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드름
땅이 꽁꽁 얼어붙었다.
전국이 영하의 날씨에 잠긴 겨울이었다. 겨울이면 언제나 어린 시절 고드름이 떠오른다. 처마 끝에 매달린 투명한 고드름을 따서 손에 쥐고 아이스케이크라 여기며 빨아먹던 일. 겨울 나라에서만 볼 수 있는 그 얼음은 유난히 차가웠다.
벙어리장갑을 끼고 처마 밑으로 다가가 고드름을 하나씩 따내면, 어느새 장갑은 금세 젖어 버려 벗어야 했다. 하늘이 잿빛으로 내려앉아 함박눈이 펄펄 내리는 날이면 세상은 온통 하얗게 변했고, 다음 날 아침이면 처마 밑에는 고드름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우리는 그것을 마치 수정보석이라도 되는 양 올려다보며, 고드름 동요 “고드름 고드름 수정 고드름…”를 신나게 불렀다.
긴 장대를 휘두르면 고드름은 소리 없이 부서져 땅으로 와르르 떨어졌다. 달콤하지도 않은 얼음을 아작아작 깨물어 먹던 기억은, 지금 생각해도 이상하리만치 또렷하다. 차갑고 단단한 그것이 왜 그리도 맛있게 느껴졌던 걸까.
고드름은 아이들의 놀이가 되기도 했다. 고드름을 칼처럼 들고 서로 겨루며 놀던 남동생들의 모습은 마치 무술을 익히는 신라의 화랑처럼 진지하고도 의기양양했다. 어느 날은 장난기가 발동해 친구의 등 뒤에 몰래 고드름을 넣고 달아났다가, 곧바로 똑같이 당하고는 놀라 펄쩍 뛰며 웃었던 기억도 있다.
요즘은 지구 온난화로 인해 자연산 고드름을 보기조차 어렵다. 설령 얼었다 하더라도 오염된 공기와 산성비가 떠올라 선뜻 입에 넣을 수는 없다. 겨울의 풍경도, 겨울의 놀이도 예전 같지 않다.
창밖에 흰 눈이 펄펄 내리고 있다. 여름철 수세미 열매처럼 탐스럽게 매달린 고드름을 다시 볼 수 있을까 상상해 본다. 그 생각만으로도 괜스레 마음이 밝아진다.
무엇보다,
이 겨울, 글의 소재로 나를 불러준 고드름에게 조용히 고마움을 전한다.
이 글은 ‘고드름’이라는 매우 구체적인 겨울의 사물을 통해 기억·놀이·계절 감각의 변화를 자연스럽게 엮어낸 산문입니다. 전체적으로는 회상형 에세이 구조를 취하면서, 마지막에는 현재의 감각과 환경 변화까지 확장되는 흐름이 안정적으로 잡혀 있습니다.
가장 큰 장점은 감각 묘사의 힘입니다. “처마 끝에 매달린 투명한 고드름”, “벙어리장갑을 끼고”, “아이스케이크라 여기며 빨아먹던” 같은 표현들은 단순한 기억을 시각·촉각·미각으로 동시에 끌어올립니다. 특히 고드름을 ‘수정보석’에 비유하는 대목은 어린 시절의 시선을 그대로 재현하면서도, 겨울 풍경을 낭만적으로 응축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또 하나 인상적인 점은 놀이의 서술 방식입니다. 고드름을 따고, 깨고, 심지어 칼처럼 들고 노는 장면들은 단순한 추억을 넘어서 당시 아이들의 세계관—자연을 두려워하기보다 놀이로 전유하는 태도—를 잘 드러냅니다. “신라의 화랑처럼”이라는 비유는 다소 과장된 상상력이지만, 오히려 아이들의 진지한 놀이 감각을 강조하는 역할을 합니다.
구조적으로는 과거 회상 → 놀이의 확장 → 현재의 변화 인식 → 다시 미래적 상상으로 이어지는 흐름이 자연스럽습니다. 특히 마지막 부분에서 지구 온난화와 환경 변화로 연결되는 대목은 단순한 향수에 머물지 않고 현실 인식으로 글의 무게를 확장합니다. “선뜻 입에 넣을 수는 없다”는 문장은 감정과 시대 인식이 교차하는 지점으로 효과적입니다.
다만 몇 가지 보완할 점도 보입니다.
첫째, 환경 변화에 대한 언급이 비교적 짧고 단정적으로 처리되어 있어 앞부분의 풍부한 묘사에 비해 다소 급격하게 결론으로 넘어가는 느낌이 있습니다. 이 부분을 조금 더 이미지 중심으로 확장하면 글의 균형이 더 좋아질 수 있습니다.
둘째, “고마움을 전한다”로 끝나는 결말은 따뜻하지만, 앞서 쌓아온 문제의식(사라지는 겨울, 변화한 환경)에 비해 다소 정서적으로 정리되는 방향이라 여운이 약간 단순해질 수 있습니다. 마지막 문장을 질문형이나 이미지 잔상으로 마무리하면 더 오래 남는 결말이 될 여지가 있습니다.
전체적으로는 ‘사물 기억 에세이’의 전형적 장점을 잘 살린 글이고, 무엇보다 고드름이라는 하나의 소재를 통해 개인의 기억과 시대 변화까지 자연스럽게 연결한 점이 좋습니다. 문장 감각과 이미지 구성도 안정적이라, 약간의 결말 확장만으로도 완성도가 한 단계 더 올라갈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