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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과비평작가회의제32호동인지원고 박하 수필 사랑은 아름다워라 6/14일 주일 아침 오전 8시 7분

작성자박하|작성시간26.06.14|조회수2 목록 댓글 0

수필과비평작가회의제32호동인지원고 박하 수필 사랑은 아름다워라

사랑은 아름다워라

박하

 

눈은 기억 위에 조용히 내려앉고 사랑은 오래된 노래로 다시 들려온다.

 

맞선을 본 뒤, 그는 이상하게도 내 마음 한가운데로 스며들어 와 있었다.

그가 시간 있으면 과수원 구경하러 오라던 말이 생각났다

거의 반세기 전, 겨울의 어느 토요일 오후, 나는 전화로 연락하지 않고 놀라게 해주려고 그의 과수원을 처음으로 찾아가고 있었다.

하늘은 잿빛 구름을 낮게 드리운 채 금방이라도 눈을 올 것 같았다. 미루나무 사이로 난 오솔길을 따라 걷다가 시냇물을 건널 때, 행여 미끄러질까 조심조심 징검돌을 디뎠다. 저만치 과수원 한가운데 자리한 파란 슬레이트 지붕 위로 흰 비둘기들이 평화롭게 쉬고 있었다. 마당에 들어서자, 강아지보다도 작은 치와와 대여섯 마리가 툭 불거진 눈망울로 나를 바라보며 쉴 새 없이 짖어댔다. 낯선 손님의 방문을 주인에게 알리려는 듯 하는 그 모습이 귀여웠다. 허술한 울타리 안에는 공작새 한 쌍이 한가롭게 거닐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자 수컷 공작이 오색찬란한 깃을 활짝 펼치는 게 마치 나를 환영하는 것 같았다.

집 주변에는 작은 생명들이 저마다의 숨결로 살아 있었다. 여물을 천천히 먹는 외양간의 새끼 밴 암소, 다리 살이 통통한 오계들은 마당을 부지런히 오갔다. 비둘기와 치와와, 공작새와 암소, 오리까지. 그의 집은 작은 생명들의 조용한 합창 같았다.

금성산 자락 아래 자리한 과수원은 한겨울인데도 생기가 넘쳤다. 시인 셸리가 서풍의 노래에서 말했듯, “겨울이 오면 봄이 멀리 있으랴.” 처럼 이미 봄의 숨결이 흐르고 있었다.

치와와들이 계속 짖어대자, 사과나무 전지를 하던 그가 달려왔다. 그는 놀란 얼굴로 이 추운 날 웬일입니까고 말하면서도, 눈은 반가움으로 내 차가운 손을 꼭 잡아 주었다. 그 손끝에서 따뜻한 온기가 번져왔다.

춥네요.” 내 말에, 그는 서둘러 방으로 들어가 급히 정리한 듯 호마이카 장롱 사이로 이불이 삐죽 나와 있었다. 나는 슬며시 시선을 창으로 돌렸다.

아랫목은 넉넉히 덥혀져 있었다. 그는 대접할 것이 없다며 미안해했지만, 다락문을 열어 사과와 홍시, 밤과 땅콩을 한가득 내어놓았는데, 풍성한 계절을 마주했다.

앨범을 꺼내어 사진을 한 장씩 넘기며 부모님과 형제, 자신의 삶과 기억의 이야기를 해주는 동안 시간은 조용히 흘러갔다.

얼마나 지났을까. 문득 방문을 여니, 세상이 온통 하얀 겨울이었다. 그새 함박눈이 펑펑 내려 사과나무 가지마다 눈꽃이 피었고, 설경은 마치 우리의 앞날을 축복하는 것 같았다.

그가 미스 박 밖으로 나갈까요?” 말하기에 우리는 사과나무 아래로 갔다.

그는 눈꽃이 핀 사과나무에 기대어 영화 모정의 주제가 사랑은 아름다워라 노래 ‘Love Is a Many-Splendored Thing을 테너로 불러주었다. 그 노래는 내 마음 깊은 곳을 조용히 감동으로 흔들었다. 제니퍼 존스와 윌리엄 홀덴 주연의 모정영화를 여고시절에 보았다고 하자 그는 무척 반가워했다. 우리는 감명 깊었던 장면들을 나누며 자연스럽게 마음이 통했다. 그는 그 영화에서 언덕의 느티나무 아래에서 둘 연인이 만나는 장면을 눈을 감고 감상해보라고 했다. 사랑은 봄날에 피어나는 한 송이 장미 같고, 그 향기는 삶 전체를 감싸 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날의 그의 노래는 내 삶의 방향을 바꾸었다. 나는 그와 인생길을 함께 걷기로 마음을 정했다.

연분홍 살구꽃 가지가 웨딩드레스의 레이스처럼 흩날리던 날, 우리는 과수원 마당에서 목사님의 주례와 양가 친척들과 교인들의 축복으로 결혼식을 올렸다. 신혼의 삶 속에서 사랑스런 딸아기도 태어나 집안에 웃음꽃이 떠나지 않았다.

가을이 지나고, 봄과 여름이 찾아오고, 우리가 좋아하던 흰 눈 내리는 겨울도 지나갔다. 사과나무에 눈꽃이 피고 지는 동안 세월은 조용히 바람 속으로 흘러갔다.

하루해가 저무는 것이 아쉬워, 시간을 붙잡아 사과나무 둥치에 묶어두고 싶은 날도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그는 예고도 없이 사슴목장에서 뇌출혈로 세상을 떠났다. 그토록 사랑하던 딸이 감수성 예민한 여고 일학년 때 그는 그동안 정성껏 가꾸어 온 삶을 남겨둔 채, 흙 속의 바람 속으로 사라졌다. 영원한 것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의 부재는 너무도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이라 믿어지지 않았다. 은 잠시 꽃과 햇살과 행복을 허락했다가, 조용히 거두어 가심을. 황금빛 해바라기가 뜨겁게 피어나는 계절, 그는 내게 기다림과 그리움을 주고 떠났다. 하늘이 그가 필요해서 데려간 거라고 여기며 어린 딸과 나는 기독교 신앙으로 그의 죽음을 승화시켰다

 

흰 눈이 내리는 날이면, 행복하던 그날로 돌아간다. 그의 모습이 느린 영상의 그리움으로 되살아난다. 그가 떠난 지 삼십 년이 흘렀지만, 그 노래는 사랑의 메아리가 되어 돌아온다.

오늘도 내 가슴을 조용히 기쁨의 설렘으로 흔들어 놓는다.()

 

 

**추신 참고로 그냥 알려 드리니 이 부분은 책에 싣지 마세요: 딸은 중학교 교사이며 사위는 금융계에 몸담고 있습니다. 둘은 교회에서 만나 결혼하여 행복한 가정을 이루어 외동딸이 벌써 아들 셋의 엄마이지요. 대학생, 고등학생, 초등학생 아들 셋을 둔 엄마이며 잘 살고 있습니다. 저는 외손자들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사랑스런 꿈나무이지요.

 

박하 작가 약력

박하 1947 대구 동촌 출생신명여고졸업계명대학교 보육학과졸업

등단: 한국크리스천문학수필 등단(1998) 수필과비평 수필 신인상(1999)

현대수필 수필 신인상(2000)지구문학 소설 등단(2008) 지구문학  등단(2011)소속:의성문인협회회원(1993),한국문인협회회원(2000)여러 곳.

현재대구기독문학 자문위원농민문학이사영호남수필대구지회장산문과시학회장.

수상영호남수필문학상(2022),  농민문학작가상(2027소설 홍실이외 다수.

수필집파랑새가 있는 동촌 금호강(2000 문학관 ) 인생(2002 문학관멘토의 기쁨(2007문학관초록웃음(2008 문학관퓨전밥상(2010문학관), 수필 선집흐르는 인생  (2025 도서출판 대성사),소설집홍실이(2025 도서출판 대성사)

 

이메일parkha620@hanmail.net 

전화 053-428-8333, 휴대폰: 010-3474-8333 

주소: 41586 대구시 북구 중앙대로105 22, 101 402(칠성우방맨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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