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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군사독재시대를 이러한 측면에서 긍정한다.

작성자바다찾기|작성시간04.07.21|조회수40 목록 댓글 1




'군사독재시대'란 명칭은 좌파의 어법이다. 좌파의 어법을 인식하지 않을 수 없는 사회변화가 계속된다. 확실히, 거시적 측면에서 군사독재시대는 모든 단점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사회에 긍정적인 효과가 있었다. 평범한 일반인들에게는 보편적 진리가 강하게 강조될 수 있었다.

보편적으로 통용될 수 있는 어법 자체가 매스미디어의 여론조작에 혼동되는 대중 때문에, 모든 방면에서 '입증시도'로 바뀌는 점은 안타깝다. 확실히, 세계에서 온화한 보편주의적 보수주의 지식인 속에서는 '김히선' 할머니는 세계적으로 상품거리에 속한다. 국가해체적 공산주의자를 제외한다면, 국군의 존재성을 이렇게도 완벽하게 모르기도 쉽지 않다고 볼 것이다. 전 세계적 차원에서 특화된 가치로서의 정치를 가진 면에서, 한국의 정치는 세계적 차원의 상품성을 가진다고 본다.(이 말을 농담조로 안듣는 사람이 있으면 어쩌지?)

군사독재시대는 지금의 30대와 40대였던 어린층에는 미래의 꿈에 부풀게 되었었고, 우파의 주류를 이룬 기성세대에는 뭔가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각오를 가져다 주었다. 1988년 이후에 군사독재시대에서 아시아 사회에 시민사회 형성의 어려움을 논리적으로 서 있다는 이유 때문에, 그것의 극복을 화두로 내세웠다. 이제는 완벽하게 군사독재시대와 다른 편으로 나아가 보았기 때문에, 오히려 그 시대가 객관화되어진다.

1920년대 출생세대의 인간중심주의 교육은, 군사독재 시대의 강한 규율론과 상호 상승작용이다. 지금에 있어서는 너나 할 것없이 통제되지 않은 욕망의 표출이 노골적이다. 강한 규율론을 좌파들은 반인간적인 측면으로 지적했으나, 실제로는 아시아 사회에서의 독특한 환경이었을 뿐이라 본다. 30대와 40대 다수는 1920년대 출생 세대에게서 배운 바가, 군사독재시대 아닌 속에서도 구현되리라 믿었다. 원론적인 민주화 차원을 지지하고 좌파가 아니었던 과거에 민주란 가치를 독점한 사람에 잠시잠깐 지지의사를 표현한 사람들의 착각이다.

무엇보다 욕망으로 가득찬 사람은 절제욕도 드물고 상대를 바라보는 배려도 적다. 좌파들 내부에서 여론이 잠잠해질 때까지 투쟁 하지 말라는 '과도한'단어를 즐기는 차원도 못 마땅하다.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상황을 알게 하는 것자체를 깨끗하게 단념하고, 거시적 차원에서 보편적인 국민국가의 자유를 설정하려는 정치행위는 옳았다.

오늘날에 있어서는 효과적인 군사행동은 컴퓨터 행동도 포함된다. 중국 해커의 국내 시설의 핵심 영역 공격은 충분히 위력을 보여주었다. 여론형성을 조직적 작위적으로 하는 차원을 말하는 게 아니다. 인터넷으로 네트워크화되는 속에서 디자인되는 삶의 맥락에 들어오는 것을 말한다. 국가안보를 위협하려는 세력일수록, 통신망을 먼저 공격하고 시작할 것이다. 일상적인 차원에서 매일 불건전 정보에 치어서 사는 일상인들은, 솔직한 말로 답답함에 자주 탄식이 나오게 된다. 인터넷 네티즌들이 어느 사이트들의 여론조작을 지킨다는 차원보다, 현재의 정당한 국군의 영역은 주요한 통신망의 서버 지원에도 개입되어 있어야만 한다. 대한민국 국민의 자유를 일거에 무너뜨리는 도발이 있을 때에, 서버가 가장 먼저 타켓이 되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는 보편진리의 소통을 대중들이 믿지 않는다. 욕망의 절제가 풀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좌파의 지식사기 차원의 검증도 어렵다. 현실적인 권력의 문제의 우열이 그대로 승패를 가르는 식이 되었기 때문이다. 보편진리가 안 통하니 세계적 차원의 '싸바싸바'가, 보편진리의 신뢰의 소통관계를 대체한다.

자유민주주의를 믿는 사람들에게는 군사독재시대에 군인의 흔적을 느끼긴 어려웠다. 다만, 투명하게 진솔하고 착하게 살며 보편적인 사고를 가지면 그대로 이익이 되는 사회였다고 파악되었던 시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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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모니크 | 작성시간 04.07.21 The most easiest literature that you write, and b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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