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스크랩] 유시민은 이런 사람

작성자타원궤도|작성시간06.01.25|조회수564 목록 댓글 8



저는 살면서 조금은 다채로운 경험을 했습니다.
유신과 5공화국 시절 포악한 권력에 대들다가 감옥에도 두 번 가 보았습니다. 그 바람에 남들이 4년이면 마치는 대학을 나오는 데 무려 14년이 걸렸습니다. ...................

(유시민 홈페이지 올린글 中)



柳時敏의 항소이유서


--------------------------------------------------------------------------------


柳時敏의 <항소이유서>
본 적 : 경상북도 월성군 내남면 망성동 163

주 소 : 서울특별시 구로구 시흥 1동 한양아파트 11동 1107호

성 명 : 류 시 민

생년월일 : 1959년 7월 28일

죄 명 : 폭력행위등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


요 지

본 피고인은 1985년 4월 1일 서울지방법원 남부지원에서 폭력행위등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으로 징역 1년 6월을 선고 받고 이에 불복 다음과 같이 항소이유서를 제출합니다.


다 음


본 피고인은 우선 이 항소의 목적이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거나 1심 선고형량의 과중함을 호소하는데 있지 않다는 점을 분명히 밝혀두고자 합니다. 이 항소는 다만 도덕적으로 보다 향상된 사회를 갈망하는 진보적 인간으로서의 의무를 다하려는 노력의 소산입니다.

 

또한 본 피고인은 1심 판결에 어떠한 논란거리가 내포되어 있는지 알지 못하며 알고 싶은 생각도 없습니다. 자신의 행위의 정당성을 판단하는 기준으로서 본 피고인이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은 하느님이 주신 양심이라는 척도이지 인간이 만든 법률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법률에 대한 전문지식이 없는 본 피고인으로서는 정의로운 법률이 공정하게 운용되는 사회에서라면 양심의 명령이 법률과 상호적대적인 모순관계에 서게되는 일은 결코 일어날 수 없으리라는 소박한 믿음 위에 자신의 삶을 쌓아올릴 수밖에 없었으며 앞으로도 역시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


고문가해자 유시민 감금,폭행,고문
피해자의 증언


서울대 민간인고문 사건 피해자 전기동 氏
"민간인 체포*감금*폭행*고문 온갖 인권유린"

1984년 9월17일부터 11일간 유시민(柳時敏) 당시
서울대 복학생협의회 대표(現 열린우리당 의원)를 비롯한 20여 명의 운동권 학생들은
他대학 학생 등 4명을 소위 ‘프락치’로 몰아
20시간에서 최고 5일간 학내에서 감금하고‘프락치’임을 자백하라며 고문했다.

피해자 4명은 시멘트 바닥에 꿇어앉혀진 상태에서 주먹과 발길질로 무차별 폭행을 당했다.
이 중 전기동씨(50)는 두 손이 묶인 채 구타를 당하다
화장실로 끌려가 ‘물고문’까지 당했다.
운동권은‘자갈’‘숟가락’등으로 全씨의 입을 벌린 후 주전자로 입과 코에 물을 퍼붓고,
세면대 물통에 얼굴을 쳐박아 숨을 못쉬게 했다.
그래도 자백(?)을 하지 않자 복도로 끌어내 꿇어 앉힌 뒤
양무릎 안쪽에 ‘각목’을 끼워놓고 위에서 밟는 고문을 계속했다.
全씨에 대한 감금과 폭행, 고문은 30여 시간 이상 계속됐다.
사건의 전모는 全씨가 실신해 병원으로 옮겨지며 드러났다.

당시 사건으로 유시민, 윤호중(현 열우당 의원), 이정우(현 변호사), 백태웅 등
고문 주동자 4명은 ‘폭력행위등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 혐의로 실형을 살았다.

그러나 유시민 의원은 이후 자신의 저서와 선거홍보물 등 표현물에서
당시 사건을‘민주화운동’으로 미화해왔다.
현재에도 그의 홈페이지 인사말에는
“포악한 권력에 대들다가 감옥에도 두 번 가보았다”고 적고 있다.

84년‘서울대 민간인 고문사건’의 피해자 전기동(現 관악구청 보건과 근무)씨는
유시민 의원의 행적에 대해 “거대한 기만과 사기”라고 표현했다.

"11일간에 걸쳐 벌어진 감금, 폭행, 고문에 대해
피해자들에게 진심어린 사과는커녕 거짓된 美化로 일관해왔습니다.
당시 사건은 柳의원이 복학생협의회 창립총회에서
집행위원장으로 선출된 뒷풀이 행사에서 비롯했고,
柳의원은 4명의 모든 사건 과정에 개입하고 주도했습니다.
나와 다른 피해자들의 체험 그리고 당시의 판결문들이 이를 입증해주고 있습니다."

피해자 정용범씨의 1984년 10월19일자 검찰에서 적성한 진술조서에는
"유시민이 정용범의 소지품을 검사하면서 소지품 목록을 일일이 챙기면서 확인하였다"고 적혀 있다.

가해자 중 한사람이자 당시 학도호국단 학생장이었던
백태웅의 1984년 11월2일자 진술조서에도
"9월27일 오후에 학교에 도착하여 써클 연합회사무실에 가니
녹색 천으로 눈이 가리어진 채로 전기동이 앉아있는바
누가 구타했는지를 유시민에게 물어보니..."로 적혀 있다.
하나같이 복학생 대표를 맡은 선배격의 柳의원이 사건의 주동자였음을 나타내고 있다.

20여년 전의 ‘악몽’은 피해자 4명의 인생에 커다란 상처가 됐다.
특히 7급공무원시험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서울대를 출입해 오다 봉변을 당한 정용범씨는
벌거벗겨진 상태에서 눈을 가리고 몰매를 당한 후 정신분열증세를 보여왔다.

鄭씨의 어머니 전영재씨는 "얼마나 많이 맞았던지 온몸이 시퍼렇게 멍들어 있었다.
용범이 말에 의하면 빨가벗겨서 눈을 가린 상태에서
집단으로 무차별 폭행을 당했다고 한다.
용범이는 그 사건 이후 정신이 혼미해져서 대인관계를 할 수 없는 상태"라고 말했다.

全씨는 당시 사건에 대해
"흔히‘민간인 단순폭행’이라고 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고 말했다.

"이 사건은 불법체포, 감금, 집단폭행, 고문, 협박 등
인권유린 행위가 복합적으로 일어난 사건입니다.
정치적 출세를 위해 민간인의 인권을 유린한 것을 민주화운동이라 한다면
저나 피해자들을 민주화운동을 박해한 사람이란 말입니까?"

전기동씨는 柳의원의 저서 등에 기술된‘민주화운동’의 표현에 대해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등 법정투쟁을 벌여왔다.
그는 이런 모든 문제 제기에 대해
"도덕성이 없는 지도자는 지도자 역할을 수행하게 해서는 안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유시민 의원이 보건복지부 장관에 내정되고, 차기 후계자로도 거론됩니다.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파렴치한 비인도적 범죄에 대해 반성하지 못하는 柳의원은
지도자로서의 윤리적 자격이 없는 사람입니다.
장관이라니요? 그는 지도자로서 자격미달입니다."

전기동씨는 최근 자신의 경험담을 담은 저서를 준비 중이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 북마크
  • 공유하기
  • 신고하기

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사오정 | 작성시간 06.03.29 싸가지 없는 자에대한 표현이 유시민 스럽다고 한다고 합디다,
  • 작성자봇대 | 작성시간 06.04.04 발갱이들 세상이네, 관세음보살.
  • 작성자덕팔이 | 작성시간 06.04.19 한심한 나라입니다. 인물이 없으니 ㅊㅊ
  • 작성자깨비 | 작성시간 06.05.25 유시민이야.. 기회주의자에 맹목적 주인 섬기는 머슴 같은 인물이져.목적없고 무능한 주인에 한없이 거대하게 커져버린 몸둥아리만 귀가 없고 머리가 없는 무능함과 자기성찰이 없는 선원중 한명일뿐이져..!
  • 작성자흑기사 | 작성시간 06.06.02 이런 싸가지 없는 놈이 뭐 차기...ㅋㅋㅋ 강아지 풀 뜯어 먹는소리...기가차서 할말이 없네요...바뀌면 지구를 떠나보낼 놈중에 낄것이다...ㅎㅎㅎ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