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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석, "김일성은 북주민의 자주적 삶 은인"격찬

작성자봉양|작성시간05.08.11|조회수127 목록 댓글 2
이종석, “金日成은 北주민의 자주적 삶 은인” 격찬
외교안보사령탑 이종석, 이념성향 분석   
*아래 기사는 “위헌`탈법`월권”NSC 비판 증폭의 관련 박스기사임

이종석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차장은 청와대 차관급 인사 중 노무현정권 출범 이후 자리를 유지하고 있는 유일한 인물로서, 대통령의 신뢰가 절대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노대통령은 사석에서 “이 사무차장이 올리는 보고서가 최고”라고 극찬할 정도이다.

이를 반증하듯 이 사무차장의 독주논란을 청와대 회의석상에서 정식 거론했던 박정규 전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은 지난 1월 경질됐고, 주요 외교 현안에 대해 NSC와 다른 시각의 보고서를 내던 박남춘 전 국정상황실장도 인사제도비서관으로 자리를 옮기기도 했다.

‘김일성 영생론’옹호 김남식에 사사

이종석 사무차장은 58년생 성균관대 행정학과 78학번이다. 그는 고시준비를 하다 실패한 후 일반 기업체에서 잠시 일하다 스물아홉 나이에 대학원에 진학했다.

대학원생 이종석은 석사 2년차이던 88년 8월 최장집(고대 교수), 손호철(서강대 교수), 손학규(서강대 교수) 등이 이끄는 좌파성향‘한국정치연구회’에 가입, 금기시되던 계급론, 자본론,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집중 공부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기서 이씨와 교류했던 인물들이 정해구(성공회대 교수), 정대화(상지대 교수), 김연철(정동영 통일부장관 정책보좌관), 김근식(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최성(열린우리당 국회의원) 등이다.  

특히 이씨는 송두율의 내재적 접근법을 차용하고, 북한전문가로 알려진 김남식 등과 교류하며, 북한에 대한 ‘냉전적’접근방식에서 벗어난 ‘내재적 비판적’ 접근방식을 채택하게 된다. 내재적 비판적 접근방식이란 ‘북한원전을 통해 북한을 먼저 이해한 뒤 비판하자’는 것이 골자이다.

이씨가 ‘새로 쓴 현대북한의 이해’등에서 ‘당대 최고의 북한전문가’로 격찬되고 있는 김남식은 60년대 초 간첩으로 남파됐다 전향했다.

김남식은 지난 해 사망 시까지도 ‘김일성 영생론’을 옹호하며 주체사상 등 친북논리를 남한 내 전파시켜 온 인물이다.

이씨와 함께 한국정치연구회 활동을 했던 모 학자는 “이종석씨는 대학원시절부터 김남식의 자택을 수시로 방문하며 사사받았다”고 말했다.

“김일성 정통성 기반 북한정국 돌파”

이종석씨는 89년 김일성의 항일빨치산운동 연구로, 93년 김일성 주체사상과 조선로동당 연구로 성균관대에서 각각 석사, 박사학위를 받았다.

‘북한지도집단의 항일무장투쟁의 역사적 경험에 대한 연구’라는 제목의 석사논문에서 이씨는 “김일성의 항일무장투쟁은 허구가 아니며 가짜 김일성론이 오히려 허구”라고 결론짓는다. 이 같은 입장은 이씨의 최근 저술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지속되고 있다.

이씨는 석사논문에서 김일성을 가리켜 “군사지도자로서의 탁월성을 보여준다”고 평가하거나, 학계에서 입증돼지 않은 김일성의‘보천보전투’*‘조국광복회’활동에 대해 각각“역사적 의의는 결코 과소평가될 수 없다”“진정한 의미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반일 민족통일전선체였다”고 평가하고 있다. 그의 석사논문 중 일부를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김일성의 명망성이야말로 당시 북한 전역에서 자율적으로 분출하고 있던 지망인민정권들이 자연스럽게 자신들의 지도자로 김일성을 선택하게 하는 제일의 요인이었다고 할 것이다...당시 김일성은 일반민중에게 공산당의 영웅이 아니라 민족의 영웅으로 부각되어 있었다...요컨대 조국광복회에서 민족통일전선운동의 실천적 경험자였던 김일성과 그의 동료들은 그들의 항일무장투쟁의 성가로 담보된 정통성을 기반으로 해방 후 혼란했던 북한정국을 정면으로 돌파하고...”  

“주체사상은 민족적 자부심 고취 시도”

이씨는 93년 ‘조선로동당의 지도사상과 구조변화에 관한 연구’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후, 94년 임동원 전 국정원장의 도움으로 세종연구소에 들어갔다.  

이씨는 박사논문에서 “주체사상이 북한에 적용된 것을 비판적으로 연구한 결과 완전히 실패한 것”이라고 결론 내렸다. 그러나 이씨와 교분이 있는 모 교수는 “박사논문을 포함한 그의 각종 저술에는 주체사상의 현실적 실패가 지적될 뿐 인권탄압 등 북한정권에 대한 본질적 비판은 찾기 어렵다”고 평가했다.  

95년 이씨가 저술한 ‘현대북한의 이해 사상*체제*지도자(역사비평사)’에서 주체사상에 대한 부분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이 사상은 명백히 1950년대 중반부터 1960년대 중반까지 소련과 중국의 영향으로부터 자주성을 획득하기 위한 김일성 지도부의 노력과 자력갱생적 삶의 추구, 그리고 민족적 자부심을 고취하려는 일련의 시도들의 연장선상에서 제기된 것이었다. 바로 이러한 주체사상의 기치를 내걸면서 김일성은 북한주민들에게 자주시대의 개척자로서 그리고 자신들에게 자주적 삶을 안겨준 은인으로 각인되었다.”

김일성에 “천부적인 사교력과 판단력”

이씨가 2000년 발간한‘새로 쓴 현대북한의 이해’에서는 “북한의 남조선혁명론이 좌절됐다”“북한의 통일방안은 (연방제가 아닌) 국가연합 쪽으로 선회하고 있다”고 자신하면서,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바로 이러한 수령은 북한에서 어버이수령으로도 호칭된다. 부모 이외에 어버이가 있을 수 없는 우리에게는 낯설고 우스꽝스러운 호칭이지만 북한의 논리에서는 자연스러운 호칭이다...관찰자들이 전하는 천부적인 사교력과 판단력은 김일성이 상당한 수준의 외교가였다는 사실을 짐작케 한다...국가에서 수령과 인민대중이 하나가 되는 일심단결이 강조되고 최고의 윤리로 최고지도자에 대한 충성과 효성이 강조된다. 수령이 대중으로부터 충성과 효성을 맹세 받는 대신에 이민위천(以民爲天)의 정신으로 인민을 대하고 ‘인민에 대한 믿음과 사랑의 정치’ 즉 인덕정치를 공언한다. 이 인덕정치야말로 현대와 봉건의 착종으로 특징지어지는 김일성 카리스마의 표상이라고 할 수 있다.”

병사들에 대북적개심 교육 말라

이종석씨는 노무현 정권 출범 이후 NSC사무차장으로 일하면서도 종종 이념시비에 휘말렸다.

지난 해 6월19일 육사에서 열린 2004무궁화회의에서 열린 육해공 장성 70여 명을 상대로 한 특강에서는 군 장성들에게 이렇게 발언했다.

“앞으로 병사들을 교육할 때는 북한에 대한 적개심에 기초해 방어선에 서 있는 것보다 조국에 대한 자부심과 긍지, 시민정신에 기초해 서 있는 것이 훨씬 더 강한 군대가 되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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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석 사무차장의 각종 저술 중 인용

▲“북침인가 남침인가의 문제는 한국전쟁을 살펴보는 데 무의하다고 할 수 있다” <90년 3월5일 한국정치연구회가 펴낸 북한정치론에서 이종석씨가 집필한 부분>

▲“북한의 거주이전*여행자유제한은 사회주의 특성과 남북군사 대치 하에서 택한 방어적 조치이다”<90년 2월 사상문화운동>

▲“통일의 제1요건은 외세의 간섭을 배격하는 자주성확립과 평등의 존중이다”<90년 3월 성균관대 학보>  

▲“문민정부는 반공반북에 의존했던 수구냉전세력과 결별해야 하며 정권안보수단으로 이용돼 온 국가보안법 등 구시대적 반공반북관계법안은 폐기돼야 한다”<94년 실천문학 봄호>

▲“김정일은 오케스트라 연주 중 특정 연주자의 반음착오까지 알 정도로 음악에 조예가 깊으며 종자론이라는 영화예술론까지 내놓을 정도로 문예이론도 상당한 수준이다.” <94년 7월12일자 한겨레신문. 이 부분은 이후 ‘새로 쓴 현대북한의 이해’ 등에서 다시 반복된다.>

▲“휴전 이후 반세기 간 계속되는 긴장과 대립, 그리고 사건의 연속 속에서도 한반도에서 전쟁이 재발하지 않은 것은 순전히 한국정부나 미국이 잘해서가 아니다. 그 해답의 반은 김일성과 북한사회가 가지고 있다. 즉 그는 우리에게 무모하리만치 음모적이고 저돌적이며 강경해 보이지만 실은 전쟁을 두려워하며 밀고 당기는 협상을 할 줄 아는 인물이었던 것이다...분명한 것은 김일성에게는 상당한 외교적 수완과 역량이 있었다는 점이다.”

▲“광폭정치는 인민을 위한 정치는 그릇이 커야 하며 그릇이 크지 못하면 대중을 다 담아내지 못하며 대중이 정치를 외면하게 된다거나 로동계급의 당의 정치는 전체인민을 정치의 주인으로 되게 하여야 하는 것인 만큼 어디까지나 정치의 폭이 넓어야 한다는 논리에 기초한다. 오늘날 김정일의 광폭정치는 대내적으로 주민단결에 이용될 뿐만 아니라 대외적으로는 경제위기 속에서 북한이 남한기업인들은 물론 교포실업가들과 종교인 등을 북한으로 불러들이는 논리적 발판이 되고 있다.

▲“김정일이 적어도 지난 20년 동안 권력핵심부 내에서 누구도 적으로 만들지 않는 인사정책을 써왔다고 할 수 있다...아마 이러한 안정성은 그의 조직관리능력이 만만치 않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김성욱기자  2005-05-25 오후 1:4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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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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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靑山 | 작성시간 05.10.05 요즘 부쩍 벌갱이들이 설쳐 대는것 같은데..?! 목적이 있겠지? 믿는데가 생겼고...미친놈들..후회할날 있을거다
  • 작성자애맹키로 | 작성시간 06.06.03 간첩의 잣대가 뭣인지?? 무장공비만 간첩인가? 쯧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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