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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하수필방

보리밭 2

작성자박하|작성시간26.06.11|조회수1 목록 댓글 0

보리밭 2

 

어머니의 손맛이 그리워질 때면 나는 옛날보리밥집을 찾는다.
보리밥에 나물을 얹고 고추장을 한 술 넣어 비비다 보면, 어느새 오래된 풍경이 밥그릇 위로 피어오른다. 그 속에는 늘 보리밭이 있다.

어린 시절, 보리타작하던 날의 마당은 뜨거운 숨으로 가득했다.
도리깨질 소리는 장단처럼 울렸고, 일꾼들의 얼굴은 햇볕을 머금은 보리알처럼 붉게 익어 있었다. 땀에 젖은 삼베옷 사이로 바람이 스쳐도 더위는 물러가지 않았다. 그 틈에 끼어 먹던 삶은 감자는, 지금 생각해도 세상에서 가장 하얀 맛이었다.

보리밭은 놀이터이기도 했다.
밭두렁에 앉아 풀꽃과 놀다가, 군용트럭이 지나가며 먼지를 일으키면 나는 보릿단 사이로 얼굴을 숨겼다. 까끄라기가 온몸에 달라붙어 가려움이 번지던 날, 집으로 달려가 물로 씻고도 남은 두드러기를 긁던 기억. 그날 밤 어머니가 달여준 쓰디쓴 탱자 물은 신기하게도 몸을 잠재웠다. 어머니의 손길은 언제나 그렇게 조용히 아픔을 가라앉혔다.

나른한 봄날이면 찬물에 보리밥을 말아 먹었다.
풋고추를 쌈장에 찍어 한 입 베어 물면, 입안에 퍼지는 쌉싸래함이 봄의 맛 같았다. 친구 집에서 얻어먹던 멀건 갱죽 한 그릇에도 세상 모든 배부름이 담겨 있었다. 배 속에서 도랑물 흐르듯 소리가 나던 그 시절, 우리는 가난 속에서도 이상하게 잘 웃었다.

보리밭은 웃음과 두려움이 함께 자라던 곳이었다.
해질녘, 아이들과 보리밭을 지나며 부르던 노래 끝에는 늘 알 수 없는 공포가 따라왔다. “보리빝[ 문둥이 해 빠졌다 나오너라그러다도 금세 서로를 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어린 날의 डर과 웃음은 늘 한 몸이었다.

어느 봄날, 밭두렁에 떨어진 밀짚모자를 주우려 뛰어가던 순간이 있다.
손에 쥔 작은 승리감은, 밭 속에서 불쑥 나타난 노인의 호통 한 마디에 산산이 흩어졌다. 우리는 동생을 업은 채 정신없이 달아났다. 숨이 턱에 차오르고 나서야 멈춘 자리, 그곳에서 펼친 도시락의 보리밥은 이상하리만큼 달았다. 하늘은 높고 종달새는 울고 있었고, 우리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밥을 먹었다.

시간이 흐르고, 학교에는 급식소가 생겼다.
보릿고개 끝자락에서 얻어먹던 옥수수죽 한 그릇은 목을 타고 내려가며 이상하게 마음까지 부드럽게 만들었다. 그때 나는 알지 못했다. 그것이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견디는 시간의 맛이었다는 것을.

어른이 된 뒤에도 나는 보리밭을 지나왔다.
비에 젖은 보리수염이 진주처럼 빛나던 아침, 장마 속에서 보릿단을 옮기며 마음 졸이던 날들. 보리는 쉽게 쓰러지지 않았고, 밟힐수록 더 단단해졌다. 그 모습은 오래도록 내 안에 남았다.

이제 보리밥은 건강식이라 불린다.
하지만 내게 보리밥은 여전히 어머니의 시간이다. 일에 지쳐 얼굴에 기미가 내려앉던 그 얼굴, 아무 말 없이 가족의 삶을 떠받치던 손. 그 모든 것이 보리밭처럼 내 기억 속에서 출렁인다.

보리는 겨울을 견디고 봄을 밀어 올린다.
그리고 여름, 황금빛으로 익어 고개를 숙인다.

사람의 삶도 그와 다르지 않다.
견디는 시간 끝에 비로소 빛이 들고,
고개를 낮출 줄 알 때 삶은 더 깊어진다.

보리밭을 떠올리면, 나는 아직도 따뜻해진다.
그곳에는 언제나 어머니가 서 있기 때문이다.

 

 

어느 봄날, 밭두렁에 떨어진 밀짚모자를 주우려 뛰어가던 순간이 있다.
손에 쥔 작은 승리감은, 밭 속에서 불쑥 나타난 노인의 호통 한 마디에 산산이 흩어졌다. 우리는 동생을 업은 채 정신없이 달아났다. 숨이 턱에 차오르고 나서야 멈춘 자리, 그곳에서 펼친 도시락의 보리밥은 이상하리만큼 달았다. 하늘은 높고 종달새는 울고 있었고, 우리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밥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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