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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현장이 살아나야할 이유

작성자심청정.|작성시간13.09.16|조회수148 목록 댓글 0

임진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경남 고성지역 첫 전승지가 積珍浦(적진포) 지금의 고성군 거류면 화당리이다.

이 지역을 南村(남촌)이라 이름 불렀다.南村 場(남촌장)이 초8일.18. 28일 3번 섰다고 기록에있다.

이순신 장군과 함께 원균이 출전하여 왜선을 격파한 전투로 기록에 남아 있는데 고성군수 이학렬 씨 가 해군 교수출신인데 지자제 군수로 부임해와서 첫 문화사업을 공룡에 초점을 마추어 하다보니 하이면 공룡박물관과 당항포를 관광지로 개발을 해왔다. 진즉 먼저 해야 할 역사의 현장을 몰랐던 것이다.

향토 사학자들이 문헌에 남아 있는 남촌이 당동(거류면 소재지)이다.통영시 어디다 해서 설왕설래 하면서 그 남촌을 바로 옆에 두고 몰랐던 것이다. 그래서 지명이나 유래 흔적을 찾아 학계나 향토 문화에 종사하시는 원로님들이 찾아낸 南村 浦(화당리)는 이제 국가의 대대적인 지원을 받아 전적지로 개발해야 할 첫 단추를 끼워야 할 시기에 임박 해있다. 이 사업은 차기 고성군수의 핵심 사업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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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역사의 기록에 의하면 新增東國與地勝覽 에도 南村(지금의 화당리)은 기록이있다.

(新增) 南村 在縣東二十里 光海6年甲寅初設鎭于縣南道善十一年己未移設召募鎭 於縣東積珍浦 因稱南村差別將守之)=(여지도서)

 

*嶺南邑誌=1940년에 간행된 가장 최근의 기록이 바로 검토할 수 있는 자료이다.

**南村 鎭(남촌진) ;광이면에 있으며 읍 동쪽으로 20리(南村鎭 在光二面 邑 東二十里);라고했다.

 

*고성문화원 발행 **고성의 겉살과 속살을 찾아서에서 원본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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