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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하의 시

164.백합꽃 언니 43번에 저장되어 있음. 그 외 시 몇 편

작성자박하|작성시간26.06.10|조회수1 목록 댓글 0

 

164.백합꽃 언니 43번에 저장되어 있음.

 

반세기, 그보다 훨씬 전
우리 세 자매 어린 시절
어머니는 틈틈이
코딜리어 이야기를 들려주셨지

 

일본에서 신교육을 받으신 어머니는
셰익스피어의 비극을
별빛처럼 아름답고도 슬픈 이야기로
우리에게 선물처럼 건네주셨다

 

그중에서도 리어왕의 이야기
아직도 마음 깊이 남아 있다

셋째 딸 코딜리어의
변함없는 효심을 그대로 닮은
우리 집안의 보배
부모님의 둘째 딸이며
나의 작은 언니

 

아버지의 운수사업이 무너져
가세가 기울던 그때

스물셋, 꽃 같은 나이에
언니는 청춘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오직 하나
가문을 다시 일으키는 길을 택했다

 

언니의 힘이 보태어져
아버지는 옛 부귀의 그림자를
다시 일으켜 세웠다

 

언니는 한평생
집안이 다시 일어서도록
묵묵히 자신의 삶을 바쳤고
아버지의 자랑이자
우리 모두의 기쁨이었다

 

세월은 나이테처럼 겹겹이 쌓여
어느새 여든을 맞이한 언니

그 거룩한 희생의 자리 위로
이제는
은은한 평안이 조용히 내려앉는다

 

언니의 삶은
한 송이 백합처럼
조용히 향기를 남긴다

 

 

165. 감사로 물주기

 

사람의 몸은
75%가 물로 이루어져 있다는 선생님의 말에
아홉 살 여자아이는
눈을 동그랗게 동그랗게 뜨고
세상이 조금 투명해지는 소리를 듣는다

 

몸이 살아 움직이려면
매일 물 2리터를 건네야 한다는
그 단순한 진리를
찬 물 한 모금 삼키며
목 깊숙이 새겨 넣는다

 

희망은
어디선가 파릇하게 돋아나는 이슬 머금은 야생화처럼
조용히 새벽을 적신다

 

하루하루
감사라는 물을 길어 올리면
마음의 우물에서도
맑은 소리가 난다

 

집 안의 작은 화초를 바라본다
햇살이 가느다란 손끝처럼
푸른 잎사귀를 쓰다듬는 오후

작은 실내 화분에
물을 천천히 부으며

고마워
건강하게 자라렴

그 한마디가 물방울이 되어
흙 속으로 스며들 때마다


보이지 않는 뿌리들이
조용히 숨을 고른다

 

꽃들은
말 대신 향기로 대답한다
연한 숨결처럼 번지는 초록의 냄새

, ,
보이지 않는 꽃잎이
피어나는 소리

 

베란다 꽃밭은  어느새
물기 어린 감사로 가득 차
조용히 빛나기 시작한다

 

 

167.깜박 잊어묵다니

 

 

 

친구 집에 초대받은 날
우리 셋은 교자상 앞에 둘러앉았다

소고기국, 잡채, 오색나물,
전이 줄을 서고
백김치와 포기김치가 나란히 앉고
해파리냉채, 닭찜, 애호박전까지
진수성찬이 따로 없다

 

친구는
밥만 퍼내면 된다
압력밥솥 뚜껑을 열다 말고

순간, 얼굴빛이 사색이 된다

아이고 우짜노내 정신 좀 보래이
밥솥 스위치를 안 눌렀네

허둥지둥 취사 버튼을 누른다

 

그때, 친구의 부군이
서류를 깜박 놓고 갔다며
머리를 긁적이며 들어선다

아내의 실토를 듣고는
말없이 웃더니

좀 기다리다 배고플 때 묵으면
밥이 더 꿀맛일 겁니더

허허 웃고는 바람처럼 사라진다

 

그 아내에 그 남편
천생연분이다

 

초대받은 우리 셋은
뱃가죽을 움켜쥐고 웃음보가 터지고

앞베란다 화분들까지
허리를 젖히며 까르르 따라 웃는다

맛있게 드세요라는 말이 떨어지자
벽시계가 미안한 듯 오후 두 시를 가리킨다

숟가락은 어느새
빠른 장단으로 춤을 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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