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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 온 제비

작성자푸른 돌(靑石)| 작성시간23.06.21| 조회수0| 댓글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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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푸른 돌(靑石)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23.06.21 1.도회지에서 보기 귀한 제비가 금년에도 돌아 왔다.
    해마다 오지 않고 몇 년 만에 왔다. 시골에는 어디나 흔히 보겠지만 대 도회지에선 보기 힘들다. 동네가 서울 변두리 남한산성 줄기 밑이라 우선 공기가 맑고 깨끗하다. 이전에 여기서 서울 도심지를 갔다 오면 공기가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공해에 전 국민이 합심하여 대비하고 힘을 모으니 자연이 많이 회복되고 있다. 이제 한강에 온갖 물고기와 철새가 돌아 왔다.
    누가 아침에 땅 바닥에 떨어져 우는 참새 새끼를 발견했는데 작은 박스 안에 넣어 뒀다. 어쩌면 좋겠냐고 아침에 옆 가게 미장원으로 가져 왔다. 미장원이 동네 사랑방과 만남의 방이다. 그 사이에 어떤 분이 구청에 연락하니 자연 보호 단체를 알려줬다. 거기다 전화를 했더니 얼른 담당자를 보냈다. 오토바이를 타고 달려온 분이 가냘프게 짹짹거리며 우는 참새 새끼를 데려갔다. 아마 이전 같으면 이런 단체도 별로 없었겠지만 설 혹 있다 하더라도 "그까짓 참새 새끼, 그냥 내버리세요" 했을 것이다. 그만큼 자연 보호에 대한 인식이 많이 달라졌다.
    세상을 날로 발전하고 변한다. 발전 하는 것이 꼭 좋은 방향으로 간다고 할 수는 없을지 모르겠다..=>
  • 작성자 푸른 돌(靑石)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23.06.21 2.이전에 남한산성을 매 주 토요일 새벽에 올랐다. 동네 동업자 친목회에서 남한산성 등산 팀을 모집했다. 이름을 삼무회(三無會)라 하여 회의 명칭도 없고 회칙도 없으며 회장도 없는 모임이라 했다. 첫 해에 30여 명이 모였다. 매주 토요일 새벽 6시에 남한산성 입구 느티나무 밑에서 만나 산을 올랐다. 음료와 먹을 것은 각자가 알아서 준비하고 모든 것은 자율에 맡겼다. 그래도 등산할 때 질서는 있어야 하니 산악 대장은 선출했다. 처음부터 모든 것을 준비하고 알뜰이 챙긴 부부가 있었는데 그 아우가 산악 대장을 맡았다.
    주말이면 전국서 몰려온 등산객으로 항상 문전성시를 이룬다. 아마 주로 서울 인근에 사는 분들이 많을 것이고 간혹 관광버스를 타고 멀리 서도 온다. 남한산성은 예전부터 명산으로 알려져 모르는 사람이 없다. 언젠가 일요일 아침 8시 경에 마천역 근처를 갔는데 전철을 타고 온 남녀노소 수많은 등산객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삼삼 오오 몰려 나와 힘차게 산을 오르는 모습이 과히 장관이었다. 운동 중에 등산보다 더 좋은 종합 비타민 같은 운동은 없을 것이다. 등산은 게으르거나 관심이 없으면 못 간다. 그러니 작심하고 열심히 다니지 않으면 안된다..=>
  • 작성자 푸른 돌(靑石)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23.06.21 3.우리 동네로 오기 전에는 등산을 전혀 몰랐다. 그리고 좋은 사람들을 만난 것도 큰 행운이었다. 지금은 전국으로 흩어져 한 번 만나기도 어렵다. 어느 부부는 7~8년 전에 농사를 짓겠다고 시골로 떠났다. 누님 댁이 준 논과 주택을 그대로 살면서 농사를 짓는다. 주로 고추 농사와 블루베리 농장을 하고 있다. 두 분이 원체 부지런하고 매사에 열심히 사니 그 동네에 간 지 얼마 안되어 이장을 하고 새마을 지도자도 했다. 그 전에는 두 부부가 신앙이 없었는데 지금은 천주교 신자가 되어 믿음과 성당 활동도 열심히 하고 있다. 구역 장과 회직자도 맡아 봉사도 하며 모든 일에 솔선 수범 하고 있다. 늦게 신앙 생활을 시작했지만 누구보다 열심히 신앙과 사회 생활을 조화롭게 잘 꾸리는 삶을 살고 있다.
    언젠가 친목회 멤버 몇 이서 3박4일 일정으로 거기를 갔다. 아우 차를 타고 갔는데 학창 시절에 수학여행을 떠나는 기분이었다. 모든 숙식은 현지에서 해결해 줄 테니 몸만 오라는 것이다. 누나네 집이 언덕 위의 별장처럼 아담하고 아름다웠다. 아마 그 동네에서 가장 멋진 집이 아닐까 싶다. 동네 근처 좋은 곳은 다 가보고 서해안으로 가서 회도 실컷 먹고 왔다..=>
  • 작성자 푸른 돌(靑石)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23.06.21 4.언젠가 추운 겨울에 함백산을 갔다. 힘들게 정상에 오르니 눈이 많이 쌓여 있었다. 준비가 덜 된 아마추어 등산객은 제대로 된 등산화도 신지 않고 겨울 산을 올랐다 남에게 힘들다는 말도 못하고 묵묵히 따라 갈려니 많이 힘들었지만 끝까지 따라 갔다. 지금도 그 시절을 생각하면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그렇게 해서 반 등산가가 되어 지리산 설악산도 다녔으니 그런 행운이 없었다. 다 한 동네 친목회 멤버들의 형제 같은 우정으로 가능한 일이었다.
    한 번은 지리산 '칠성 계곡'을 갔다. 이름만 들었지 모두 처음 가는 곳이었다. 차 기름 값과 고속도로 통행료로 1인 당 10만 원씩 거뒀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첫 날부터 오는 날까지 날씨도 그렇게 좋았다. '지리산 산장'을 미리 예약을 하고 거기서 하룻밤을 잤다. 높은 산 좁은 숙박 시설에서 하루 밤을 자는 것도 고생보다 기꺼이 즐거운 마음의 포근한 잠자리였다. 그렇게 자고 아침 일찍 준비한 간식으로 식사를 마치고 열을 지어 출발했다. 산악 대장이 맨 앞에서 이끌고 모두 뒤따라 갔다. 산등성을 넘으니 바로 급경사였다. 아마 경사 도가 5~60도는 되어 스틱을 쓰지 않고는 내려갈 수 없는 코스였다..=>
  • 작성자 푸른 돌(靑石)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23.06.21 5.급경사 코스를 지나니 조금 완만한 계곡이었다. 같이 내려 오던 다른 팀원 중 한 명이 바위에서 미끄러져 넘어지며 안경이 깨졌다. 눈에서 피가 나오는 중상이라 바로 되돌아 올라 갔다. 조금 있으니 헬기 소리가 나더니 그 다친 사람을 호송하는 것 같았다. 그 당시만 해도 안전에 대한 국가적 지원 정책이 제대로 작동되고 있음을 느꼈다.
    우리 일행은 무사히 칠성 계곡에 도착했다. 가는 곳마다 크고 작은 호소(湖沼)가 그렇게 많을 수 없다. 졸졸 흐르는 계곡이 되고 펑펑 쏟아지는 폭포가 되기도 했다. 모두 물 속에 들어가 물장구 치며 놀았다. 더운 여름인데도 물 속에 들어가면 금방 한기를 느껴 물 속에 오래 있을 수 없었다. 아이들처럼 웃고 떠들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았다. 그러다 준비해 간 점심을 먹는데 얼마나 맛있는 성찬(盛饌)인지, 그렇게 맛나는 점심을 먹어 본 적이 없다. 그래도 갈 길이 멀어 아쉬움을 달래며 하산할 수 밖에 없었다.
    그 다음 일정은 순천 국가 정원을 보러 가는 것이다. 아직 정부에서 제대로 관리하고 개발하기 전이었다. 지금처럼 화려한 풍경을 아니지만 청정 지역의 아름다움을 거의 자연 그대로의 모습으로 간직하고 있었다..^*^
  • 작성자 ▒ 飛龍 ▒ 작성시간23.06.21 덕분에 잘보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행복한 밤 보내세요
  • 답댓글 작성자 푸른 돌(靑石)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23.06.22 이제 하지도 지나고
    더운 여름은 점점 빨리
    달려올 것입니다..늘 건강
    하시고 희망 찬 날들이
    되세요..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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