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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하의 시

130. 거목이신 아버지

작성자박하|작성시간26.06.06|조회수0 목록 댓글 0

130. 거목이신 아버지

 

 

아버지는

어린 딸을 바라보실 때마다
눈가에 별꽃이 피었다

 

일학년 국어책을 펼쳐 들고

"바둑아 바둑아 이리 와
나하고 같이 놀자

 

또박또박 읽어 내려가면

 

"우리 발발이,
국어책을 우째 그리 잘 읽노
아부지 놀란다"

하시며 웃으셨고

나도 따라 웃었다

 

잠시도 가만있지 못한다고

내 이름 대신
강아지 이름 같은 '발발이'

정답게 불러주시던 아버지

 

아버지가 계시다는 것만으로도

밥 한 그릇 든든히 먹은 듯
세상은 든든했다

 

아버지는 거목이셨다

칠남매 자식들은

그 넓은 그늘 아래서
비바람도 모르고 자랐다

언니들과 나는

한마음으로
아버지를 우러러보았다

 

늦가을이면

과수원에서 딴 국광사과가
산더미처럼 쌓였고

아버지는 마당 깊은 땅속 창고에
겨울을 저장해 두셨다

 

긴 겨울밤

큰언니의 옛날이야기에
배고픔이 슬며시 찾아오면

 

지하 창고에서 꺼낸
흠집 난 국광 한 소쿠리

정지칼로 사각사각 깎아 먹던

그 달콤한 맛

 

그 맛 속에는

아버지의 사랑이 있었고
자매들의 웃음이 있었다

 

이제는

그 국광의 향기 따라

거목 아래 모여 앉던
그 시절로

한 번만 더
돌아가고 싶다

 

*작품평

 

이 시 **〈거목이신 아버지〉**는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존경, 그리고 유년 시절의 따뜻한 가족애를 담담하면서도 정감 있게 그려낸 작품입니다.

작품 감상 및 평

이 시에서 아버지는 단순한 부모가 아니라 가족을 지탱해 주는 **'거목'**으로 형상화됩니다. "아버지는 거목이셨다"라는 중심 이미지는 시 전체를 관통하며, 칠남매가 "그 넓은 그늘 아래서 비바람도 모르고 자랐다"는 표현을 통해 아버지의 보호와 헌신을 상징적으로 보여 줍니다.

특히 어린 시절 국어책을 읽던 장면은 매우 인상적입니다. 아버지가 딸을 "발발이"라고 정겹게 부르며 칭찬해 주는 모습은 시골 가정의 소박한 정서와 부녀 간의 애틋한 사랑을 생생하게 전달합니다. "눈가에 별꽃이 피었다"는 표현은 딸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기쁨과 자랑스러움을 아름답게 형상화한 시적 표현으로 돋보입니다.

또한 후반부에 등장하는 국광사과의 추억은 단순한 음식에 대한 기억이 아니라 가족 공동체의 행복한 시간을 상징합니다. 겨울밤 흠집 난 사과를 깎아 먹던 장면은 가난하거나 풍족함의 문제가 아니라, 가족이 함께 나누던 사랑과 웃음의 기억을 불러일으킵니다. 사과의 달콤한 맛 속에 "아버지의 사랑"과 "자매들의 웃음"이 담겨 있었다는 표현은 추억이 지닌 정서적 깊이를 잘 보여 줍니다.

마지막 연에서 화자는 국광의 향기를 따라 거목 아래 모여 앉던 시절로 "한 번만 더 돌아가고 싶다"고 말합니다. 이는 단순한 과거 회상이 아니라, 이제는 곁에 없거나 예전 같지 않은 아버지와 가족에 대한 깊은 그리움을 담고 있어 독자의 마음에 잔잔한 울림을 남깁니다.

종합 평가

이 작품은 화려한 수사보다 진솔한 체험과 구체적인 추억을 통해 감동을 이끌어 냅니다. 아버지라는 존재의 든든함, 가족의 따뜻한 정, 그리고 돌아갈 수 없는 유년의 시간을 향한 그리움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있습니다. 특히 '거목'과 '국광사과'라는 상징적 소재를 통해 가족애를 효과적으로 표현한 점이 돋보이며, 읽는 이로 하여금 자신의 아버지와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공감력 높은 작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한줄 평:
"국광사과의 달콤한 향기 속에 아버지의 사랑과 가족의 웃음을 담아낸, 따뜻하고도 먹먹한 회상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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