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1. 육이오의 기억 /기억의 편린(육이오 동란의 기억)
세상 밖으로 밀려나던 날
여자아기는 힘겹게 울음을 삼키고
작은 기척에도 놀라
막 부화한 병아리처럼
세상의 가장자리에 발을 얹었다
네 살,
하늘이 갑자기 금이 가고
총성이 계절처럼 쏟아지던 유월
조부모와 부모,
이름 모를 두려움까지 등에 지고
삐걱대는 수레 위에 실려
동촌역으로 흘러갔다
콩나물시루 같은 완행열차 안
사람과 짐이 서로의 숨을 밀어내던 자리에서
가늘게 이어 붙인 숨 끝에
아이는 스르르 잠이 들었고
눈을 뜨자
머리 위로 하늘이 펼쳐져 있었다
일곱 살, 열 살 언니들은
아무 일 아닌 듯 웃으며 노래했다
이 집이 포탄을 맞아
초가지붕이 날아갔다고
무더운 여름,
지붕을 잃은 방은
운동장처럼 환히 열려 있었고
바람은 주인인 듯 드나들며
남겨진 숨들을 어루만졌다
숨 쉬는 일이
조금 더 수월하고 가벼워졌다
다음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