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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사모 문학방

추억의 스피커

작성자푸른 돌(靑石)|작성시간23.03.14|조회수43 목록 댓글 7

 

 

추억의 스피커

 

 

이전에 

시계도 라디오도 

없던 시절

 

동네 집회소에 

엠프를 설치하여 

집집마다 스피커 달아

새벽부터 틀어 주면

자정까지 쩌렁 쩌렁 

 

추억의 스피커가

시계와 라디오 역활

아침마다 신나는 

행진곡과 새마을 노래

 

우리 모두

한 마음 한 뜻으로

힘차게 달리자

 

나라가 튼튼해야

나도 있고 가족도 있어

애국 애향 정신으로 

다 같이 손잡고

잘 살아 보세

 

2023년 3월 12일 

'조용하고 평안한

일요일 아침에' 

푸른 돌(靑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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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푸른 돌(靑石)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3.03.14 3.거의 2~30년 전에 모교인 초등학교가 폐교되었다. 다섯 개 마을 중간에 학교가 있었다. 그 중에도 상일이네 동네가 가장 멀어 거의 십 리 길인 3~4킬로미터는 될 것이다. 하루에 네 번 정도 다니는 정기 버스는 통학 시간과 맞지 않았다. 새벽 6시에 읍내 가는 첫 차가 있고 다음은 오전 10시 오후 3시, 읍내서 나오는 막 차가 저녁 6시다. 어머님은 그 당시 머리에 잔뜩 이고 삼십 리 길인 읍내 시장을 걸어서 다녔다. 지금 보면 차비 아끼겠다고 삼십 리 길인 읍 장을 걸어서 왕복 했으니 얼마나 딱한 일인가? 그 걷는 그 시간에 차 타고 집에 일찍 와 다른 일을 그만큼 더 하면 고생도 덜하고 더 유익한 일이 아니었을까 싶다. 아무튼 읍 장을 걸어 다니는 분들이 더러 있었으나 동네에서 그렇게 많지는 않았다. 그 몇 분 중에 어머님이 항상 끼었다.
    부모님은 남보다 부지런히 사셨다. 아버님은 농사 지으며 작은 방배를 가지고 어업을 겸했다. 바쁜 농번기가 지나면 매일 배 타고 바다로 나갔다. 동네 집안 당숙 분과 같이 배를 탔는데 공동 소유다. 그 시절은 바다에 나가면 항상 도다리 놀래미 멸치 새우 같은 고기를 잡으면 읍내 장에 내다 팔았다..=>
  • 작성자푸른 돌(靑石)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3.03.14 4.상일이는 바닷가에서 나고 자라서 어릴 때부터 회를 좋아했다. 아버님은 작은 아들이 회를 좋아하니 집에 오자마자 살아 펄떡거리는 광어나 놀래미 회를 자주 쳐주셨다. 겨울에 많이 잡히는 보리 새우는 싹싹 씻어 회를 치면 그렇게 고소하고 맛있을 수 없다.
    그런데 조용하고 평화롭던 동네에 문제가 생겼다. 맞은 편 육지에 대 단지 공단이 들어오고 조금 더 있다 큰 제철소까지 들어왔다. 북서풍이 불면 공단에서 내뿜는 매연이 많이 날아 왔다. 얼마 안되어 상일이네 동네의 바다와 온 산천이 오염으로 물들었다. 뒷산 계곡의 큰 바위들이 하얗게 변했고 바닷가 물속 바위들도 백태가 끼었다. 바다 해초가 없어지니 고기도 사라지고 낚시꾼도 보이지 않았다. 말하자면 죽은 바다가 된 것이다. 바다에서 먹고 살던 수많은 어민들이 난리가 났다. 공단과 정부를 상대로 집단 손해배상 소송을 벌였다. 오랜 소송 끝에 어업 종사자와 피해 주민에게 어느 정도 보상이 나왔지만 어디 평생 삶의 터전을 잃은 보상으로 가당치나 하겠나. 아마 산업 발전 과정에 이런 일이 비일비재 했을 것이다. 전국의 수많은 공단과 고속도로가 개발되면서 정든 고향을 떠나야 하는 실향민이 많이 생겼다..=>
  • 작성자푸른 돌(靑石)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3.03.14 5.이산 가족은 잘 하면 언제라도 고향을 찾을 수 있다. 산업화 과정에서 실향민이 된 분들은 아예 고향 마을이 사라졌으니 평생 가슴 속 정한(情恨)의 응어리로 남아 있을 것이다. 남들은 속도 모르고 '충분히 보상도 잘 받았는데 뭘 그러냐?' 할지 모른다. 그러나 고향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평생 가슴에 묻고 살아야 하는 '추억의 향수와 애환'은 누가 찾아주고 보상해 줄 것인가?
    고향은 누구나 소중한 추억의 보물 창고다. 고향이 없는 사람은 없다. 고향이 시골인 분들이 대개 애향심이 강하고 많은 추억을 간직하고 있다. 도회지가 고향인 사람들은 마을이 계속 발전하고 커지며 옛 모습이 사라지니 향수나 애향심이 그만큼 엷을지 모른다. 세계적인 대 문호나 예술가가 농촌 출신이 많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시골 사람은 자연 속에서 나고 자라 대개 감성과 심성이 순수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웃집 숟가락이 몇 인지 잘 알고 지낸다. 그래서 우리 선조들은 어려울 때 서로 돕는 두레나 품앗이로 상부상조의 정신이 몸에 배었다.
    저 지난 밤 사이에 비가 좀 내렸다. 비가 많이 와 겨울 가뭄을 해갈시켜 주면 좋으련만 하늘이 아직은 아니라는 것 같다. 봄 기운은 깊어만 간다..^*^
  • 작성자▒ 飛龍 ▒ | 작성시간 23.03.15 너무나 멋진 글 고맙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집집마다 스피커를 달아놓고
    방송을 듣던 시절이 생각납니다

    좋은 밤 보내세요
  • 답댓글 작성자푸른 돌(靑石)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3.03.17 그렀죠..
    그 시절은 시계나 라디오도
    매우 귀한 시절이었습니다..
    아직도 날씨가 꾸리하고
    쌀쌀합니다..늘 건강히 멋진
    날들이 되세요..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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