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시꽃에 관한 시모음 8)
접시꽃 날개 /박우복
얼마나 날고 싶었을까
고독을 짊어지고
빨간 날개 펄럭이며
그대에게 가는 길을
얼마나 찾고 싶었을까
하얀 날개 펄럭이며
그대에게 가는 길을
아직은 날 수 없지만
빨간 마음 하얀 마음
그대 곁에 내려 놓고
유월의 햇살을 흔드렵니다.
접시꽃 앞에서 /박의용
크고
곱구나
무궁화를 닮았네
접시꽃
푸근하고
여유롭게
나를 향해 웃는다
접시꽃
나도 따라
웃는다
마음이 푸근해 지고
여유로워 지네
어느새
나도 접시꽃이 된다
주위엔 온통 접시꽃이네
접시꽃 당신 /안귀숙
얼마나 긴 세월 동안 다듬어야
저렇게 고운 색을 자아낼 수 있을까?
이리 둘러보아도
눈물 자욱 하나 없고
저리 돌아보아도
아픈 흔적 하나 보이지 않은 걸 보니
아마도 그대
속으로 애태우고 가슴앓이 하면서
아름다움을 토해내는 연습을 했나 보다
그저 피는 꽃이 어디 있으며
그저 아름다운 것이 또한 어디 있으랴
아픔과 설움 눈물까지도
모든 것 다 숨기고 감춘 채
아름다운 건
지는 때가 있고
다시 피기 위해지고
삶이 아름다운 건
핀 꽃들을 다시 보기 위해 살고...
이렇게
피고 진들 누가 말하랴
오직 아름다움을 보여주기 위해
그저 한 잎 한 잎
아름답게 머물다 가는 것을 ...
접시꽃 당신 /이명주
고향집 담장 밑에
화사한 아름다움
반갑게 인사하던
키다리 아가씨 꽃
어릴 적
대문 앞에서
맞이하던 접시꽃
마디마디 꽃귀 열고
꽃마음 곱게 피듯
큰 언니 닮은 모습
단아한 기품일세
참 고운
그대 창가에
햇살 가득 비추네
접시꽃 그리움 /박희홍
초여름날 대문 앞에 서면
달처럼 함빡 웃는 멋을 아는
멋쟁이 여인의 부드러운 음성
빨강 분홍 하얀
삼색 접시 속에서
빙그레 웃으며
잘 지내느냐 묻는 어머니다
어떤 일을 하든 달과 별이 되어
어둠을 물리쳐 줄 것이니
‘밤의 꾀꼬리’처럼 인내하며
열정을 다하라는 어머니
더 할 말이 남아 있는 듯
우물에 비친 손짓하는 모습
두레박질에 잔잔하게
흔들리듯 아슴아슴한 얼굴
* 밤의 꾀꼬리 : 나이팅게일이란 새로
밤에 노래하는 모습 때문에 ‘밤의 꾀꼬리’라는 별명이 붙음.
접시꽃 당신 /백승운
탑이 쌓이고 쌓여
높이가 높아지고
한 방울의 물이 모여
옹달샘이 되고
바다가 되듯
하나에 하나가
모이고 더해진 정열
안으로 담고 담아
주체할 수 없는
열정에 떠져 나오는
뻥튀기처럼
향기를 듬뿍 머금고
갈라져 꽃잎 열고
세상에 우뚝서니
짜릿한 황홀함에 빠져
보내는 찬사
그대인가 합니다.
흰 접시꽃 /박의용
염천(炎天) 더위에
하얀 모시옷 입고 있는 그대
바라만 보아도
시원하네
더위를 이기는 법
시원함을 찾는 것
자신을 시원하게 하거나
시원한 것을 보거나
흰 접시꽃을 보며
염천(炎天) 더위를
잠시 잊고
그 순백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네
가슴의 불이든
태양의 불이든
온도를 낮추는 것은
차분함이라
너를 보면 절로절로
편안한 차분함이 찾아오네
염천(炎天) 더위에도
시원하네
접시꽃 /한송자
그분께는 무례하게 대하는 사람 없었을까
혈압이 발갛게 오르셨을 때, 한 눈 지그시 감으셨고
늘 뜻대로 되지 않는 세상이라며
미련 따위는 구정물 버리듯이 엎으셨지요
미워하는 맘 가진 사람이 곪아 터진데이 하셨으니
님이라 험한 말 들은 적 없었을까
어찌 믿었던 분에게 배신당하지 않았을까
아꼈던 사람에게 버림받은 적 없었을까만
기쁘다고 날뛸 것 없고 기쁨 뒤에도 슬픔이 온다며
상처받을 일 없다는 듯 슬프다고 통곡하지 않으셨고
지나가는 감정에 잡아 먹히지 않으셨지요
혼자 괴로워하시다 섭섭한 공황 상태 맞닥뜨려
머리가 쪼개지듯 아프다 하셨으니
그 설움 가슴에 담고 엉클어 진 우울 보따리 건강하게 푸시려
철야기도로 울고 불면서 그 기분 달래셨지요
스타카토 없는 듬직한 음으로 누구에게나 편한 맛 내시면서
좋은 게 좋다며 말거리 많은 주위를 껌벅거리게 하셨기에
어머님 닮지 못한 저는 오늘도 스치다가 한 번 더 뒤돌아보며
마냥 여상하시던 어머님의 하얀 웃음을 흠모합니다
노랑 접시꽃이 피었네 /박의용
저마다 소중한 꿈을 품고 살아가지만
그 소중한 꿈이 안에서만 머물러 있으면
어찌 이루어질까요
꿈은 꾸는 게 다가 아니라
이루기 위한 노력이 더 중요하지요
누구나 꿈은 꿀 수 있지만
모두의 꿈이 다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니까요
안으로만 품은 꿈은
화롯불 같아서
자신만 데울 수 있지만
밖으로 펼쳐진 꿈은
모두의 바라는 바를 이루게 할 수 있으니
표출(表出) 할 줄 아는 꿈
그 위대함이여
나의 꿈은 이런 것이오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살아가고 있소
그 당당함과 당돌함
노랑 접시꽃이 피었네
꿈은 꾸는 자체가 의미가 있는 게 아니라
이루어져야 그 의미를 달성하는 것이니
꿈을 매달아 노랑 깃발을 올리자
그리고 그 깃발을 들고 나아가자
접시꽃 아내 /박인걸
내 마음 정원에 핀 접시꽃 잎에
아내의 미소가 빛나고
작은 바람결에 꽃 잎 살랑대며
은은히 웃음지어 보일 때
붉은 꽃잎에 박힌 이름
꽃송이의 속삭임은 따뜻하여
그리움의 향기가 내 마음을 감싸네.
한여름 폭염(暴炎)에 아래
지친 꽃잎 축 늘어졌어도
그 붉고 흰 빛깔 속에서
아내의 의지는 지치지 않네.
수채화보다 더 아름답게 그려진
당신과 나의 지난날 이야기들
꽃송이에 스며든 당신의 손길이
꽃향기와 함께 내 가슴에 남아있네.
나뭇잎 하나둘 떨어지고
매미 울음도 서서지 잦아드는 계절
울타리 아래 그 빛 잃지 않는 접시꽃처럼
우리의 사랑은 여전하다네.
바람에 흔들리는 꽃줄기처럼
때론 아픔을 토할 때가 있지만
아내가 내 곁에 있기만 하면
모든 괴롬이 구름처럼 사라지네.
늦여름 길목에 서서
촘촘이 피어난 접시꽃 바라보며
다시 한 번 내 아내의 이름을 부르네.
그대는 내 영혼의 태양
언제나 곁에 머물러주는 접시꽃
당신이 나와 함께라면
이 세상 모든 아름다움을
모두 가질 수 있다네.
접시꽃 그대 /화은 배애희
담장 밖
접시꽃이
어느새 훌쩍 자라
앞 마당
넘나들며
두 볼엔 홍조 가득
내 임은
어디 갔을까
기웃기웃 넘보네
사랑한
임을 찾듯
수줍은 그대 모습
오늘은
찾았을까
방글방글 웃는구나
해 맑은
그대 웃음에
세상 시름 잊는다
접시꽃 /장희한
무슨 쟁반이 저리도 많을까?
층층으로 쌓인 탑이네
그릇그릇 하얀 이밥이네
우리 어머니가 그랬다
들일을 하면서 쇠죽에다 참에다
밥그릇을 많이도 이고 다녔지
층층으로 쌓은 접시꽃
누구의 밥이길래 빨간 보자기를 덮었나
한 층을 내려 상을 차리면 두레상이 거득하겠네
접시꽃 /강명식
초여름 줄기 따라
불그스레 활짝 핀 꽃
젊음의 희망으로 접시꽃 야망처럼
배경을 의지 않고서 살려 하는 자녀들
갈 길을 제힘으로 자립하는 생활이
참 자유 길이라도
얼마나 짓눌리며
현실을 견딘 삶인 줄 접시꽃은 알려나
모으는 돈보다 가파르게 오른 집값
비로소 협력할 때 희망 길 보일 것을
알리라
마음 나눌 때
피는 꽃도 곱다는 것을
접시꽃 사랑의 이분법 /우심 안국훈
유월의 정원에 가면
그윽한 장미 향기 그득하고
낯선 숲속에 가면
수컷의 냄새 가득하다
사랑과 이별의 이분법으로
바람의 통로마저 막고
사랑과 미움의 경계 오가며
고단한 삶을 위로하는 노래 부른다
젖은 이파리처럼 반짝이는 그리움
낮과 밤을 공전하는 우주 속에
돌담 사이로 홀로 걷노라면
접시꽃 사랑은 정녕 부활을 꿈꾸려는가
파릇한 꿈 꾸며 갓 피어난 꽃망울
아기 얼굴만 한 미소 짓더니
게으른 삶을 깨우는 명치 끝에 매달려
가까스로 그리움 지우려다가 울컥 눈물 쏟는다
접시꽃 당신 /섬진강 이문재
접시꽃
피였나니
그대 모습 보입니다
젊은 시절
그대 얼굴 빨간 접시꽃
지금에
그대 모습
하얀 접시꽃이라
세월은 흘러도
내 맘에 그대 얼굴 변하지 않았으니
빨간 접시꽃
내 눈엔 그대'로 보인답니다
접시꽃 당신 /안광수
넓적한 얼굴만큼이나
마음이 넓고 뽀얀 피부
당신이 나를 울렸어요
천생의 여인 주신 선물
바라보며 잊지 않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