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의 섬2
문학회원들을 태운 관광버스는 구마고속도로를 따라 남쪽으로 달린다. 창밖 가로수는 마치 여행길이 반가운 듯 가벼이 흔들린다. 어느새 버스는 통영에 닿고, 우리는 거제도 장승포항에서 유람선에 오른다. 외도와 해금강, 그리고 홍도를 거쳐 매물도까지 둘러보는 판타지 코스다. 배 멀미가 걱정되어 미리 귀 뒤에 약을 붙여 둔다. 5시간이나 되는 바다 여정이 설렘과 불안을 함께 안겨준다.항구를 떠난 배 위에서 바라본 바다는 세모시 옥색 치마처럼 고운 빛을 띠고 있었다. 맑은 날씨 덕분에 멀리 일본의 섬들까지 아슴푸레하게 떠오른다. 푸른 화선지 위에 먹물을 흩뿌려 놓은 듯 검은 섬들이 점점이 박혀 있고, 어떤 섬은 마치 반쯤 몸을 드러낸 여인처럼 신비롭게 얼굴을 감춘다. 자연은 그렇게 때로는 선명하게, 때로는 은밀하게 자신의 비밀을 드러낸다.외도에 닿자 사람들은 먼저 시장기를 달랜다. 선착장 앞 그늘에 자리를 펴고 갓 잡은 회를 초고추장에 찍어 먹는다. 바람결에 실려 오는 바다 내음과 해초 향이 어우러져, 육지에서 먹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깊은 맛이 난다. 허기를 채우자 몸과 마음에 다시 힘이 돌고, 눈빛도 한결 맑아진다. 섬 안으로 들어서면 전혀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야자수와 아열대 식물들이 빽빽하게 들어찬 외도는 ‘한국의 하와이’라는 이름이 아깝지 않다. 한때 황폐했던 섬을 한 사람이 가꿔 꽃과 나무의 정원으로 바꾸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길마다 생명력이 넘친다. 동백나무 숲길을 따라 걷다 보면 선인장과 가자니아, 유카, 용설란 등 수천 종의 식물이 어우러져 작은 지상의 낙원을 이룬다. 비너스와 다비드 조각상 사이로 바람이 지나가고, 사람들은 그 속에서 잠시 다른 세계의 여행자가 된다.외도를 떠나면 바다는 다시 해금강으로 우리를 이끈다. 바다의 금강이라 불리는 이곳은 본래 갈도, 즉 칡섬이었다. 유람선이 바위를 따라 천천히 미끄러지듯 나아가면 기암들이 하나씩 모습을 드러낸다. 그중 신랑과 신부 바위는 오래된 전설처럼 사람들의 시선을 붙든다. 혼례복을 갖춰 입은 신랑과 신부가 이제 막 첫날밤을 맞이하려는 순간처럼 보이지만, 세월은 그들을 그대로 바다 위에 세워 두었다. 1959년 사라호 태풍이 신부 바위의 허리를 꺾어 바다 속에 잠기게 했다고 한다. 완전하지 못한 결합은 오히려 더 긴 여운을 남긴다.홍도에 이르면 섬은 또 다른 표정을 보여준다. 동백꽃과 갈매기의 섬, 홍도. 갈매기 떼가 섬을 덮을 때면 마치 함박눈이 쏟아지는 듯한 장관이 펼쳐진다. 하늘을 유유히 가르던 새들이 먹이를 발견하는 순간, 바다로 곤두박질치듯 내려와 사라진다. 어떤 갈매기는 바다 위에 떠 있으면서도 느긋하게 시간을 흘려보낸다. 마치 사색하는 글쟁이처럼, 세상과 일정한 거리를 둔 채 자신만의 리듬을 지키고 있다.마지막으로 매물도는 그야말로 절경이다. 기암절벽의 허리를 안개와 구름이 감싸 안고, 맑은 바다는 깊이를 가늠할 수 없을 만큼 투명하다. 돔과 볼락이 산다는 그 바다는 물고기들에게는 낙원이고, 낚시꾼들에게는 꿈의 장소일 것이다.푸른 바다 위를 나는 흰 갈매기를 바라보다 문득 겨드랑이가 간지럽다. 정말 날개라도 돋아나는 듯한 착각이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이 푸른 하늘과 바다 사이를 훨훨 날아보고 싶다는 충동이 가슴을 스친다. 남해의 섬들은 그렇게 사람의 마음 깊은 곳에 오래된 바람 하나를 심어 놓는다.
***작품평
이 글은 남해 유람 여행을 따라가며 풍경·미각·감각 경험을 겹겹이 쌓아 올린 여행 수필로 읽힙니다. 전체적으로는 ‘이동의 서사’와 ‘시선의 확장’을 통해 바다를 하나의 거대한 감정 공간으로 구성한 점이 가장 큰 특징입니다.
우선 장점은 이미지의 밀도입니다. “세모시 옥색 치마”, “푸른 화선지에 먹물을 흩뿌린 듯” 같은 비유는 단순한 풍경 묘사를 넘어 바다를 회화적으로 전환합니다. 특히 섬들을 “여인의 얼굴”이나 “검은 점처럼 박힌 섬”으로 보는 시선은 자연을 정적인 배경이 아니라 은밀한 생명성을 가진 존재로 끌어올립니다. 이런 은유는 독자의 시각 경험을 문학적으로 확장시키는 힘이 있습니다.
또한 구조적으로는 일정한 여정의 흐름이 잘 유지됩니다. 장승포항에서 출발해 외도–해금강–홍도–매물도로 이어지는 코스가 시간 순서대로 배열되어 있어, 독자는 실제 유람선을 함께 타고 이동하는 듯한 체험을 하게 됩니다. 각 섬이 하나의 ‘장’처럼 기능하면서도 서로 다른 정서(낙원, 전설, 생태, 고요)를 담당해 변주가 생기는 점도 안정적입니다.
다만 아쉬운 점도 있습니다. 문장이 전반적으로 수려한 대신, 이미지가 풍부한 만큼 반복적인 미적 감탄이 누적되면서 긴장감이 약해지는 구간이 있습니다. 예컨대 여러 섬에서 “절경”, “낙원”, “신비” 같은 정서가 반복되면서 개별 장소의 고유한 차이가 조금 희미해지는 느낌이 있습니다. 즉, ‘다 다 아름답다’는 인상이 강해져 후반부로 갈수록 인상의 선명도가 다소 평평해집니다.
또 하나는 서술자의 내면이 후반에 잠깐 드러나는 “날개가 돋는 착각” 같은 대목인데, 이 부분이 흥미롭지만 더 확장되지 않고 빠르게 마무리되는 점입니다. 앞부분의 풍경 묘사가 풍부한 만큼, 그 감각이 인간의 내면 변화로 더 이어졌다면 글의 깊이가 한층 강화될 여지가 있습니다.
종합하면 이 작품은 남해 섬들을 통해 자연을 감각적으로 ‘회화화’하는 데 성공한 수필입니다. 다만 미적 이미지의 균형과 내면 서사의 확장을 조금 더 조정하면, 단순한 여행 기록을 넘어 하나의 완결된 문학적 체험으로 더 강하게 남을 수 있는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