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밭 / 박하
보리밭을 잊을 수 없다.
어린 시절, 보리밭둑에서 봄 향기 맡으며 또래동무들과 쑥을 캐오면 엄마는 쑥 버무리를 만들어주었다.
우리 칠남매는 쑥덕새처럼 쑥덕쑥덕거리며 잘도 먹었다.
보리타작하던 날, 날씨는 찐득하고 가만히 있어도 끈적거렸다.
엄마는 밭에서 땀 흘리며 열심히 일하는데, 나는 밭두렁에 앉아서 저만치 신작로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마침 군용트럭이 지나갔다.
뿌연 먼지바람이 구름떼처럼 보리밭쪽으로 몰려왔다.
나는 이맛살을 찌푸리며 먼지를 피하려고 얼른 보릿단 사이로 얼굴을 숨겼다.
트럭이 지나간 뒤에 보니 온 몸에 보리 까끄라기가 달라붙어 잇었다.
얼마나 껄끄럽고 간지러웠는지 손톱으로 박박 긁으니 핏자국이 생겼다.
집으로 뛰어가 씻었지만 온 몸에 두드러기가 돋아나 쓰디쓴 탱자 달인 물을 마셔야 했다.
여름철, 나른하고 입맛이 없을 때,
찬물에 보리밥을 말아서 풋고추를 쌈장에 콕콕 찍어 먹으면 밥맛이 되살아나고 개운했다.
지난날, 보릿고개시절, 사람들은 보리갱죽을 끓여서 끼니를 연명했다.
그 시절에 다행히 우리 집은 좀 넉넉하여 엄마는 자주 간식을 만들어주셨다.
사카린을 넣고 반죽하여 찐 달짝지근한 보리떡이 생각난다. 보리떡은 구수했다.
6학년 때, 학교에 급식소가 처음으로 생겼다.
도시락 사오지 않은 아이에게 점심시간에 가끔 보리죽을 주었다.
바가지만큼 큰 국자로 보리죽을 도시락에 퍼 주었는데,
죽이 먹고 싶어 친구에게 애걸복걸하며 밥하고 바꾸어먹었다.
목구멍으로 죽이 넘어갈 적에 매끄러운 감촉이 기분 좋았다.
내 친구 명희 집도 저녁에는 보리갱죽을 끓였다.
그 갱죽이 먹고 싶어 그 집 식구가 저녁 먹을 때까지 기다렸다.
명희 오빠 승하가 못마땅한 표정으로 눈총을 주어도 눈치 없이
죽을 한 그릇 얻어먹고서야 집에 갔다.
몹시 얄미웠을 것이다.
보리밭은 밟아줄수록 뿌리를 튼튼히 내리며 잘 자란다.
고진감래(苦盡甘來)라고 할까.
사람도 고난과 역경을 이겨낸 자의 삶이 빛난다.
겨우내 추위를 잘 견디어 낸 보리는 언 땅을 비집고 이른 봄에 연초록 새순을 내민다.
봄빛이 무르익으면 보리밭은 초록세상으로 변한다.
이따금 호수에 파문이 일 듯 초록빛 바다가 춤을 추면 어린 가슴도 기쁨으로 출렁거렸다.
1950년도 그 시절은 놀이문화의 마땅한 장소가 흔치 않아 우리들은 보리밭에서 숨바꼭질하며 놀았다.
종달새 하늘 높이 지저귀고 보리밭 한가운데는 아이들의 장난으로 폭탄 맞은 양 움푹 꺼져있었다.
보리밭에서 동무들과 보리깜부기 따먹다 보면
입 주위가 새까맣게 변하여 서로들 우습다고 배를 움켜잡고 웃던 일이며
삐삐를 뽑아 먹던 지난날이 눈물겹도록 그리워짐은 세월이 흐른 탓일까.
워드 치는 책상 옆에 보리건빵을 두고서 보리차와 먹으면 배가 든든하다.
건강웰빙음식 중에 하나인 보리밥은 섬유질이 많아 소화가 잘된다.
가끔 보리밥집에서 친구들과 식탁을 마주하면 초록물결 넘실대던 보리밭이 떠오른다.
유년시절, 보리밭에서 밀짚모자 주워서 좋아함도 잠시,
볼일 보던 할아버지가 모자 달라고 호통을 쳐서
깜짝 놀라, 모자를 그 자리에 내동댕이 치고
친구하고 나는 동생 한 명씩 업고 “걸음아 날 살려달라”며 달아나던 일….
보리타작 할 시기에는 장마철이라 비가 자주 왔다.
비 오는 날 아침이면, 보리이삭의 수염에 빗방울이 진주처럼 영롱하게 맺혀있었다.
어느 해, 장마철이었다.
보리를 베어둔 보리알갱이에서 싹이 나고 썩기도 하여 엄마의 애간장을 태웠다.
해질녘에 또래동무들과 보리밭을 지날 때면 섬뜩했다.
“보리밭에 문둥아 해 빠졌다 나오너라.” 노래를 부르며 기겁하며 달아났다.
혹시라도 문둥이가 보리밭에서 나와서 아이를 잡아 마구 간지럼 태워서 간을 빼먹는다고 해서이다.
경상도 사람들은 반가운 이를 만나면 “야! 이 경상도 보리 문둥아, 문디 가시나야.”하며 정답게 말한다.
보리는 우리 생활과 친숙하다.
여중학생 때, 언니 책꽂이에 꽂혀있는 한하운의 시 ‘보리피리’ 를 낭송하며 그 시인을 좋아했다.
7년 전, 안동 일직에 사시던 권정생 동화 작가님의 집을 친구 젬마와 같이 다녀오면서 보리밭을 지나게 되었다.
우리는 보리밭풍경을 카메라에 담으며 노래를 불렀다.
[ 먼 산에 진달래 울긋불긋 피었고/ 보리밭 종달새 우지우지 노래 할 때 /
아득한 저 산 너머 고향집 그리워라 /버들피리 꺾어 불던 고향집 그리워라 …]
그날따라 종달새는 보리밭이 좋은지 보리밭 주위를 즐거이 맴돌았다
유년시절, 보리밭에서 동화의 나라를 꿈꾸며 지낼 동안,
어머니는 집안일과 농사일이 고단해서 보리깜부기처럼 얼굴에 기미가 새까맣게 끼었었다.
어머니의 그 희생이 있었기에 지금 우리 형제들이 건강하게 잘 살 수 있음에 감사한다.
아득한 그리움이 밀물처럼 밀려오는 보리밭의 추억들.
오늘도 초록보리밭은 희망으로 출렁이며 나를 부른다
보리밭 /윤용하 곡/ 박화목 시 / 조영남
어려운 시기, 옛날 울 어릴 적 살았던 일을 생각하며
그때도 다 이기고 살았는데,지금은 그에 비하면 잘 살지요.
너무 가슴에 와 닿는 글이라 올렸습니다.-위의 보리밭 글은
저 박하 ' 보리밭' 글을 읽고 61년생(소,50세)모임방 카페지기가 올려주신 글을 옮김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