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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사모 문학방

새벽 종소리

작성자푸른 돌(靑石)|작성시간23.03.23|조회수24 목록 댓글 7

 

 

새벽 종소리

 

 

이전에 상일이네 고향 마을은 

120~30세대의 제법 큰 경사진 동네

 

높은 층층 계단의 다랭이 논으로

모든 운반 수단은 오로지 지게로 날라

 

동네 맨 위 빈 터에 작은 교회가

오롯이 외진 곳에 자리 잡고 있었는데

 

교회 바로 아랫집 맹인 삼촌이 

한동안 교회 집사로 열심히 신앙 생활

 

그러다 언젠가 목사님이 떠나고 

교회는 문닫고 오랫동안 방치되었다

 

맹인 집사님이 교회를 관리하며

새벽 6시 정오 저녁 6시에 종을 쳤다

 

언젠가 교회 가서 종을 봤는데

큰 산소통을 거꾸로 매달은 것이었다

 

그런데 종소리가 얼마나 컸던지

바다 건너 먼 육지 마을까지 들렸단다

 

시계나 라디오도 없던 시절이라

근동은 그 종소리가 시간 알리는 알람

 

새벽마다 단잠 깨우는 종소리가

지금도 아슬히 먼 꿈결처럼 들리구나

 

2023년 3월 23일 

'밤 사이에 비가 조금 와 

포근한 목요일 아침에'

푸른 돌(靑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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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푸른 돌(靑石)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3.03.23 3.상일이는 지금도 고향을 떠나는 날을 잊지 못한다. 아버님 돌아가시고 3년 여 동안 어머님이 혼자 농사를 지었지만 너무 힘들었다. 큰 일은 남의 손을 빌리지만 농사를 짓다 보면 자질구레한 일이 여기 저기 차고 넘쳤다. 마당에 곡식을 널었는데 갑자기 소나기라도 오는 날이면 홍역을 치른다. 남의 집도 똑같은 비상 상황이라 누가 와서 도와 줄 수도 없다. 며칠 동안 정성 들여 말린 곡식이 순식간에 물에 흠뻑 젖는다. 그러니 얼마나 속 타고 애태우며 힘들었겠는가?
    겨울 방학이 되어 고향을 내려가기 전 날 밤에 형님이 안방으로 불렀다. 무슨 일인가 싶어 불안한 마음으로 형님 앞에 앉았다. 평소에 집안 사정을 잘 얘기해 주지 않았지만 물어보지도 않았다. 아직 학생이고 막내라 항상 형님께 의지하는 마음이 있었다. 어려운 집안 사정을 처음 동생에게 털어놨다. 그동안의 경과를 간단히 말하고 결국 어머님을 서울로 모시자는 것이었다. 상일에겐 청천벽력 같은 충격적인 이야기였다. 우선 어머님이 승락을 하실지 몰랐다. 어느 자식도 어머님이 고향을 떠난다고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이다. 형님네의 어려운 사정을 처음 알게 되었다. 뒷 날 무겁고 착찹한 심정으로 고향을 내려갔다..=>
  • 작성자푸른 돌(靑石)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3.03.23 4.고향을 내려가 처음 며칠은 조용히 독수공방으로 혼자 지냈다. 죽마고우 친구들이 들락거렸지만 분위기를 이상하게 느꼈는지 슬슬 눈치를 보다가 갔다. 그렇게 며칠을 지내다 할아버지 제삿날이 되었다. 제삿날 며칠 앞두고 어머님께 말씀을 드렸다. 서울 형님네 사정을 소상히 알리고 어머님을 서울로 모시기로 했다니 처음에는 펄쩍 뛰었다. 천부당 만부당 하다며 죽어도 고향서 죽고 살아도 고향서 살 것이라 하셨다. 그래서 어머님께서 정 서울을 안 가신다면 고사리같이 귀여운 서울 손주들은 굶어 죽고 집은 남의 손에 넘어가 자식들이 모두 길거리에 나앉게 될 것이라 했다. 그랬더니 어머님이 닭 똥 같은 눈물을 뚝뚝 쏟으며, "그래, 서울 가자. 내가 고집 부리면 우리 손주들이 다 죽는다는 데 내가 고집을 부려서 되것나" 그러면서 작은 아들 두 손을 꼭 잡고 한참을 우셨다.
    그러고 나서 뒷날 오촌 당숙께 온 집안 어르신들은 물론 누이들까지 날 잡아 모두 집으로 오시라 했다. 바다 메기 국물과 안주 회까지 준비해 막걸리를 대접했다. 어느 정도 술을 드시고 모두 안방으로 모이라 했다. "어머님이 혼자 농사 지으며 살 수 없으니 서울로 모시기로 했다"는 폭탄 선언을 했다..=>
  • 작성자푸른 돌(靑石)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3.03.23 5.당장 난리가 났다. 누님들이 펄펄 뛰면서 울어 갑자기 초상집이 되었다. 미리 말씀드린 대로 어머님이 조용히, "혼자 농사짓기가 너무 힘들어 이제 서울 아들네 집으로 갈란다. 너희들이 철마다 날마다 와서 도와주지만 그래도 너무 힘들구나" 하시니 어른들은 조용해졌고 누님들은 울고불고 난리가 났다. 서울 아들이 가자고 해서 간다고 말씀하시면 안된다고 미리 신신 당부를 드렸다. 그러면 먼저 서울 형님이 좋은 소리 못 듣고 어머님도 억지로 서울 간다며 남들이 흉 보고 자식들은 불효 자식이 된다.
    그렇게 해서 동네에 집과 전답을 전부 내놓겠다고 선언을 했다. 집은 두 집에서 살려고 당장 흥정이 들어 왔다. 바로 옆집과 조금 떨어져 사는 육 촌 형님네가 사고자 했다. 형제 간의 우의나 정리를 봐서는 육 촌 형한테 팔아야 했으나 서울 형편을 봐서는 더 많이 주겠다는 집에 팔 수 밖에 없었다. 육 촌 형은 두고 두고 서운해 하며 아쉬워 했다. 그러더니 훌쩍 고향을 떠나 읍내로 이사를 가버렸다. 동네 이발소에서 여러 해 일을 했는데 동생네 처사가 못 내 서운했던지 읍내에 이발소를 내고 이사를 갔다. 지금 생각해도 그 때 그 상황이 너무 가슴 아픈 일이었다..^*^
  • 답댓글 작성자▒ 飛龍 ▒ | 작성시간 23.03.27 덕분에 좋은시간 고맙습니다
    행복한 밤 보내세요
  • 답댓글 작성자푸른 돌(靑石)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3.03.29 ▒ 飛龍 ▒ 
    봄이 달려오고 있네요
    늘 건강하시고 힘찬
    새봄이 되세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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