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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女子는 가정용·뺑뺑이용·오솔길용 있어야【盧대통령 정신분석 시리즈-1】

작성자이대형|작성시간06.08.19|조회수67 목록 댓글 0
『女子는 가정용·뺑뺑이용·오솔길용 있어야』
『조져야 돼, 그렇게 해야 꽉 잡고 살 수 있어』
노무현 자서전 中【盧대통령 정신분석 시리즈-1】
 
『한국만이 자기나라 군대에 대한 작전통제권을 갖지 않은 유일한 나라이다...
작통권이 없을 때 한반도에서 대한민국 정부가 자주적 정부로서 역할을 하겠느냐...
한국 대통령이 미국 하자는 대로‘예’‘예’하길 한국 국민이 바라는가...
작통권 환수 때문에 들어가는 예산은 미미하다고 말할 수 있다.
지금도 충분하다는 것이다』(8월9일 연합뉴스 인터뷰 중(中))


노무현 대통령의 전시작전통제권과 관련 발언이 수위를 넘고 있다.
盧대통령은 △韓美 양국이 共有하고 있는 戰時작전통제권을 마치 미군이
독점하고 있는 것처럼 과장하여 작전통제권 ‘환수(還收)’라는 말을 계속하면서
△NATO집단방위체제 등도 韓美연합사와 같은 작통권체제로 운용되고 있음에도
한국만이 전시작통권을 갖지 않은 유일한 나라라고 주장하고 있다.

부잣집 친구 가방 면도칼로 찢어

혼돈(混沌)에 가까운 盧대통령 「막말」과 「거짓말」의 배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유년시절로 돌아가 볼 필요가 있다.

그는 1994년 출판된 자서전 「여보, 나 좀 도와줘」에서 유년시절 가난과 열등감,
그로 인한 반항적 태도로 거짓말·도둑질 등 엉뚱한 사건을 일으켰으며,
이것이 자신을 오늘날까지 몰고 온 지칠 줄 모르는 마음 속의 풍차였다고 덧붙혔다.
가난, 열등감으로 인한 상처가 거짓말까지 마다않는 자신의 에너지원이 됐다는 고백이다.

《국민학교시절 기억에 남는 일의 대부분은 가난과 열등감, 그로 인한 반항적 태도,
이런 것이었다. 그러나 자존심과 우월감도 그에 못지 않게 강했다.
우월감과 반항심이 가끔 엉뚱한 사건을 일으키기도 했다...

초등학교 5학년 때였을 것이다. 그때만 해도 다들 보자기에 책을 싸 들고 다니거나
퍼런 돗베로 만든 가방을 들고 다녔다. 가끔 고무에 헝겊을 댄 가방도 있었는데
읍내의 부잣집 아이들이나 간혹 가지고 다니는 고급 가방이었다.
어느 날 체육시간에 당번이 되어 친구와 둘이서 교실을 지키다가 그렇게 생긴
새 가방 하나를 발견했다.둘이서 가방을 뒤적여 보다가 그만 면도칼로 가방을
죽 찢어 버렸다. 무슨 심술이었는지 모르겠다.
체육시간이 끝나자 교실은 곧 발칵 뒤집혔다. 담임 선생님은 몽둥이를 들고 범인을
찾으려 했지만 나는 끝내 자백을 않고 버텨 넘어갔다. 그 일을 생각하면 본래 내가
모범생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 일 말고도 거짓말을 했거나 훔친 일이 몇 번 더 있었기 때문이다...

나만 가난했던 것도 아닌데도 어린 시절의 나는 유독히 가난을 심각하게 여기며 자라났다 
그리고 그 상처는 나의 잠재의식 속에 어떻게 해서라도 나만은 가난에서 벗어나야겠다는
열망과 함께 모두가 가난하지 않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막연한 꿈이
동시에 심어졌던 것 같다.
어찌 보면 상반된 이 두가지 생각이야말로 지금까지 지칠 줄 모르며 나의 삶을
오늘날까지 몰고 온 내 마음 속의 풍차였는지도 모르지만
(「여보, 나 좀 도와줘」 169~172)》

이불 개라면 물 젖은 발로 질겅질겅

어린시절 상처에서 기인하는 盧대통령의 거친 기질은 결혼 생활 이후에도 계속됐다.
그는 「여보, 나 좀 도와줘」에서 부인 권양숙씨에 대해 상습적으로 폭행했었다고
적고 있다.
다만 운동권생활을 시작하면서 과거의 사고방식에 대해 후회하고, 변화됐다고 적고 있다.
관련 부분을 인용하면 아래와 같다.

《나는 우격다짐을 해서라도 기를 꺾어 놓아야 한다는 생각에 눈을 부라리기도 했고
고함 치기도 했다. 그러니 작은 말다툼도 걸핏하면 싸움으로 비화되기 일쑤였다.
나는 별 생각을 다 했다.
「아 속았구나」싶기도 했고 나도 잘못하다가는 큰형님처럼 될지 모른다는 생각이
나를 더욱 초조하게 말들었다. 견딜 수 없는 초조감과 불안감에
나는 급기야 아내에게 손찌검까지 하는 남편이 되고 말았다...나는 아내가
조금이라도 불평을 하면 소리를 질러 대었고 그 말에 심하게 반발을 하면
다시 손을 올려붙였던 것이다. 정말 기억하기에도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어느 날 갓 결혼한 친구들과 함께 소주병을 들고 수유리 뒷산에 올라갔던 일이 있었다.
친구들 중 하나가 나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는 것이었다.
『어떻게 盧형은 형수님을 그렇게 꽉 잡고 삽니까? 비결이 뭡니까?』
나는 그 자리에서 무슨 인생의 대선배나 되는 듯이 대답해 주었다.
『조져야 돼, 밥상 좀 들어 달라고 하면 밥상 엎어 버리고, 이불 개라고 하면
물 젖은 발로이불을 질겅질겅 밟아 버리는 거야.
그렇게 해야 꽉 잡고 살 수 있는 거야.』
물론 농담이었지만 전혀 거짓말도 아니었다.(「여보, 나 좀 도와줘」 124~126)》


盧대통령은 이 같은 술회 이후에 『「운동」을 시작하면서부터 나의 여성에 대한
잘못된 생각이나 아내에 대한 태도가 전혀 달라졌다. 「사회운동」은 나의 다른
모든 생각과 행동들을 바꿔놓은 것처럼 여성에 대한 사고방식도 바꾸어 놓았다.
사실 나는 이 말을 하기 위해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숨기고 싶은 이야기들을
털어놓은 것이다』라고 적고 있다.


남학생이 화 내는 것 이해 안 돼

盧대통령은 연이어 운동권변론을 벌이던 85년 경의 또 다른 경험을 이렇게 적고 있다.

《부산에서 운동권 청년들이 만든 공해문제연구소에 내 사무실의 일부를 내주고
있을 때였다. 그때 나는 청년들과 그곳에서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많았다.
어느 날 그렇게 이야기를 하던 중에 여성에 대한 이야기가 화제에 올랐다.
나는 대뜸 이렇게 농담을 했다.
『그래도 남자한테는 여자가 서너 명은 항상 있어야지. 한 명은 가정용.
또 한 명은 함께 춤을 출 수 있는 뺑뺑이용, 그리고 또 한 명은 인생과
예술을 논하는 오솔길용, 이 정도는 있어야 되는 거 아니야?』
순간 청년들의 얼굴 색이 갑자기 변해 버렸다. 『아니 변호사님이 어떻게
그런 말씀을 다 하십니까?』청년들의 표정은 농담이 아니었다. 나는 참 난처했다.
그리고 이해할 수 없었다. 여학생이 화 내고 덤비는 것은 이해할 수 있는데
남학생이 펄쩍 뛰는 것은 이해조차 되지 않았다.
(「여보, 나 좀 도와줘」 126~127)》

盧대통령은 이 같은 고백 이후 역시 『그 이후 나는 그때까지 나의 행동과
사고방식에 깊은 반성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점차 여성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고 책도 많이 읽고 생각도 많이 하게 되었다.
물론 나와 아내 사이도 달라졌다.
나도 아내를 존경할 줄 알게 된 것이다.
아직 실천은 제대로 하지 못하지만 어쨌든 달라진 것만은 틀림없다』고
덧붙히고 있다.

金成昱 기자

[김성욱 조갑제닷컴 기자]
http://www.chogabj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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