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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에게 상처입은 동갑내기 세 남자 이야기

작성자안민마루|작성시간14.04.15|조회수734 목록 댓글 1
박근혜에게 상처입은 동갑내기 세 남자 이야기
 친구이자 경쟁자인 세 대선주자, 김무성 정몽준 김문수
 

지난 9월26일 미국 로스앤젤레스(LA)의 한인회 주최 만찬장.

 

‘LA한인축제’에 참석차 한국에서 온 여당 정치인들과  교민회 간부들이 어울린 자리였다.

 

저녁을 겸해 몇 ‘소주 폭탄주’가 몇 순배 돌아간 뒤 새누리당 김무성 의원이

 

김문수 경기지사에게 다가가 ‘러브샷’을 제의했다.

“문수야 한잔 하자.”, “그래 무성아.” 두 사람 사이에 격의 없는

 대화가 오간 뒤 김무성 의원이 정몽준 의원 얘기를 꺼냈다.

 

“몽준이한테 전화 한 번 해보자.”
 

국내에 있던 정몽준 의원과 국제전화가 연결됐다.

 

두 사람은 전화기를 돌려가며 정 의원과 통화했다.

 

통화의 결론은 “셋이서 앞으로 잘 해보자”였다고 한다.

 

국내에 있던 정 의원과 미국 LA에 있는 두 사람이 의기투합해

 

이른바 ‘LA 도원결의(桃園結義)’가 이뤄진 것이다.

도원결의는 말로 끝난 게 아니었다.

 

세 사람은 실제로 ‘3인협의체’를 만들어 수시로 모임을 갖기로 했다고 한다.

김문수 경기지사, 김무성 의원, 정몽준 의원. 1951년생 토끼띠

 

동갑내기 세 남자는 새누리당의 차기 대권 주자다.

 

‘여당 차기 대선 후보로 누구를 지지하느냐’고 물으면

 

세 사람은 순서를 바꿔가면 1~3위를 오르내린다.

 

여론조사 기관 리얼미터가 12월 둘째주에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김무성

 

의원이 10.4%로 1위, 정몽준 의원이 10.3%로 2위, 김문수 지사가 8.7%로

 

3위였다.

 

이쯤되면 서로 날선 신경전을 주고 받을만도 한데 세 남자는 뜻밖에도 친하다.

왜 친할까. 우선 세 남자 사이엔 동병상련(同病相憐) 같은 게 있다.

 

세 남자는 지난 10여년에 걸쳐 박근혜 대통령에게 제각각 덴 상처를 하나둘씩 안고 있다.

2009년 한나라당 대표가 된 정몽준 의원이 박근혜 대통령과 회동하고 있다. 정 의원이 이날 회동에서 오간 얘기를 언론에 알렸다가 박 대통령으로 부터 강하게 항의를 받았다.

2009년 한나라당 대표가 된 정몽준 의원이 박근혜 대통령과 회동하고 있다. 정 의원이 이날 회동에서 오간 얘기를 언론에 알렸다가 박 대통령으로 부터 강하게 항의를 받았다.

 

 

 

 

 

정몽준 의원은 박 대통령과 서울 장충초등학교 동기다.

하지만 박 대통령과 정 의원은 명목상 동기동창일 뿐이다.

공인된 ‘친하지 않은 사이’다.

 

정 의원은 2011년 발간한 자서전 ‘나의 도전 나의 열정’에서
박 대통령과 얼굴을 붉혔던 일화 2건을 공개한 적이 있다.

 

2009년 정 의원의 당 대표 시절 박 대통령과 회동했다가 서로 간

 커뮤니케이션이 어긋나 이후 큰 언쟁으로 번진 일이 있었다.

 

2002년엔 남북축구 개최 과정에서 실무적인 문제로 언짢은 일이

 있었다고 한다.  

보다 근본적으로 두 사람은 서로가 필요할 때마다 외면했던 과거가 있다.

 

2002년 한나라당을 탈당, 한국미래연합을 창당한 박 대통령은

무소속 정 의원의 도움을 요청했지만 정 의원이 거부했다.

 

얼마 뒤 정 의원이 대선에 출마하면서 박 대통령에게 손을 잡자고

했지만 이번엔 박 대통령이 고개를 가로젓고는 한나라당으로

 돌아가 이회창 후보를 지지했다.

‘2007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을 앞두고 박 대통령이 정 의원의

도움을 요청하지만 이번엔 정 의원이 소극적인 모습을 보인다.

 

초등학교 동기 두 사람은 건건이 어긋나는 ‘화성남 금성녀’였다.

 

김문수 지사와 박근혜 대통령

김문수 지사와 박근혜 대통령

운동권 출신 김문수 지사와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 박 대통령은 태생적으로 어울리지 않았다.

 

하지만 두 사람은 삶의 태도가 늘 진지하고 성실하다는 점에선 공통점이 있었고, 그 대목에서 서로에 대한 호감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박 대통령이 한나라당 대표가 되고 얼마 지나지 않은 2004년 8월, 전남 구례에서 있었던 당 연찬회에서 두 사람은 격하게 충돌했다.

김 지사는 정수장학회 등 박 대통령의 과거사 문제를 거론하며

“모두에게 피해가 간다.

 

빨리 사과하고 바로잡는 게 대표에게도 좋고 당에게도 좋다”고
직공했고, 박 대통령은 “이미 여러 차례 사과했는데 이런 말을

하는 것은 대표 흔들기”라며 바로 맞받았다.

 

박 대통령은 김 지사 등을 겨냥해 “총선 때 도와달라고 요청할 때는 언제고 이제와서 그러면 너무 치사하고 비겁하지 않느냐”고도 했다.

그날 반주를 곁들여 저녁을 먹고 난 김 지사는 “(박 대표가) 21세기에 유신을 선포했다”며 거듭 흥분했다.

 

이후 김 지사와 박 대통령은 당내 비주류와 주류로 갈라져 서로를

경원(敬遠)했고, 이후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의 관계가 이어

졌다.

김무성 의원과 박 대통령 사이에도 구절양장(九折羊腸)같은 곡절이 있다.

 

김 의원은 2007년 대선후보 경선 당시 ‘친박 좌장’으로 박 대통령을 도왔지만 2010년 세종시 수정안을 두고 박 대통령과 충돌하면서

탈박(脫朴)했다.

 

‘김 의원이 파문(破門)당했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당시 분위기를 잘 보여주는 사진 한 장이 있다.  

 

박근혜 대통령과 김무성 의원

박근혜 대통령과 김무성 의원

2010년 4월의 어느날, 국회 본회의장이다. 김 의원이 박 대통령

옆에 어색하게 앉아 있다.

 

앞서 김 의원이 박 대통령에게 인사했으나 못 봤는지 인사를 받지
않는 장면이 연출됐다.

 

박 대통령을 바라보는 김 의원의 눈길에 야속함과 애절함 같은 게

 느껴진다.
김 의원은 이후 친박계가 당 주류로 치른 2012년 총선에서 낙천한다.

 

‘탈박의 대가(代價)’라는 얘기가 있었다.

 

하지만 그는 탈당하지 않고 대선에서 선대본부장을 맡아 박 대통령의 당선을 돕는다.

 

 

 

 

대선 과정에서 김무성 의원 뿐만 아니라 김문사 지사와 정몽준 의원도 박 대통령을 도왔다.

 

김 지사는 2012년 새누리당 대선 후보 경선전에 끝까지 참여함으로써 박 대통령을 도왔고,

 

정 의원은 공동 선대위원장을 맡아 박 대통령 만들기에 일조했다.

 

세 남자 모두 상처입은 과거를 접어둔 채 박 대통령을 도왔다.

얽히고설켜 끈끈한 세 남자

 

정몽준 김무성 의원과 김문수 지사는 서로 서로 친하다.

정몽준 김무성 의원과 김문수 지사는 서로 서로 친하다.

박 대통령에게 상처받은 세 남자들은 서로 친하다.

 

얽히고설킨 관계가 서로를 단단히 묶었고, 동병상련의 감정이 이들을 더 가깝게 했다.

정몽준 의원과 김무성 의원은 인척관계다.

 

정몽준 의원의 형수인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김무성 의원의 외조카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정 의원과 김 의원은 상당히 우호적이다.

 

서로 밀어주고 당겨준다.

2010년 김무성 의원이 한나라당 원내대표에 도전장을 내밀었을 때 당 대표가 정몽준 의원이었다.

 

정 의원은 당시 청와대 측에 “지금 원내대표 일을 제대로 할 사람은 김무성”이라며 적극 김 의원을 천거했다고 한다.

 

두 사람은 2012년 대선에선 선대위원장(정몽준)과 선대본부장(김무성)으로 호흡을 맞추며 대선 승리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김문수 지사와 정몽준 의원은 서울대학교 상과대학 70학번 동기다.

 

두 사람은 학창시절에는 서로 얼굴을 본 적도 없다고 한다.

 

경영학과를 다닌 김 지사는 노동운동을 했고, 경제학과의 정 의원은 재벌 2세였다.

 

하지만 “두 사람이 뒤늦게 대학 동기 티를 엄청나게 내고 있다”고 주변 사람들은 말한다.

정 의원이 김 지사를 부르는 호칭은 ‘우리 김지사’다.

 

행사장에서 김 지사를 소개할 때면 정 의원은 “노동운동 관성을 과감하게 벗어던지고 전향한,

 

용기있는 분”이란 칭찬으로 시작한다.

 

2012년 대선후보 경선전 당시 두 사람은 여의도 남중빌딩에 나란히 사무실을 냈다.

 

경선룰에 불만을 품은 정 의원이 경선을 포기하자 김 지사가 정 의원 사무실을 넘겨받았다.

‘MS’라는 이니셜을 공유하는 김무성 의원과 김문수 지사도 ‘친한 티’를 적잖이 내는 관계다.

 

두 사람 사이의 호칭은 ‘문수야’, ‘무성아’다.

 

둘은 15대 국회에 함께 입성했고 같은 상임위(환경노동위) 소속이 되면서 친해졌다.

 

민주계 출신 김무성 의원은 당의 주류였고, 좌파 민중당 출신 김문수 지사는 비주류였다.

김 지사가 보수 정당에 착근(着根)하는 과정에 김 의원의 도움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

 

김무성 의원은 18대, 19대 총선에서 잇달아 낙천했다.

 

그때마다 제일 먼저 전화해서 위로와 격려를 건넨 이가 김 지사였다고 한다.

세 남자는 조만간 여당의 대선 후보를 두고 경쟁 관계에 들어갈

수도 있다.

 

지금까지는 애정이 담뿍 담긴 눈길로 서로를 바라봤지만 그들의

관계가 앞으로 어떻게 바뀔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세 사람은 일단은 “서로 도와가며 2017년에 정권 재창출을 해내겠다”고 말하고 있다.

 

박 대통령에게서 상처 받은 과거를 가진 세 남자들이 의기투합해

 

박근혜 이후의 미래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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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녹차사랑 | 작성시간 14.04.15 세 남자의 걸어온 인생사 멋져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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