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떠난 후
그는 지금쯤 무얼 하고 있을까.
하늘나라 꽃밭을 거닐고 있을까.
나는 지상의 뜰에서 그에게 노래를 띄워 보낸다.”
그가 이 세상을 떠난 지 엊그제 같은데, 어느덧 29주기 추도예배를 드린다. 사람은 떠나도 사랑은 남는 것이라 했던가. 시간이 흐를수록 그는 오히려 생전의 온화한 모습으로 더 또렷하게 다가온다.
세월은 참으로 빠르다. 그가 돌아올 수 없는 먼 길을 떠나던 날, 여고 1학년이던 딸은 이제 대학을 졸업하고 든든한 가정을 이루어 세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삼십여 년 전, 사과나무에 기대어 불러주던 ‘사랑은 아름다워라’는 노래는 아직도 마음 깊은 곳에서 메아리처럼 울린다.
세월은 약이 되는 법인가 보다. 지금은 어린 외손자들이 내 삶의 새로운 기쁨이 되어 준다. 세상의 빛처럼 맑은 아이들을 바라보며,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다.
가을 하늘을 올려다본다. 정처 없이 흘러가는 구름이 마치 한 인간의 생애처럼 느껴진다. 지난날 나는 무엇을 위해 그토록 치열하게 살아왔던가. “잘 살아보자”는 단 하나의 마음으로 앞만 보고 달려왔던 시간들. 저지대 과수원에서 해마다 홍수를 겪으며 살다가, 1990년 언덕 위에 이층집을 짓고 나서는 비로소 삶이 안정되는 듯했다. 이제는 행복만 남았다고 믿었다.
갑작스런 그의 죽음은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먼 여행을 떠난 것이라 스스로 위로해 보았지만, 가슴 속 슬픔의 강물은 멈추지 않았다.
여름이면 우리 집 뜰에는 진분홍과 흰빛이 섞인 나팔꽃이 아침마다 피어나 작은 기쁨을 전했다. 덩굴이 바지랑대를 감아 올라가 하늘을 향해 꿈을 키워가듯, 나 역시 그 꽃을 보며 다시 희망을 배웠다. 그 시절의 나는 꽃과 함께 천상의 사닥다리를 오르내리며 행복을 꿈꾸었다.
“씨도둑은 못한다”는 옛말처럼, 어린 딸아이의 발가락은 놀랍도록 제 아빠를 닮아 있었다. 작은 발가락을 아빠 발가락에 맞대어 보며 웃던 날의 그의 미소도 함께 떠오른다. 사소한 일상이었지만 그 안에는 언제나 웃음과 온기가 있었다.
거실 창 너머로 보이던 사계절의 산은 늘 경이로웠다. 진달래의 연분홍에서 복숭아꽃의 부드러운 빛으로, 다시 조팝꽃의 하얀 미소로 이어지던 봄. 아카시아 향기가 번지면 오동나무 꽃이 우아하게 피어났고, 밤꽃의 은은한 향기는 비밀스러운 화원처럼 마음을 적셨다. 여름이면 자귀나무 꽃이 분홍 날개처럼 피어났고, 가을 단풍과 겨울 설경까지 그 모든 계절이 하나의 풍경화처럼 지나갔다.
이제 그는 추억 속에서만 만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어느 날 집으로 돌아오다 문득 담장 너머 자귀나무 꽃 속에서 그의 미소를 보고 멈춰 섰던 적이 있다. 반가워 다가가니 바람처럼 사라지는 환상이었다. 자귀나무는 그가 우리 마당에 심었다. 부부의 금실을 상징한다는 ‘합한수’라며, 밤이면 잎을 맞대고 잠든 모습이 꼭 다정한 부부 같다고 설명해주던 그였다.
내 삶의 나이테는 그와 함께했던 시간 속에서 가장 단단하게 새겨져 있다. 목화송이처럼 포근했던 기억들을 떠올리며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현관문을 열며 “밥 묵자”라고 말하던 그의 경상도 사투리가 아직도 귓가에 들리는 듯하다. 그 평범한 한마디 안에 얼마나 깊은 사랑이 담겨 있었던가. 그때는 몰랐다. 곁에 있을 때는 당연했던 것들이, 떠난 뒤에는 가장 소중한 것이 되어 돌아오다니….
이제는 그의 부재 속에서 더 깊이 그를 사랑하게 되었다. 그 사랑의 힘으로 살아왔고, 지금도 살아가며,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지금쯤 그는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아마도 하늘나라 꽃밭을 거닐고 있으리라. 나는 지상의 뜰에서, 그에게 조용히 노래를 띄워 보낸다.
‘그대 떠난 후’의 가곡처럼.
그대 떠난 후 / 바리톤 김동규
1.아 그저 그렇게 기다리면 되나
그대 떠난 그 길 위에
더 그릴 수 없는 그대 떠올리며
오늘도 난 그대를 기다리네
2.다정하게 항상 내게 들려주던
그 노래는 들리는데
어디에도 당신 보이지가 않아
그리움 눈물로 채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