿈♠(1)

<2008-08-12>

 

서울과 영남을 가로지르는 문경새재는

옛 정취가 굽이치는 황톳길이다.

지금도 황토 굽이길을 터벅터벅 나그네 걸음으로 넘는다.

 

-문경새재 웬 고갠가, 구부야 구부 구부가 눈물이 난다.

구성진 가락과 함께 고달픈 삶을 등에 지고 넘어야 했던 눈물 고개요,

청운의 뜻을 품고 한양 가는 선비들이 넘던 꿈의 고개이기도 했다.

 

 

문경새재 어귀에는 오가는 나그네들을 맞이하는

주막들이 줄지어 있었다.

일제 식민지 시절의 한여름, 밀짚모자를 쓰고 수건을 어깨에 걸친

젊은이가 문경새재 굽이 길을 쉬엄쉬엄 넘다가 주막에 들러

풋고추와 된장을 앞에 놓고 시원한 막걸리를 들이킨다.

 

고개 너머 읍내의 문경서부심상소학교(지금의 문경초등학교)

교사 박정희다.

그가 대구사범학교를 졸업하고 문경소학교에 부임한 것은

20세 되던 해인 1937년. 그 시절 겨울의 어느 날, 젊은 선생님은

한겨울 아이들을 눈발이 날리는 운동장에 모이게 했다.

 

 

학교의 마지막 일과인 운동시간이다.

남루한 옷차림에 머리와 귀에는 부스럼이 덕지덕지 붙은

아이들이 운동장에서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선생님은 손을 들어 눈송이를 가리켰다.

 

“누구든지 저 눈을 손바닥에 담아 오는 사람은

집에 먼저 보내주겠다.”

그러자 몸을 움츠리고 있던 아이들이

“와!” 소리와 함께 흩어져 뛰기 시작했다.

손에 눈송이를 담고 또 담아 움켜쥐고 선생님에게 달려가면

눈은 어느새 녹아 물이 되어 있었다.

 

 

그래도 아이들은 신명이 나서 이리 뛰고 저리 뛰기를 멈추지 않았고,

그러는 사이 추위를 잊어버렸다.

당차고 젊은 패기가 넘치는 선생님은 아이들이 웅크리고 있거나

힘없이 느릿느릿 걷는 것을 그대로 두고 보지 않았다.

 

운동장에서 조회를 마치고 교실에 들어갈 때는

가슴을 펴고 씩씩하게 걸어가라고 으레 행진곡 나팔을 불어 주었다.

나팔을 부는 선생님이다.

학교 아래 하숙집에 묵고 있던 선생님은 새벽이면

운동장에 올라가 마을을 향해 나팔을 불었다.

 

  ▲문경소학교 교사 시절인 1939년 제자들과 함께. ⓒ 제자 정순옥 제공

 

나팔소리는 산으로 에워싸인 고적(孤寂)한 문경 고을의 새벽

어둠을 흔들고, 먼 곳을 향한 꿈의 날갯짓 같은 파동으로

높은 산마루를 넘어가곤 했다.

그러면 마을 사람들은 나팔 소리에 잠이 깨어 소여물을 끓이고,

아직 잠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은 아이들을 위해 밥을 지었다.

하루는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말했다.

 

“미국 사람들은 자동차를 한집에서 한대씩 갖고 있고,

일본 사람들은 자전거를 한대씩 갖고 있는데

조선 사람은 지게도 하나씩 가질 수 없으니

우리는 어떡하면 잘살 수 있을까.”

 

 

일제시대, 춥고 배고픈 그 설움의 세월에 선생님은

먼 구름나라의 꿈같은 이야기를 들려주며

우리도 잘살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고 아이들을 일깨웠다.

식민지 삶의 고난 속에서도, 그러나 동화 속 장면처럼

눈발이 날리는 운동장에서 춤을 추듯 뛰노는 아이들에게

용기와 꿈을 주던 문경소학교의 선생님은 뒤에

이 나라의 대통령이 되었다.

 

대통령 박정희.

그의 삶은 식민지 시대로부터 조국근대화 시기에 이르기까지

고난의 바다를 헤쳐 온 용기와 꿈,

그리고 고독한 사랑의 항해일지 같은 것이었다.

-아 가엾다, 이 내 몸은 그 무얼 찾으려고

끝없는 꿈의 거리를 헤매어 왔노라.

 

  

그가 즐겨 불렀던 ‘황성옛터’의 영탄조(詠歎調) 가락에도 ‘꿈’이 있다.

망국의 슬픔과 고향을 등진 유랑의 고달픔을 어루만져 주던

이 노래를 부르면서 “끝없는 꿈의 거리를…”

부분에선 목이 메곤 했다고 한다.

 

일제 시대에는 빼앗긴 내 나라의 주권을 찾는,

전쟁의 참상을 겪으면서는 평화를 갈구하는,

그리고 모진 가난을 벗어나고 싶은,

눈물 마를 날 없는 오랜 꿈의 세월이었다.

 

[글, 옮김, 編: 定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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