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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하의 시

시 여러편

작성자박하|작성시간26.06.10|조회수1 목록 댓글 0

 

**** 유월 장마철

 

 

장마철이라 후덥지근하다

하늘은 회색으로 무겁게 내려앉아

소나기가 쏟아질 것 같다

아니나 다를까

소나기가 양동이로 퍼붓는다

과수원과 논이 물바다가 된다

 

잠시 후 소나기가 뚝 그치고

서쪽 하늘에 무지개가 뜬다

아낙의 환호성에 놀라랐는지

금세 사라져버린다

해가 반짝 얼굴을 내민다

집 앞 개울물은 콸콸콸 소리 내며

흘러간다

 

미루나무 사이로

지나가는 시원한 바람 소리

소나기 그친

청량한 여름 저녁이다.

이런 날은

애호박 잘게 썰어 넣고

칼국수를 해 먹어야겠다

 

 

 

 

 

 

155. 하늘과 땅 입 다물다

 

 

하늘과 땅 입 다물다

 

 

올가미에 걸린 박쥐와 뱀

신음하며 유언하길

 

사람아너희 몸에 좋다는 것

함부로 먹으면 죽는다!“

 

지금

온 세계가

불안과 공포의 전쟁으로

숨죽이며 떨고 있다

 

코로나여

지구에서 사라져주기를!

 

 

156. 자유당 그 시절


아버지가 

나라 걱정하시며

한숨을 쉬셨

1959
  '유정천리' 가요를 개사한 걸

 언니들이 노래불렀다

[가련다 따나련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길
자유당에는 꽃이 피고
민주당에는 비가 오네]

초등학교 6학년인

나도

복도에서도 운동장에서도
그 노래가 좋아서 불렀다

교무실에 불려가
정치는 금지되고
노래도 금지되었다

그날 왜 꾸지람 듣는지
이유를  모른 채 

고개 숙였다

 

지금은 안다

그 시절에도
민주주의가 살아있었음을!

 

157.검은 그림자

 

 

 

가짜가 넘쳐나는 세상,
무감각이 일상이 된 요즘

문득,
장구장댁 아지매의 낮은 목소리
먼지 쌓인 시간 속에서
되살아난다.

1957326,
이승만
여든둘의 생일날,

이기붕의 아들
이강석이
대통령의 양자가 되었다.

이름 하나가
권력의 문을 열던 시절.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이름을 훔친 또 하나의 얼굴,

가짜 이강석.

그는 세상을 제 것인 양 걸었고
젊은 날의 빛을 속여
눈물로 얼룩진 밤들을 남겼다.

신문은 검은 잉크로
그 그림자를 찍어냈고,
결국
가짜는 붙잡혔다.

한국판
가짜 드미트리,

이름만 남은 진실 위에
길게 드리운
검은 그림자.

그리고 이듬해,

아무것도 모른 채
아이들은 노래했다.

여든셋
우리 대통령의 생일을

밝은 목소리로,
너무도 맑게.

그 맑음이
더 깊은 어둠을
비추고 있었다.

 

158. 할아버지의 불호령

 

 

 

남아를 귀히 여기던 시절
딸 셋을 낳자마자

19475월 초이틀
쫓겨날 처지에 처한 엄마

남아사상이 강한 할아버지는

반남박씨 집안에서
씨를 끊는 며느리는
이 집에 설 곳 없다며

호랑이 할아버지의
추상(秋霜) 같은 불호령에

 

죄인처럼 아버지와 엄마
마당에 꿇어 엎드려

다음엔 꼭 손자를 안겨드리겠습니다
손이 발이 되도록
빌고 또 빌어

겨우 쫓겨남을 면했다

 

하늘이 들었는지

그 이듬해
동짓날 엄동설한에
엄마는
끝내 첫아들을 낳고

 

할아버지는
소원 이루었다며

얼굴 가득
웃음꽃을 피웠다

그 웃음이 얼마나 환했던지
처마 끝 참새들까지 

기뻐하며
짹짹짹 축하했다

 

 

 

159.피난 열차 안에서

 

 

6·25 동란이 터지던 날
소방서 나팔꽃처럼 퍼지는 경보 사이로
확대경처럼 커진 목소리가
피난하라 재촉하고 있었다

 

우리 식구들은
부랴부랴 보퉁이를 꾸렸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집을 지키겠다며 끝내 버티셨고
삼촌과 숙모가
여기 남으면 포탄에 맞아 죽는다며
겨우 설득해 모시고 나섰다

 

머리에 이고, 양손에 들고
어머니는 갓난아이를 등에 업은 채
네 살 딸아이 손을 잡고
조금 큰 딸 둘까지 이끌며
우리는 집을 떠났다

 

그 무렵 아버지는
후생원 아이들 피난을 돕는다며
먼저 자리를 비운 뒤였다

 

겨우 비집고 오른 기차 안은
사람과 짐 보퉁이로 가득 차
숨 쉴 틈조차 없었다

 

다행히 한쪽 구석에 자리 하나 얻었지만

사람들 틈에 눌린 아이들은
숨마저 가늘어졌다

 

잠시 뒤
어머니가 아이들에게 나눠 준
아버지 주먹만 한 주먹밥과 대구포를
조심스레 베어 물었다

 

짭짤한 생선 맛과
조금 단 밥알이

세상에서 그 무엇보다 맛있었다

 

전쟁은
아이들에게는 아직
무슨 일인지조차 알 수 없는
먼 소문 같은 것이었다

 

 

160.월래 바닷가의 기억

 

 

 

월래에서 살았다는 한 여인을
문화센터 강의실에서 마주했다

 

나 또한
육이오 전쟁의 피난지였던
월래를 말하자

우리는 마치
전선에서 다시 만난 동지처럼
서로의 손을 반갑게 붙잡았다

 

나는 천천히
기억 속으로 걸어 들어가 본다

 

네 살 무렵의 아이가
조용히 걸어 나온다

 

폭격에 지붕이 날아가
바람이 먼저 드나들던 그 초가집

언니들은 천막학교로 떠나고
홀로 남겨진 아이의 손에는
조개껍질 하나 밥그릇 삼아
모래밭에 소꿉을 차리던
작고 여린 손

 

해가 기울 무렵
아기 갈매기 한 마리
제 어미를 찾아
허공을 울며 날아오르고

 

그 울음결 속에
아이의 가슴에도
엄마가 떠오른다

엄마, 엄마

작은 발자국 소리에
엄마가 달려와

환한 얼굴로
어린 딸을 품에 안는다

그때 엄마는
세상 전부였다

 

 

161.요술쟁이 카메라

 

1950년대 초
나는 여섯 살
대들보 같은 남동생 창우는 세 살

과수원 풀밭에
막내이모의 손에 이끌려
나란히 앉아

새신랑이 된 막내이모부가
어깨에 메고 온
요술쟁이 카메라를
눈을 반짝이며 바라보던 그 순간

찰칵,
시간이 멈춘다
흑백의 빛 속에

우리의 하루가
햇살처럼 번져가던 날

반세기를 훌쩍 넘긴 지금도
그날의 햇빛은 사라지지 않는다
어린 남매의 숨결이


그 빛 속에서 다시 숨을 쉰다

 

162.봄날의 학예회

 

1955, 진달래가 핀 학예회 날
도리납작한 얼굴의 아이 하나
목소리 크고 맑다는 이유로
진달래꽃 독창을 맡았다

눈 녹은 산마루에
분홍빛 소식이 번질 무렵

 

진달래 피었구나

그 한 소절이
아이의 가슴에서 먼저 꽃으로 피었다

겨우내 웅크려 있던 시간들
작은 몸 안에 켜켜이 쌓였다가
노래가 시작되자
강당 가득 흘러나왔다

우레와 같은 박수

 

그 순간
아이의 마음은
꽃잎처럼 가벼워져
하늘 위로
한 송이 봄꽃으로 날아올랐다

 

 

165. 순사놀이 노래

 

 

학교 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
동무들과 신작로를 걸으며
놀이처럼 흥얼거리던 노래

 

앞에 가면 도둑놈
뒤에 가면 순사

우리 3학년 아이들은


누가 도둑이 될까 두려워
한 발씩 슬그머니 뒤로 물러서며
서로의 그림자를 따라 걸었다

 

순사는 무섭다 하면서도
세상에서 가장 높은 사람이라 믿던
순수한 그 시절

 

웃음 섞인 노랫소리는
동심의 들판을 뛰놀다
해 질 녘 골목 어귀에 이르면
꽃처럼 번져 하루를 물들였다

 

세월이 흘러
노을 가까운 여인이 된 지금
그날의 ‘순사’ 노래를 떠올리면
아홉 살의 내가
조용히 햇살 속으로 걸어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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