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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밤 쓴 글이 난삽 미완하여 마저 정서해 새로 올립니다

작성자훈민학당|작성시간17.03.19|조회수182 목록 댓글 2

딱딱한 제 글이 혹시 노심중에 잠시 우스개가 될까합니다

 

제가 1994년 5월 초순 당시 아직 그런데 경험이나 나이도 젊은때 최진실과 칼기폭파범 김현희를 두고 암시와 유인의 공작에 말려서 이런저런 소리끝에 마침내 상주시내에 며칠간 수천장의 복사물을 뿌려 폭로하고자 실제 뿌려 시민을 놀라게 한일이 있었습니다 이것도 하루만에 다 뿌리면 사건 내용이 슬쩍 쉬쉬 덮이고 치울까봐 며칠 뿌린 것입니다

이런일은 일단 남이 즐겨말할만한 재밌는일의 한두사람이 본것이 아닌일임에도 지금껏 극히 자기와 가까운 이해관계의 사람들 끼리만 하는 말 정도이고 여전히 상주에 살아온 저를 두고도 서로 간에 터부처럼 꺼리어 말해주지 않는 보안사항 처럼 되었습니다

당시 김영삼대통령의 때에 총신적 인물인 최형우가 개입된 까닭이었나 생각은 되지만 알수는 없는일로 당시 김영삼대통령은 최진실을 밀었으니 이해의 5월5일 어린이날 행사에 최진실이 어린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텔렌트로 뽑혀서라며 김영삼대통령과 같이 나와 간첩들이 하는짓 처럼 모종의 최진실을 추천하는 의미를 보였습니다 구체적인 내용 확인은 이때 녹화를 볼수 있을 뿐 아니라 당시 특히 스포츠 신문들 같은 것에 보면 제 말과 일에 대조를 할수 있습니다

몇년전 최진실이 죽고 언제 누구, 나는 평소 주위로 소문이 흘려져 그렇게 서로 소식하는 사람도 없는데 1994년의 이때 일을 아는 누구 한사람이 언제 별 내용도 없는 오랜만의 전화가 왔는데 나중에야 알고보니 최진실 죽고 누가 그 뼛재를 가져간일이 보도되었던 것으로 이사람은 내가 최진실을 좋아했기에 이때 내가 가져가지 않았나 싶어 뭐하고있나 전화해봤던 것이었습니다

사실 그때 최진실의 자살도 간접이나마 분명 저와 관련이 있습니다 그 앞서 94년 12월 처음으로 갈현동 최진실 집을 한번 찾아갔다가 못만나고 오던 날도 최진실의 집앞에서 저와 동성인 배우 배종옥을 보았고 또 제가 다녀간 이날 밤에 최진실 매니저인 배병수가 살해 당했다고 이 서울 다녀온 바로 다음날 아침 보도가 떠들석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아마 그런관계였다는것이겠지 하고 이후 저는 더 최진실에 대해 달리 말하지 않아왔던 것입니다

그리고 2008년7월말 내가 훈민정음해례본을 공개하며 이때부터 제가 세상에 공공연히 드러나기 시작하고 두어달만에 최진실은 죽은 것입니다

지금 그때 보내고 뿌린 글을 생각하면 부끄럽습니다

http://blog.naver.com/spdlqjrl/100014575330

 

저는 이렇게 끝내 최진실을 직접 대한적이 없는데 비해 김현희는 한번 보았습니다

사실 김현희는 그 전에 간첩이 제게 접근되어 그에 대해 일러준 일이 있었습니다 다만 그때는 무심코 듣고 아무생각없이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김현희가 독약을 먹지 않았던 것은 아니고 원래부터 그 같은 남자공작원은 진짜 독약을 주고 김현희는 가짜 독약을 주었다는 것입니다

다만 나는 그냥 그렇겠거니 했을뿐입니다

그후 1994년 5월초 복사물을 뿌리고 곧 잡혀가 그해 12월 집행유예로 나오고서 얼마 안된 다음해쯤 김현희가 상주에 강의라며 부리어 온자리에서 봤을때 김현희는 하고 많은 말중에 그 자기가 그때 분명히 독약을 먹었는데 어째 안죽었던것인지는 모르겠다며 좀 미련하게 보일정도로 그때까지도 그 이유를 진짜 모르는듯 일러주는 사람도 없는듯 의혹스런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아마 1987년 체포 이후 보안의 몇몇속에 갇히다시피하여 가려진채 그때까지도 그런말에 대해 아무도 뭐라 서로 얘기하거나 말해주는 사람이 없었던 것같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때 미처 이말에 대해 대답을 소홀히 한채 엉뚱한 다른 질문이나 하고했던 것입니다

나중에야 나도 이것이 그 간첩이 내게 일러준 무슨 간접 서로 신호같은 것이 될수있는 내가 일러줘야 하는 것임을 느껴 알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여전히 미혼 독신입니다 전혀 사회생활이 되지 않을뿐 아니라 살던곳에서도 남은 상상활수도 저는 이루 말할수없는 고초의 나날이었지만 어디 외지로 나가 살수도 없었습니다 더우기 혼처 같음이 어디 들어오겠습니까

다만 최진실은 예쁘고 돈이 많은데 김현희는 특수훈련의 몸이 세서 나의 명줄에 맞지 않고 같이 간첩으로 몰릴수도 있다는 이런 편들어 하고자는 말이나 당시 내게 들리는 정도인데 이것도 김영삼 정부때 혹 최형우로서만이 아니라 나중에 알고 보니 최진실의 어머니 고향이 상주로 최진실이 할머니에게 다녀 가기도 했다는 것입니다

지금으로서는 그때 너 죽지않고 남조선 가서 나하고 만나라고 가짜 독약 줬던 것이다 라고 말했다면 싶을 뿐입니다

 

지난해쯤인가 내가 농담삼아 예전 그 내가 최진실 뼛재를 가져갔나 의심했던 자에게 그동안 좀 괘씸의 골리고 싶은 생각이 들어서인지 무심코 전화의 말중에 박근혜에게 청혼했다 했는데 이 또한 이사람은 예전 제일을 아는데서 더우기 그렇게까지 의심했을 정도이니 또 제 이말을 그대로 믿을 것이 아니겠습니까?

아 어쨌거나 만약 이 친구에게 또 제가 박근혜 나 만나라고 덮어 씌워 쫓겨 내려 보낸 것이다 해봐도 될까요?

http://blog.naver.com/spdlqjrl/110115349037

 

사실 저는 얼마전까지 국회의원이 되면 박대통령을 만나볼수도 있겠지의 생각까지 했었는데 지금 국회의원 예비후보로 나왔지만 지금 그 본선진출의 가능성 조차 알수없고 된데도 이렇게 탄핵이 되려 생각에서 차질이라 할수있습니다

다만 말이 이에서 한편 무슨소리를 하고있는 것이냐의 물음이 있을만할것이기에 새삼말씀드립니다만 저는 지금 무슨 딴 생각으로서 여기 이런말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근혜님과 저는 자주 접할 기회는 물론 서로 나이나 물론 피상적 선입견에서이겠지만 저는 사실 근혜님 같은 여자로는 좀 그렇습니다 서로 그리 스타일도 아닐 것같을뿐 아니라 쯧 여태 이래 살아온데서 제나이가 이제 얼만데 인생 그렇게나 당해 격어오고도 또 뭐가 더 부족해 급기야 님에 얽어 그런 기구한 길로 들지모를 길을 본다는 것이겠으며 지금 국회의원도 워낙 여태 그렇게 살아오는 것이 너무 딱한일에서 이거라도 하는게 낫겠다만이 아니라 당장 제 여태 9년간 처한 훈민정음해례본사건의 해결을 위해서도 마침 때인거 같으니 이리 나가보자인 것입니다

말이 나오다보니 이렇게 되었지만 생각보다 근혜님을 두고 언감생심을 떠나 보통 생각할수있는 뭐 별 딴뜻의 그런거로서는 아니니 이런점에서는 그냥 가볍게 지나쳐 생각하시고 대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렇지만 앞으로 야인으로서 다소 진정의 한가한 겨를이라도 생기면 구미 가는길의 겨를에 잊지 않고 한번 다담의 찾아 주시기라도하면 바랍니다

이상입니다 보중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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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행복미생물 | 작성시간 17.03.19 횡설수설한 글을읽을시간이없어요.글의중심이먼데요...자살한최진실은머꼬.거기다..레카는 머라꼬 ..
  • 작성자훈민학당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7.03.19 행복미생물님이 여유없는겁니까 근혜님이 그럴거란 말입니까? 여기오는 분들 바쁜맘 대개 이해는 하지만 바늘은 허리에 맬수없고 밥은 익어야 먹는거 아닌가요?
    아무리 마음 바빠도 차분히 살펴볼만한것인지의 진정된 성의를 바라지만 알겠습니다 앞으로 이런 글은 해도 가급적 문학방으로나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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