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팝나무, 꽃에 관한 시모음 8)
이팝꽃 필 때 /윤무중
어느새 붉게 물든 저녁노을
불그스러운 빛으로 반사되어
하얀 눈송이처럼 맑아진 마음이
잔잔하고 평온한 물결이 되어
사랑의 꽃으로 포근히 피어난다
내 편에 서서 한동안 그리움을 담아
추억의 돌담길을 걸어 가는
그 시간에 발등에 비친 그림자가
그대의 몸을 휘감으면
난 이팝꽃 필 때가 사뭇 설렌다
나와 함께 저 노을에 흠뻑 젖어
달콤한 사랑이 겹겹이 쌓이면
너를 반기고 또 반기는 순간
너의 순정을 기꺼이 받아주고 싶다
나는 덧없는 세월에 그대를
그리움에 남겨진 애뜻함이 있어
세월과 시간 사이 빠듯한 틈바구니에
나무 끝에 이팝꽃이 소담 피어
우리 사랑이 피어나기를 바란다
이팝나무 /이재환
파란 하늘 신록의 계절에
이팝나무 가로수길
하얀 눈꽃이 피었네
어머님은
입하 때 꽃 핀다고 해서
이팝나무라 하셨고
아버님은
쌀밥을 이밥이라고 해서
이팝나무라 하셨다
어머님 아버님 생각하며
이팝나무 꽃길을 걸으니
그 옛날 생각에 잠겨본다.
이팝나무 꽃 /임강식
오월이 오면 빨리 가자
이팝나무 숲으로
하얗게 흐드러진 이팝 꽃밭으로
키다리 이팝나무
그루 마다 흰 꽃송이
맑고 밝은 백설공주
꽃 대궐 바람처럼
꽃 손님 불러놓고
솜사탕 한입 물어
마주 보며 서로 웃자
흐드러지게 달려있는
고마운 하얀 쌀밥
배고픈 그리움의 추억 이었네
이팝나무꽃 /기영석
계절을 잊은 햇살이
봄을 데려와
잎을 피우고 꽃을 피웠다
향긋한 꽃내음은
온몸으로 스며들어
마음마저 설레게 하였고
빈틈없이 소복한 꽃은
쌀밥을 담아 놓은 것처럼
큰 감동을 안겨주었지
이팝나무꽃의 아름다움에
내 마음은 홀린 채로
한참을 멍하니 바라보았어
바람은 속삭이듯
이팝나무 가지를 흔들며
아름다운 풍경을 자아낸다.
이팝나무 /옥주 김화숙
하얀 봄눈이 가지에 탐스럽게
눈꽃을 피웠습니다
이른 아침 눈 꽃길 걷노라니
가슴 아린 기억 코끝이 찡해옵니다
유년 시절 여섯 남매 키우시며
식구들 끼니 다 챙기시고
냉수 한 그릇에 배부르다 하셨던 어머니
하얀 이팝꽃 이밥 같다 하시며
얼마나 서러웠을까
이제는 배곯는 일은 없건만
어머니 그 먼 길을 떠났습니다
하얀 이밥 수북이 담아놓고
어머니 마중하고 싶습니다
사랑하는 나의 어머니
보고 싶습니다
꿈에라도 한번 다녀가시지요.
이팝나무에 오월이 걸리다 /서미영
지난겨울 흰 눈을 긁어다
봄 햇살에 꼬들꼬들 말렸다가
오월 빗물에 흰쌀을 불려
맛있게도 하얗게 밥을 지었다
밭일 나가는 서방 시원한 냉국에
한술 크게 떠 훌훌 말아 먹이고
들풀 꺾어다 앉힌 솥단지 안에
하얗게 멍든 꽃잎을 수북이 깔고 싶다
젓물이 한 방울씩 떨어져 쌓인 꽃잎
갈라진 손바닥으로 풍년을 빌어
이팝나무 꽃이 다 떨어져 간 그 가을엔
어미는 침을 삼키며 이밥을 짓는다
빌딩 앞 이팝나무에 오월이 걸렸다
그 해 같았으면 풍년이 들었겠다
내일 또 먹을는지는 몰라도 그날은
찬 없는 밥상에 흰밥이 꽃처럼 피었겠다.
이팝 꽃길 걷노라면 /서숙지
청보리 필 무렵을
누가 보릿고개라 했던가
몇 발짝 집을 나서면
곳곳에서 하얀 쌀밥을 나누는
이팝나무 꽃을 만날 수 있다
티 없이 하얘서
푸른 하늘과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는
그 아래를 걷노라면
먹지 않아도 배부르고
가만히 귀를 열면
고운 멜로디 황홀하여라
바람이 부는대로 리듬을 타며
꽃잎은 끝없이 재잘거리고
나무는 단단히 그들을 지탱한다
그 옛날
여덟 식구의 식사를 준비하시던
분주한 어머니의 아침이
저러했을까
이팝꽃 /정종명
간밤에 춘설이 내렸다는 일기예보를 듣고 집을 나섰다
새하얀 함박눈이 가로수 나뭇가지를 뒤덮은 모양이 고봉으로 퍼담은 팝콘 봉지 같다
한 움큼 집어먹어 본다
첫사랑 그녀와 동래 극장 영화관에 간 적이 있는데 시골 촌놈이 처음 가본 영화관 영화표 싸기도 빠듯한 여비 겨우 두 장의 표를 손에 쥐고 돌아선 로비 벤치에 앉은 여인들의 얼굴 사랑의 팝콘 터 지 듯 화사하다 망설임도 없이 팝콘 한 봉지 쌌다 돌아갈 차비는 안중에도 없이, 영화가 상영되는 시간 내내 서로 입속에 넣어준 고소한 사랑 아직도 입안 가득 남았다
먹어도 먹어도 배고팠던 시절 값진 주전부리 영원히 지울 수 없는 추억의 팝콘
길가 오래된 구멍가게를 뒤져본다
어디엔가 찾아보면
켜켜이 먼지 쌓인 잊지 못할 추억이 있을 것이다.
이팝나무 꽃 /한유경
톡톡 옥수수 팝콘 튀는 소리
송글송글 이팝꽃 맺는 소리
새하얀 면사포
곱게 올린 5월의 신부
몽실몽실 솜사탕
쌀박상 처럼 피어올라
새초롬한 새 색시
이팝 한움큼 가슴에 품네.
이팝나무 명상 /雲岩 한병진韓秉珍
나는
부끄러워하지 않을 것이다
그대가 아무리 눈살 찌푸리며
손가락으로 내 가장 사랑스런 숨은 곳
찌른다 해도
내가 걸어온
길의 어둡고 슬픔에 찬
둘렛길에서 기실은 가장 아름다운
자유의 이팝나무가 베시시
자라고 지금은 빛나고 있다
어둠속에서
그대 눈동자의 주름까지
볼 수 있는 대담과 자상함을
그대의 손과 함께 날마다 더러워진
내 손바닥을 우리의 눈물로 씻어주는 일
오늘 바라보는
저 하늘 높이 솟아난 이팝나무 가지에서
깜죽새 한 마리 눈물처럼 어리인다.
이팝나무 /이종덕
길가에
이팝나무
하얗게 꽃피우면
그리운
어머니의
칼국수 생각이나
언제나
가슴 가득히
사랑으로 꽃 피네
이팝 /이영지
물
김의 이팝나물 나즉히 엎드리며
이김의 길에 앉아
물 몸을 기대하며
가만히 이팝나물이 볼 빨개서
"사랑해"
아
나는
그만 눈이 멀어서 아주 파래
금비의 나물물살
떼그르
퐁당퐁당
덩달아 나 "이팝이팝"
나직하게
"사랑해"
깊은 밤 이팝나무 숲은 등을 켜 든다 /유수연
이팝나무 숲 속에 들어서자 한 겹 푸른 어둠이 덧칠해졌다
바위구절초나 금강초롱꽃도 푸른 물감을 한자락 끌어 덮고 조용하다
햇살 중에 금빛줄만 뽑아 몸안에 빛을 뭉치는 반딧불이
제 짝을 찾을 때 낮동안 애써 뭉친 빛을 가장 강하게 내쏘는
반딧불이는 아직 돌아오지 않은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약속은 하지 않았지만 돌아와야 할 누군가를 기다린다
길을 잘못든 것이 아닐까
방향 표지판은 제대로 놓여 있는 걸까
아무래도 안되겠어
제 몸을 태워 불을 밝히고 숲을 나서는 반딧불이
낮동안 꾹꾹 눌러 뭉친 금빛 햇살로 길을 열어 놓는다
어둠으로 덮혀 있던 이팝나무잎 무성한 숲이 술렁인다
오랜 기다림으로 몸을 태우는 불빛이 까만 어둠에 상처처럼 박힌다
하나둘 가쁜 숨을 쉴 때마다 새살 밑의 그리움이 씀벅씀벅 불빛이 된다
보고 싶어 보고 싶어
기다림을 깜박이면서 금강초롱꽃에 앉아 호롱불을 밝혀 든다
이팝나무 숲이 반딧불이의 등불을 밝혀든 집 한 채로 서 있다
그 집 문을 밀고 들어서자 새살 밑에 뭉쳐 놓은
금빛 햇살이 일제히 일어서서 그를 향한 길을 열어 놓는다
이팝나무 아래서 /정군수
부여 박물관 이팝나무 아래에서
수필들이 모여 앉아
사진을 찍습니다
오고간 길이 달라도
수필이라는 나무 아래
이렇게 같은 마음으로 앉았습니다
저 나무 하얗게 꽃피운 어느 날
우리처럼 모여 앉아
수필이라는 이름으로
사진을 찍을 뉘 있을거나
이팝나무 꽃 /김시종
꿈길로도 안 오시는 어머님이
이팝나무 꽃이 되어 소복입고 오셨네요.
오늘 아침.....
어머님이 정성들여 지으신 이팝나무 꽃 밥을
눈으로 양껏 배불리 먹고요.
올 한해도 어머님 생각하며 튼실하게 살겠어요.
어머님.......
김해 신천리 이팝나무 /김이삭
올해도
쌀밥 지어
한 상 가득
신천리 마을 먹이시던
이팝나무 할머니
그 푸짐한 인심
소문이 자자해요.
600년 동안
상 차리는 일
고되지도 않은지
삐거덕 에구구 다리야
하시면서도
쌀밥
차리시네요.
-2024년 동시집 <길고양이 릴리 아가씨>36페이지
이팝꽃 /권달웅
엄마가 일하다 잠깐 쉬는
밭두렁에 하얀 이팝꽃이
무더기로 피었다.
나는 이팝꽃잎을 땄다.
먹고 싶은 쌀밥 같은 이팝꽃은
풀냄새도 나고 흙냄새도 나고
엄마의 땀 냄새도 났다.
밭두렁에 핀 이팝꽃은
내 생일에 엄마가 일껏 지어담은
고봉의 하얀 쌀밥이다.
어서 먹거라. 어서.
어매는 배부르대이. 생각 없대이.
엄마의 땀 냄새 나는 이팝꽃이
밭두렁에 무더기로 피었다.
앞산 뻐꾸기소리도 들려오고
엄마의 수심가도 들려온다.
이팝 대 조팝 /박태언
이팝 조팝나무모여
안남미 쌀 불어터진
밥알을 휘익 뿌렸다
밥알 향기 시끄럽다
재잘거리는 이팝조팝
제 잘났다 요란하다
야~~이
시끄럽다
그 나물에 그 밥인거 몰라
이팝나무 /김숙자
용추사 이팝나무에 키 큰 물소리 나네,
유월 바람 불어와도 초록보다 더 푸른 삼매에 들었나,
봄은 다 가고 유월 더위 때문일까,
키 큰 이팝나무 맥 풀어져 하얀 삼매에 들어 있네,
하늘에 닿은 눈꽃등 아래 소쩍새 소리 사이로 아버지 걸어오시네,
아버지 발자국에서 소쩍 소쩍 소리가 나네
아버지 소쩍새 소리를 양팔 간격으로 떼어 놓으시네
굳게 잠긴 사락정 대문 밖 마당에 개량종 채송화가 빨간 베갯모를 펼치네,
사르르 유월바람 오디 먹은 입술로 잔 발을 내리네,
파뿌리 같은 잔 발로 어린 모를 쓸다가 아버지 하얗게 이팝나무 휘둘러보고 광목처럼 길게 길게 언덕 넘어 가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