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스크랩] 일본 일기 Ⅱ(사카이미나토항 출발, 오키섬 도착)

작성자독도평화33(황용섭)|작성시간18.05.22|조회수401 목록 댓글 0
볼륨서해에서 - 정태춘음악을 들으려면원본보기를 클릭해주세요.

 

 

일본 일기 (사카이미나토항 출발, 오키섬 도착)

                                                                                                    

 

                                                                                                  황 용 섭

 

 

피곤했지만 숙면은 되지 못했다. 마침내 그곳으로 간다는 설렘이 없을 수가 없다.

 

더없이 화창한 여름 날씨다. 무더위야 태어날 때부터 훈련된 나다. 9시 전후로 식사까지 모두 마쳤다. 자료 백업을 하느라 10시 조금 넘어서 방을 나섰다. 프론트에서 독촉 전화가 온다. 하지만 사진은 그렇다손 치더라도 기록 정리는 때를 놓치면 현장의 소중한 감흥은 다시 찾지 못한다.

 

마츠에역 앞에 있는 관광안내소에 들르니 봄에 만난 한국 아주머니가 얼른 알아보시고 인사한다. 오히려 내가 금방 알아 뵙지 못했다. 오키섬행을 말씀 드리고, 준비를 부탁한 후 시마네현청 부지 내에 있는 竹島資料室’(독도를 죽도로 표기 : 독도에는 대나무가 전혀 없다)로 곧장 버스로 갔다. 역시 사람들이 거의 없었다. 곧 혼자만 남았다. 자료실에 직원이 항상 있어 사진 촬영이 용이하지 않았다. 울릉도에 있는 독도박물관은 여기 자료실보다 규모로는 몇 십 배 크고 촬영 통제 따위는 전혀 없다. 전시 자료도 훨씬 많다. 그도 그럴 것이 일본이 독도를 우리 땅으로 표기한 자료들은 많지만 19세기까지 독도가 일본 땅으로 표기된 지도는 하나도 없다. 시마네현이 사진 촬영을 통제하는 것은 누구를 향한 것일까? 자신들은 울릉도에 와서 마음대로 촬영하면서 여기 자료실은 통제한다? 나는 수용할 수 없었다. 그래서 올해 초봄 여기 방문했을 때 장시간 거의 대부분 동영상 위주로 샅샅이 촬영했다. 오늘은 새로 마련된 것들이 있어 그 부분만 촬영했다. 그리고 고맙게도 직원의 권유가 있어 시마네현이 만든 홍보 동영상을 보았다. 어이가 없다. 그렇게 주입하려고 만든 것이니 꾹 참는다. 아무도 없었기에 그 동영상을 촬영했다. 내가 사용하는 카메라는 일본 제품인데 몰래 소리 없이 촬영할 수 있는 기능이 있었다. 고마운 일이다. 다만 제대로 촬영이 되었는지 확인할 수는 없었다. 올 때마다 스파이 작전하듯 할 수밖에 없다. 현재의 한일관계를 상징하는 부분이다.

 

 

정오 전에 자료실을 나와서 다시 역전의 관광안내소로 향했다. 오늘도 타는 듯이 무덥다. 잠시 걸었는데 땀이 등을 적신다. 안내소에 음료수들을 사 들고 가서 드렸다. 배려에 감사하는 마음을 전한 것이다. 이미 오키섬의 숙소 예약은 해두셨고, 선편도 알아봐주셨다. 역시 타국에서의 동포애는 더욱 진한 법이다. 내가 왜 여기 시마네현을 거듭 방문하고, 오키섬으로 가는지를 이 분은 잘 알고 계시리라.

 

시즌이 거의 끝나가는 시점의 민박인데 2박에 17만 원 정도다. 조금 비싼 듯하지만 목표가 있으니 망설일 이유가 없다. 시치루이항으로 가려고 했으나 선편이 없어서 사카이미나토항(境港)을 이용하게 되었다. 사카이미나토시는 마츠에시와 인접한 곳이다. 커다란 호수와 바다가 보이는 풍광이 있어 아름답다.

 

 

시간이 조금 남았기에 점심을 먹고 직행 버스로 사카이미나토로 향했다. 요금은 1,000(만원)이다.

 여객선 터미널에는 생각보다 사람들이 그렇게 많지는 않았다. 거의 시즌이 끝나가는 무렵이다. 일본에서는 배를 처음 타는 것이라 승선 신청서 작성이 조금 난해하여 어떤 아주머니에게 행선지 기재 도움을 받았다. 오키섬(隠岐島)의 오키는 한자를 알지만 사이고항의 한자를 몰랐기 때문이다. 한문으로 西鄕港이다. '사이고(西鄕)'는 일본 사람들이 가장 존경한다는 메이지 유신 3걸의 한 사람인 사이고 타카모리(西郷隆盛(1828-1877)과 같다. 그런데 표 구매 창구에 가서 학생증(교토국제아카데미)과 함께 제시하니 할인 승선권 신청서를 주며 다시 작성해 오라는 것이다. 할인이 되는 줄 몰랐다. 일본은 사설 학원우리로 보면 학원 형태인데 일본에서는 인가 받은 곳은 학교처럼 인정해주는 듯함. 교토의 명소 등에서도 할인을 해줌이나 학교라고 부르는 이유가 있었다. 분명 학생증이라고 하여 교부받은 것이다. 하여 이번에는 학생 할인 승선권 신청서를 작성해야 하는데 역시 행선지가 어려워 젊은 여자 분이 할인 승선권 신청서를 쓰고 있기에 부탁을 하여 행선지만 적어달라고 했다. 고맙게도 친절하게 도와주어 할인 승선권을 발급 받아 시로시마호(白島丸)에 승선. 여행은 늘 뜻밖의 소소한 일부터 큰일까지를 경험하게  한다.

 

.

 

 

2등실로 들어갔는데 생각보다 자리가 넉넉한 편이다 . 시즌이 거의 끝나갈 무렵이라 그런 듯했다. 바닥에 이불을 깔고 눕거나 덥고 누운 분들이 있었다(냉방 중). 의자가 없는 평평한 바닥이 2등실이다.

 

마침내 마음에 그리던 것이 현실이 되었다. 생각의 중요성을 실감한다. 인간은 예지의 동물이다. 생각한대로 움직이게 되어 있다. 속죄할 것이 있으면 반드시 속죄하고,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염원을 담아 기도하라. 그리하면 모두가 성취될 것이다. 언젠가 읽은 책인데 한 번 발심을 한 소원은 10년이면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다. 하여 한 번은 10년 전 일기를 꺼내어 읽어본 적도 있다. 정말이다. 나는 현재를 살면서 미래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 사람의 현재를 보면 미래가 보인다고들 한다.

 

배는 정확히 오후 225분경 출발했다. 물결은 처음 독도에 갈 때처럼 수줍은 새색시처럼 잔잔했다. 더구나 대형 여객선이라 조금의 흔들림도 없이 서서히 벌겋게 달아오른 태양빛을 받으며 나아가기 시작했다. 안 장군은 이 길의 반대편에서 이리로 오셨을 터이고, 나는 그 반대로 나아간다.

 

곧 최상단 갑판 위로 올라갔다. 엘리베이터가 6층까지 연결되어 있었다. 그만큼 큰 배다. 갑판에 올라가자 오직 한 사람 젊은 여자 분이 있었다. 내가 오르자 목례를 한다. 나도 얼른 답례를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녀가 누군지 몰랐다. 다만 첫인상이 잔잔한 바다를 닮았다는 느낌이 들었을 뿐이다. 나처럼 홀로 여행하며 갑판에 올라와 바다를 응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복잡한 시즌을 피하고.

갑판 중앙으로 나아가 건너편에 가보니 서양인 남자 한 명이 먼저 와 있었다. 이 넓은 배에서 떠나는 항구의 뒷모습과 나아가는 바다를 그리워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한쪽은 산, 반대편은 긴 부두를 지나  배는서서히 대양으로 향하고 있었다. 뜨거운 8월 초순의 오후였다. 선실로 들어가니 많은 사람들이 누워 있었다. 어제 수면이 부족해 잠시 쉴까 하다가 아무래도 몸보다 마음이 더 중요해졌다. 책과 노트를 챙기고 그리고 자판기에서 맥주 한 캔을 구입해 4층 선실 옆 그늘진 갑판 한쪽에 앉았다. 바다를 바라보며 떠오르는 사색의 바다로 나를 던져두었다. 얼마나 소중한 시간인가. 이럴 땐 저절로 감사함이 우러나게 마련이다. 인간의 구조가 이렇게 되어 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안 장군을 생각하게 되었다.

 

 

      오키섬 가는 길

 

 

 

320년 전에도 이 바람소리 들렸으리라

뱃전에 부딪는 분노의 만가(輓歌)여!

 

 

울릉도에 온 당신 넋을 따라

이 몸 마츠에(松江)에서

오키로 거슬러 올라가나이다

오사카, 교토, 시마네현 마츠에로

당신 그리며

당신처럼 홀로 가고 있나이다

목숨 버린 당신 앞에 부끄러워

고개 숙이지만

임이시여! 어여삐 헤아리소서

 

그토록 절규하여 찾은 땅

후손들의 어리석음

영면(永眠)을 깨우니

참으로 서럽기 한량 없나이다

 

 

아만(我慢)의 늪에서 한걸음도

보지 못한 망국의 길 자초함을

부디 용서하지 마옵소서

 

 

애민충정(愛憫忠情)으로 외쳤으나

업수이 여긴 조정 당인들

오만으로 버무린 몽매(蒙昧)함

그 앞에 뿌린

절망과 의분(義憤)

아직도 이 바다에 붉게 뿌려지고 있나이다

 

2015.8.7. 금. 오키행 시로시마호(白島丸)에서

    

 

......................................................

배 뒷머리 갑판에 100명은 족히 앉을 수 있는 의자들이 마련되어 있는 곳이 있었다. 배가 어느 항구에 도착하였는데 나는 이곳이 목적지인 줄 알았다. 출발할 때 사이고항까지 약 4시간 소요된다고 알고 있었는데, 그보다 훨씬 전에 배가 항구에 닿기에 이상하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승객들이 하나둘씩 내리기에 나도 내릴까 하고 출구로 나갔는데 많은 사람들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내가 있는 선실에도 옆의 손님은 움직이지 않는 걸 보고 다시 의구심이 들어 승무원에게 물으니 사이고항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제야 여러 곳을 거쳐 가는 줄 알았다. 이렇듯 허술하게 여행한다. 항구의 이름을 보니 니시노시마(). 아마도 선내 방송을 하였을 것인데 내가 알아듣지 못한 것이다. 같은 오키제도에 포함되나 내가 가려는 사이고항과는 다른 여러 곳의 섬들 중 하나다. 아무튼 독도 운동이든 연구든 언어 장벽을 극복하지 않으면 공염불임을 새삼 깨닫는다.

 

안도하고 다시 야외 좌석이 즐비한 갑판으로 갔다. 거기엔 최상단 갑판에서 만났던 그 검은색 상하의를 입은 젊은 여자 분이 앉아 있었다. 그도 내리지 않았던 것이다. 그제야 그에게 말을 건넸다. 안도감에서 나오는 긴장 해제다. 짧은 동안의 구면이 된 것인지 보내주는 그녀의 미소가 바다를 닮은 듯 싱그러워 보였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녀는 다름 아닌 할인 승선권 구매 시 신청서 작성을 도와준 바로 그 젊은 여성이었다. 갑판에서 만났을 때 먼저 그녀가 목례를 한 이유를 그제야 알게 된 것이다. 그녀는 처음부터 나를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인연이란 묘한 것...

 

재의 위치 등을 확인하는 대화를 나누다가 좌석 뒤편의 벽에 부착된 지도 앞으로 함께 가서 그녀가 설명해주는 이야기를 들었다. 오키섬은 크게 두 곳으로 나뉘는데 도고(島後) 도젠(島前)이다. 오키노시마쵸(隠岐島町))가 있는 곳은 도고. 나와 그녀는 도고로 가고 있는 것이다(나의 행선지가 도고임은 신청서 작성 시 그녀는 이미 알고 있었다). 거기가 사이고항이 있는 곳으로 오키섬의 중심지로 보인다.

 

그녀의 고향은 야마구치현이라고 했다. 초봄에 시마네현에 와서 알게 된 여학생인 사치요의 고향과 같았다. 야마구치의 어느 곳이라고 구체적 지명을 말했으나 나는 야마구치만 기억이 되었다. 이토 히로부미와 아베 총리 고향이다. 대표적인 조선 침략자들이 몰려 있는 곳 중의 하나가 야마구치현인다.  아무튼  여기서도 언어와 일본에 대한 무지가 드러난다. 그런데 시마네현 요나고시(米子市)의 요나고대학으로 유학을 와서 공부하고 있다고 했다. 요나고는 17세기 때 약 70여 년 동안 임란 후 나라 전체를 살필 겨를이 없는 틈을 이용, 우리의 울릉도, 독도 어장을 요나고 사람들이 몰래 도둑 어업을 행한 바 있다. 그 사람들의 불법어로 현장을 본 안용복 장군의 활약(1693년과 1696년 두 차례의 渡日)으로 중단케 한 후 조선의 영토로 막부로부터 확인 받은 바 있다. 내겐 결코 남다른 지역이 아닐 수 없다.

아무튼 그녀는 생활과학(우리나라의 예전 가정교육학과 비슷?)을 전공하며, 현재 3학년이라고 했다. 더운지 얼굴에 가볍게 땀이 맺혀 있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갑판에 나와 있으면 한여름 태양이 더욱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으니 당연하다. 하지만 개의치 않는 모습이다. 방학을 맞아 여행을 다닌다고 했다. 나도 오키섬엔 처음이고 더더욱 낯선 곳이라 동행하면서 여러 모로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을까 하였으나 자전거를 가져왔다고 했다. 그렇다. 자전거가 최고의 교통수단이다. 자세히 보니 매우 건강미가 있는 학생이다. 섬 여행은 자전거가 제격이다. 자전거를 매우 좋아한다고 했다. 무더운 여름 날, 검은색 상하의를 입은 것이나 대체로 작은 키의 평균 일본 학생보다는 비교적 키가 크고 다부진 체격을 가진 여학생이었다. 나 역시 사고 이후 체력 회복 확인을 위해 경주에서 서울까지 자전거 여행을 28세 때(88올림픽) 한 적이 있는데, 이 학생의 자전거 여행 모습을 보니 더욱 반가운 것이다. 그러나 그녀의 얼굴은 매우 부드럽고 고운 얼굴이다 평생 거의 운동을 해온 내가 보기엔 아주 건강미가 있어 보이는 학생이다. 게다가 이렇게 무더운 여름날, 북적거리는 시즌을 막 벗어난 지금 홀로 섬 여행을 떠나는 것만으로도 심신이 건강한 청년 여성임을 알겠다. 참으로 보기 좋은 청춘이 아닌가. 건강한 청춘의 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사람이 아름답다는 건 이런 것을 말하는 것이다.

 

함께 동행은 못하지만 길 안내 정도는 물어볼 수 있을 것이다. 숙소 이야기가 나와서 물어보니 텐트를 가져왔다고 한다. 점점 놀랍다. 과거 내가 그랬지만 이 학생과는 다른 처지였다. 동료들이 있었고, 남자가 아닌가. 그러고 보니 여기 일본의 분위기를 조금씩 알게 된다. 그 대화를 끝으로 각자 헤어져 도착할 때까지 다시 만나지 못했다. 그 사이 나는 일기 정리를 위해 조금씩 메모해 두었다. 배는 4시간 만에 사이고항에 도착했다. 오래도록 염원하던 바로 그 섬에 마침내 내가 도착한 것이다. 생각하면 언젠가는 이루어지는 법이다. 다만 시간이 걸릴 뿐이다. 안 장군도 여기에 오셨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예부터 여기가 항이었다면 그러하셨을 것이다. 사이고항 앞 바다 양쪽 멀리 산이 있어 바람을 막아주고, 항구가 큰 활처럼 생겨서 큰 배들도 안전하게 정박하기 좋은 곳으로 보였다. 항구 양 옆에는 섬 내부를 이어주는 듯한 또 다른 수로들이 있는데, 거기에는 많은 배들이 정박해 있어 언뜻 보아도 해상 교통의 요충지 같았다. 좋은 자리에 위치한 항구다. 그래서 오키섬의 중심 항구가 아닌가 한다.

 

배에서 내려 그 학생을 찾아보았으나 승객이 워낙 많고 배의 높이가 6층이나 되는 큰 배이므로 만날 수가 없었다. 내려서 만나는 방법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다만 안내소 이야기는 한 적이 있었던 것 같다. 모든 승객들이 각각 제 갈 길을 가고 나만 덩그러니 남았다. 터미널을 나와 근처의 지도를 보았다. 도착시간이 625분경인데 섬의 햇살은 어느 새 많이 누그러져 있었다. 처음 온 곳이라 아무래도 안내소에 들러 정보를 얻는 것이 필요할 듯하여 터벅터벅 자유로운 마음으로 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거기서 누가 인사를 하는 것이다. 내 눈의 視野가 좋지 않으니 금방 인식하지 못하고 일순의 시각이 지난 후에야 바로 그 학생이 기다리고 있음을 알았다. 배에서 한 말을 잊지 않고 그녀는 안내소로 와서 먼저 지도로 내가 일러준 숙소를 찾아보았던 것이다. 이런 점들은 일본인에게서 여러 번 발견한 부분이다. 뜻밖의 만남에 다시 한 번 반가움과 고마움을 느꼈다. 그녀의 얼굴이 약간은 상기된 듯했다. 소통이 불확실했으니 약간의 염려도 있었으리라. 그녀도 내리기 전에 다시 확인하지 않았고, 일본어가 아직 무척 서투른 나로선 제대로 알아들었는지도 모르는 처지라 그녀가 그냥 갔다고 해도 전혀 말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건 모두 내 문제일 뿐이다. 그런데 안내소에서 기다리고 있을 줄은 정말 몰랐다.

 

그녀의 자전거는 앞과 뒤에 여행 짐으로 무장된 날씬한 사이클용이었다. 뒤에는 텐트가 있고 앞에는 다른 짐이 있었다. 더운지 콧등에는 연신 땀방울이 맺힌다. 이미 해는 산에 가려 거리는 한산하고, 어둠이 서서히 내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나의 숙소는 그녀의 캠프장 가는 길 도중에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 점이 나로 하여금 덜 미안하게 하는 것이다. 다만 이미 7시가 가까웠는데 조금이라도 일찍 도착해서 밝을 때 텐트를 쳐야 할 터인데 나로 인해 자전거를 끌고 가야하니 그것이 미안했다. 10분 이상 걸은 것 같다. 계속 본인이 가진 지도를 보면서 길을 안내해주었다. 그녀도 초행길임은 나와 다를 바 없다. 다만 일본인이므로 생래적으로 더 익숙해져 있고, 거기다 내가 도움을 청했으니 최선을 다해주는 것이다. 일본에서 이런 고마운 일은 여러 번 경험했다. 참으로 감사한 일이고, 그럴 때마다 내가 너무 불쌍해 보이는 사람인가를 의심하게 했다^^. 하긴 손을 보면 영락없는 장애인이다.

 

나의 숙소는 나지막한 산 아래 좁은 신작로 옆에 위치한 후타미깡(二見館)’이란 곳이다. 후타미(二見)는 미에현(三重県)의 명승지인 후타미 해변에서 나온 이름인 것 같은데 일본 해군의 포함 중에 태평양 전쟁 때 사용되었던 후타미호가 있었다. 독도 공부하는 내게는 잘 어울리는 숙소명인 것 같다. 다행히 길옆의 간판을 그녀가 바로 찾아 알려주었다. 문을 두드리자 주인아주머니는 기다리고 계셨던 듯 금방 아는 척을 했다. 그녀가 이미 다 설명한 후였다.

 

무더운 날씨에 약간의 오르막인 숙소까지 자전거를 끌고 동행해준 그가 고마워 마침 그 숙소 앞에 가게가 있어 잠시 기다리게 하고는 얼른 가서 음료수 두 개를 사서 그녀에게 주었다. 그녀가 사양했지만 나도 물러서지 않았다. 내가 할 수 있는 감사의 표현이었다. 그리고 내일 저녁 식사를 같이 하기로 걸어오면서 이미 약속을 했기에 내일 만나자는 인사와 함께 헤어졌다.

 

숙소는 전형적인 일본의 다다미방 구조를 갖춘 이층집이었다. 내 기숙사보다 넓다. 어두워서 전망은 거의 볼 수가 없었다. 섬이고 시내에서 조금 올라온 곳인데다 산 아래인지라 불빛이 거의 없는 조용한 곳이었다. 휴식하고 정리하기엔 딱 좋다. 시즌이 끝나 숙소에는 나 외에 다른 일본인 남자 두 명이 있었다. 간단히 정리하고 나니 식사가 준비되었다고 알려와 내려가니 두 사람이 식사를 거의 마쳐가고 있었다. 해산물이 주를 이룬 맛있는 식사가 깔끔하게 마련되어 있었다. 아침과 점심이 포함된 숙박비라 생각보다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나중에 알았다). 게와 생선 등 입맛에 맞는 한국 음식과 별반 다를 바 없는 훌륭한 저녁 식사였다. 여행의 피로는 좋은 인연을 만나는 것과 거기에 맛있는 식사까지 곁들여진다면 정말 금상첨화다. 피로가 한 순간에 모두 녹아내리는 것이다.

 

식후 샤워를 하고 노트북으로 오늘 하루를 정리. 배 안에서 작성한 것들을 노트북으로 옮겨 정리한다. 사방 고요한 혼자만의 귀한 시간을 오키섬에서 맞이하는 첫 밤이다. 어찌 감회가 새롭지 않겠는가. 나를 여기까지 보낸 것은 독도다. 그 독도를 만나러 여기에 온 것이다.

 

내일은 가장 먼저 오키향토관을 찾기로 했다. 거기를 답사하는 것이 오키섬 방문의 2차적인 목표다. 앞으로도 거듭 찾아와야 할 곳이지만 우선은 거기부터다. 강치잡이 어부 나카이 요자부로(1905년 독도침탈과 관련된 자)의 고향이기도 한 오키섬이다. 여기서부터 찾아가야 한다. 이곳 사람들도 과거 독도를 몰래 들락날락했다. 요나고는 내륙 해안이므로 여기보다 더 독도가 먼 지역이다. 오키섬이 일본에서는 독도가 가장 가까운 지역이다(157.5km이고, 울릉도와 독도의 거리는 87.4km). 17세기에 목선으로 독도까지는 2~3일은 가야 도착할 수 있었다. 그 독도를 지나 울릉도까지 가서 불법어로 활동을 한 셈이다.

 

 

 

잠들기 전 자장가를 떠올려  본다.

 

 

바다는 언제나 설렌다

설레는 바다는 육지가 되고

육지는 설레는 바다가 된다

아무도 찾아주지 않아도

기다려주지 않아도

그 설렘으로

살아있음의 환희를

느낄 수 있는 바다의 고독을

나는 좋아한다.

    

 

 

2015.8.7. 오키섬 민숙 후타미깡(二見館) 千鳥室에서

 

다음검색
스크랩 원문 : 독도 평화 33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