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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대통령 39주기 추모행사에 즈음하여 저서 일부를 소개 하여 드립니다.

작성자복돌이(獲天下之福)|작성시간18.10.17|조회수82 목록 댓글 0


민족사의 분수령에 서서(民族史의 分水嶺)에 서서

 

지난날 우리의 선대(先代)들이 살고간 역사(歷史)의 발자취를 돌이켜보고, 우리의 후손(後孫)들이 살아갈 조국(祖國)의 내일(來日)를 내다보면서, 나는 오늘의 우리 세대(世代)야말로 정녕 영진(榮進)이 무상했던 민족사(民族史)의 도정(道程)에 있어서 참으로 획기적인 시대(時代)에 살고 있음을 실감(實感)하게 된다.

 

우리는 그간 온 국민이 땀흘려 일한 보람으로 오늘의 일한 보람으로 오늘의 이 70년대를 우리의 역사상(歷史上) 가장 뜻 깊은 연대(年代)로 기록하게 되었다. 과거 그 어느 민족(民族), 어느 국가(國家)도 당해보지 못한 엄청난 시련(試鍊)을 이겨내고, 세계사(世界史)의 대열에 당당한 발걸음을 내디딘 것이다. 실로 우리 민족(民族)은 이제 오랜 안일(安逸)과 침체(沈滯)에서 벗어나 보람찬 새 역사(歷史)의 문(門)을 열었을 뿐 아니라, 5천년의 유구한 전통(傳統) 속에 가다듬어 온 민족(民族)의 저력(底力)을 유감없이 발휘하기 시작했다.

 

오늘날 이 땅의 어디를 둘러보아도 변화(變化)와 발전(發展)의 기운은 역력하다. 빈곤(貧困)과 실의(失意) 대신 풍요에의 꿈과 자신(自信)이 넘치고, 불안(不安)과 혼란(混亂)대신 안정(安定)과 질서(秩序)의 반석이 다져지고 있으며, 사대(事大)와 의타(依他)의 그늘을 헤치고 자주(自主)와 자립(自立)의 기상이 용솟음치고 있다. 이제 그 어느 한국인(韓國人)의 얼굴을 보더라도 활기(活氣)와 의욕(意慾)에 빛나고 있으며, 세계(世界) 어느 곳을 가보더라도 한국(韓國)과 한국인(韓國人)의 약동하는 맥박(脈搏)을 느낄 수 있다.

금세기(今世紀)의 여러 년대(年代)를 거치는 동안, 우리 겨레가 이처럼 밝고 떳떳한 모습을 보인 일은 일찌기 없었다. 우리 세대(世代)가 걸어온 30여년(三十餘年)의 가시밭길을 생각할 때, 오늘날 격세지감(隔世之感)을 느끼는 것은 결코 나뿐이 아닐 것이다.

 

돌이켜 보면, 8․15광복(光復) 이후 이 땅에는 민족사(民族史)에서도 보기 드문 격동(激動)과 시련(試鍊)이 거듭되었고, 이 때문에 한동안 우리의 전도(前途)에는 검은 먹구름이 끼었던 것이 사실이다. 해방의 감격(感激)과 환희(歡喜)가 국토분단(國土分斷)의 충격으로 실망(失望)과 좌절(挫折)로 뒤바뀌었는가 하면, 번영(繁榮)에의 희망(希望)과 기대(期待)는 동족상잔(同族相殘)의 참혹한 전란(戰亂) 속에 어이없이 사라져 버렸고, 무분별하게 모방한 정치제도(政治制度)가 가져온 무질서와 혼돈 속에서, 우리는 또다시 빈곤(貧困)과 불안(不安)의 악순환(惡循環)을 되풀이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시련(試鍊)과 고통(苦痛)은 결코 헛된 것만은 아니었다. 그 혹독한 고난(苦難)속에서 우리의 의지(意志)와 소망(所望)도 오히려 굳세고 줄기차게 자라났다. 분단(分斷)과 전란(戰亂)의 상처가 너무나 깊었기에 평화(平和)와 통일에 대한 우리의 희구(希求)도 절실했고, 가난과 불안(不安) 속의 생활(生活)이 너무도 뼈져렸기에 번영(繁榮)과 안정(安定)을 향한 우리의 소망(所望)도 더욱 뜨거워졌다. 우리도 한번 주먹을 불끈 쥐고 힘차게 일어서야겠다는 자각(自覺)이 그 어두운 세월 속에서 우리 국민의 가슴에 서서히 움트기 시작한 것이다.

 

이렇게 싹터오른 국민적(國民的) 자각(自覺)이 응결되어 이 땅에 우렁찬 근대화(近代化)의 고동(鼓動)을 울리게 된 것이 60년대였다. 잠자던 국민의 의식(意識)을 일깨워 근대화(近代化)의 대열(隊列)을 정비하는 일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었고, 맨손으로 시작한 건설(建設)의 과정 또한 순탄할 수만은 없었다. 그러나 허다한 곡절(曲折)과 어려움 끝에 마침내 우리 국민 가운데 강력한 개발(開發)의 의지(意志)가 점화(點火)되어, 정치(政治), 경제(經濟), 사회(社會), 문화(文化)등 우리 생활의 모든 분야에 근대화(近代化)의 물결이 일어나게 되었다.

70년대에 들어와 우리는 60년대의 자각과 성과를 바탕으로 우리의 생활(生活)과 정신(情神)과 제도(制度)에 유신적(維新的) 개혁(改革)을 단행했다. 10월유신(十月維新)을 통해 우리는 숨가뿐 주변정세(周邊情勢)의 변화(變化)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여 우리의 생존(生存)과 번영(繁榮)을 지킬 수 있었고, 거기서 민족(民族)의 중흥(中興)과 통일을 향한 새로운 도약(跳躍)의 발판을 구축하고 있다.

 

한 개인의 일생(一生)에도 고비가 있듯이, 한 민족(民族)의 역사(歷史)에도 커다란 분기점(分岐點)이 있고, 누구에게나 그 생애(生涯)의 방향을 결정지어 준 잊지 못할 한 순간이 있는 것처럼, 세계사(世界史)에 부각(浮刻)된 모든 민족(民族)에게는 그들의 오늘을 결정지어 준 중요한 시기(時期)가 있기 마련이다. 인간의 생명(生命)은 유한(有限)한 것이지만, 민족(民族)의 생명(生命)은 실로 영원(永遠)한 것이기에, 영광(榮光)이 기약되는 역사(歷史)의 전환점(轉換點)은 그 누구에게나 중요하고 뜻있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바로 이러한 시기(時期)에 살고 있다.

5천년의 긴 우리 역사(歷史)에서 민족(民族)의 중흥기(中興期)라고 할 수 있는 시기(時期)가 과연 몇 번이나 있었던가. 우리의 민족사(民族史)를 회고해 보면, 국민 누구나 착잡한 심경(心鏡)을 금할 수 없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우리 겨레는 너무도 불리(不利)한 역사적(歷史的) 환경(環境) 아래 허리 한번 제대로 못펴고 살아왔다. 좁은 땅에 인구(人口)는 많은 데다가, 이렇다할 천연자원(天然資源)조차 없이, 천년(千年)이 하루같은 가난 속에 지내온 것이다. 조상대대(祖上代代)로 물려받은 논밭 몇 마지기에 온 식구(食口)가 매달려 근근히 연명(延命)하는 어려운 생활(生活) 속에서 좀처럼 발전(發展)의 여력(餘力)을 축척하기 어려웠다.

 

거기다 우리 민족(民族)은 숱한 여러 주변강국(周邊强國)들에 둘러싸여 하루도 마음 편할 날이 없었다. 대륙(大陸)이나 해양(海洋)에 새로운 세력(勢力)이 대두하기만 하면 그것은 어김없이 한반도(韓半島)에 대한 침략(侵略)으로 나타났고, 그로 인해 우리 민족(民族)이 당한 고난(苦難)은 이루 형언(形言)할 수 없는 것이었다. 거듭된 난리로 국토(國土)가 짓밟히고 국민의 생명(生命)과 재산(財産)을 빼앗긴 것은 물론, 혹은 길게 혹은 짧게 외적(外敵)의 압제(壓制)에 시달리는 비극을 겪기도 했다.

그러나 그토록 숱한 파란(波瀾)과 곡절(曲折)을 겪으면서도 우리 조상(祖上)들은 5천년의 긴 역사(歷史)와 전통(傳統)을 이어왔다. 이것은 실로 우리 민족(民族)에게 숨은 저력(底力)이 있고, 불굴(不屈)의 생명력(生命力)이 있음을 말하는 것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이러한 민족(民族)의 저력(底力)이 가장 찬연하게 발휘(發揮)된 때에는, 반드시 우리 역사(歷史)에 커다란 분수령(分水嶺)이 이루어졌다. 확실히 신라(新羅)가 삼국(三國)을 통일하여 단일민족국가(單一民族國家)의 터전을 세웠던 무렵이 우리 역사(歷史)에 중요한 전환기(轉換期)였다고 한다면, 문무(文武)가 함께 융성하여 국력(國力)이 내외(內外)로 뻗어나던 이조(李朝)의 세종대왕(世宗大王)시절은 민족사(民族史)에 손꼽힐 만한 중흥기(中興期)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바야흐로 우리 세대(世代)는 근세(近世)100년의 비운(悲運)을 박차고 일어나, 참으로 오랫만에 다시 한번 통일과 중흥(中興)을 이룩할 수 있는 귀중한 기회(機會)를 맞게 되었다.

 

5천년의 긴 역사(歷史)에서 보면 건국(建國) 이래(以來) 3천년의 세월(歲月)은 비록 짧은 한 순간에 불과하지만, 그동안 우리는 참으로 많은 것을 느꼈고 많은 것을 배웠고, 또 많은 것을 이룩했다. 우리가 겪은 시련(試鍊)과 고난(苦難)은 크고 벅찬 것이었지만, 그 속에서 이룩한 우리의 성과(成果)와 전진(前進)은 실로 값지고 소중한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70년대의 어려운 시련(試鍊)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우리 민족(民族)의 숨은 저력(底力)을 새삼스럽게 다시 깨닫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오랜 세월(歲月)에 걸쳐 숱한 내우(內憂)와 외환(外患)을 이겨내고, 자주독립국가(自主獨立國家)를 끈질기게 보전해 왔던 우리겨레 본연(本然)의 잠재적(潛在的) 역량(力量)이 새마을운동(運動)과 10월유신(十月維新)을 통해 또다시 줄기차게 생동(生動)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 우리는 이 저력(底力)을 바탕으로 새 역사창조(歷史創造)의 과제(課題)에 도전하고 있다.

 

중흥(中興)과 통일(統一)의 새 역사(歷史)를 위해서 이제 우리는 세 가지의 어려운 과제(課題)를 동시에 해결해야 한다. 지척에 대치하고 있는 북한공산집단(北韓共産集團)의 끊임없는 침략위협(侵略威脅)으로부터 민족(民族)의 생존(生存)과 안전(安全)을 수호하고 민족사(民族史)의 정통성(正統性)을 길이 계승(繼承) 발전(發展)시키는 일이 그 하나며, 또 하나는 우리의 피땀어린 노력으로 이룩한 도약(跳躍)의 발판 위에서 근대화작업(近代化作業)을 완수하여 모든 국민이 잘 사는 번영된 복지사회(福祉社會)를 건설하는 일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우리의 역사적(歷史的) 현실(現實)과 문화(文化)와 전통(傳統) 위에 민주사회(民主社會)를 이룩하고, 그 기반 위에서 분단(分斷)된 조국(祖國)의 평화통일(平和統一)을 성취하여 부강한 민족국가(民族國家)로서 세계사(世界史)의 진운(進運)에 기여하는 일이다.

 

이 세 가지 과제(課題) 가운데 그 어느 것도 쉬운 과제(課題)가 아니다. 어느 한 과제(課題)만 우선적(優先的)으로 추진하고 다른 것은 뒤로 미룰 수 없고, 세 가지를 함께 추진해야 한다는 데에 남다른 어려움과 도전(挑戰)이 있다. 과연 이 지구상(地球上) 그 어디에, 한편으로는 침략자(侵略者)와 맞서 싸우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경제건설(經濟建設)과 민주화(民主化)의 과제(課題)를 동시에 추진하고 있는 민족(民族)이 있겠는가?

그러나 우리의 과제(課題)가 아무리 어렵고 우리의 앞길이 아무리 험준하다 하더라도 우리는 꾸준한 전진(前進)을 계속할 것이다. 미래(未來)에 사는 민족(民族)에게는 희망(希望)과 자신(自信)이 있을 뿐이며, 사명(使命)을 깨닫는 세대(世代)에게는 분발(奮發)과 노력이 있을 뿐이다.

 

우리가 피땀어린 노력으로 이 과제(課題)를 해결하면 이 땅에는 번영(繁榮)과 평화(平和)와 통일의 숙원(宿願)이 이루어지는 새 시대(時代)가 전개될 것이다. 그 때 우리는 가난에서 벗어난 풍요한 사회(社會), 전란(戰亂)의 위협을 두려워하지 않는 튼튼한 나라, 그리고 남과 이웃을 도우며 사는 떳떳한 민족(民族)의 새 모습을 우리의 후손(後孫)에게 자랑스럽게 물려줄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실로 빈곤(貧困)과 예속, 그리고 분단(分斷)과 전란(戰亂)의 비극적인 시대(時代)를 살아온 우리 시대(時代)의 역사적 사명(歷史的 使命)이요, 벅찬 보람이 아닐 수 없다.

 

두번 다시 찾아오지 않을 민족사(民族史)의 분수령(分水嶺)에 서서 우리의 어깨는 실로 무겁다. 그러나 우리는 이 귀중한 기회를 결코 허송하지 않을 것이다. 지난날의 역사(歷史)에서 앞으로 나아갈 지혜를 발견하고, 미래(未來)의 구상(構想)에서 오늘을 살아갈 힘을 축척하는 데에 전환기(轉換期)의 참뜻이 있으며, 우리가 이러한 뜻을 제대로 깨닫고 실천할 때, 우리는 세계사(世界史)에 우리 민족(民族)의 이름을 찬연히 빛낼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이며, 또 하고 있는 일이다.

 

이미 공지를 하여 드린바와 같이

10월26일(금)11시 동작동 현충원 박정희대통령 묘역에서 추모 행사가 있습니다.

참석하시어 정의와 싸우시는 박근혜대통령에게 큰 힘을 드리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많은 참여 부탁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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