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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하 수필

그 겨울의 폭설 (수정)

작성자박하|작성시간26.06.15|조회수1 목록 댓글 0

그 겨울의 폭설

 

창밖으로 흰 눈이 조용히 내리고 있다.

온 세상이 순식간에 하얗게 지워진 듯 고요하다. 문득 오래전, 폭설 속에서 가슴 졸이며 보냈던 어느 겨울날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떠오른다. 그날의 기억을 따라, 나는 다시 천천히 그 길을 걸어본다.

 

그날은 설날 다음 날이었다. 오후부터 하늘은 잿빛으로 낮게 내려앉았고, 곧 눈이 올 것 같은 기운이 감돌았다. 아니나 다를까, 해가 기울 무렵부터 눈발이 흩날리기 시작했다. 대구로 돌아갈 채비로 집안은 분주했다. 설날에 차려 두었던 음식—전과 나물, 조기구이, 탕국, 감주—를 위생용기에 담으며 짐을 꾸렸다. 남편은 하루 이틀 뒤 다시 시골로 올 텐데 짐을 줄이라며 서두르게 했다.

 

세 식구가 1톤 트럭에 올랐다. 집 앞 사거리는 이미 귀성 차량으로 가득 막혀 있었다. 한참이 지나서야 겨우 대구 방향으로 길이 트였다. 그때 어디선가 앰뷸런스의 사이렌이 울리며 지나갔고, 곧이어 경찰 기동대 차량과 레커차가 뒤따랐다. 가까운 곳에 사고가 난 듯했다. 도로는 사실상 마비 상태였다.

 

그 와중에 뻥튀기 장수가 차량 사이를 오가며 과자를 팔고 있었다. 우리도 무심코 한 봉지를 샀다. 입이 심심한 긴 정체 속에서 그것은 작은 위안이 되었다. 청로에 이르자 마을 사람들은 길게 늘어선 차 행렬을 구경하느라 목을 길게 빼고 있었다. 그 틈에서 뜻밖에도 먼 친척 아주머니를 만나 서로 손을 흔들며 반가운 인사를 나누었다.

 

그러나 청로 고갯마루에 이르렀을 때 상황은 심각해졌다. 차가 오히려 뒤로 밀리기 시작한 것이다. 스노체인도 없이 올라온 길은 이미 얼어붙어 있었다. 뒤차들의 경적이 이어지고, 남편은 브레이크에 의지한 채 차를 붙잡고 있었다. 반대편 버스 기사까지 조언을 건넸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결국 우리는 더 이상 오를 수 없음을 인정해야 했다.

 

후진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남편은 고개를 돌린 채 조심스럽게 차를 움직였고, 나는 창밖을 보며 길을 살폈다. 미안한 마음에 손을 들어 뒤차들에게 연신 양해를 구했다. 그러나 점점 더 많은 차량이 멈춰 서더니, 몇몇 사람들이 차에서 내려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중 한 사람이 다가와 날카로운 목소리로 물었다.

 

“언제까지 이렇게 갈 겁니까?”

 

남편이 연신 죄송하다고 말하자, 불만 섞인 말들이 이어졌다. 다행히 한 어르신이 나서서 갑작스러운 폭설임을 감안하자며 상황을 중재해 주었다. 사람들은 다시 차로 돌아갔지만, 그 순간의 긴장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눈은 점점 거세졌다. 바람은 날카롭게 휘몰아쳤고, 세상은 마치 시베리아 벌판처럼 변해 있었다. 옆 차선의 사람들은 우리를 안쓰럽게 바라보았다. 딸아이는 앞유리를 닦으며 작은 손을 분주히 움직였다. 남편은 시야조차 흐린 가운데서도 끝까지 차를 움직이려 애쓰고 있었다.

 

그때였다. 호루라기 소리가 울리며 젊은 남자가 다가왔다. 그는 차들 사이의 간격을 정리하더니, 우리 차에 올라탔다. 그리고 직접 방향을 잡아 길을 틀어주었다. 그의 도움으로 우리는 다시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그는 손을 들어 환하게 인사한 뒤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그 짧은 도움 하나가 얼마나 큰 안도였는지 모른다. 우리는 겨우 청로 다리를 지나 가음과 춘산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리고 마침내, 멀리 빨간 벽돌의 집이 눈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그 순간의 반가움과 안도는 오래도록 잊히지 않는다.

 

집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해가 저물고 있었다. 출발한 지 세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가까운 거리였지만, 그날 우리는 자연 앞에서 얼마나 무력한 존재인지 절감했다. 동시에 낯선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의 온정이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도 깨달았다.

 

그날 밤, 딸아이는 개근상을 받지 못할지도 모른다며 속상해했다. 그러나 다음 날, 폭설로 인해 학교도 정상 운영이 어렵다는 소식을 듣고는 금세 웃음을 되찾았다. 눈 속에서 아이는 아버지와 함께 눈사람을 만들며 마음껏 뛰놀았다. 그 모습을 보며 남편은 연신 사진을 찍었다.

 

그로부터 많은 세월이 흘렀다. 딸아이의 아버지는 이제 이 세상에 없다. 하지만 그가 남긴 겨울의 기억은 여전히 내 마음 속에 선명하다. 그날의 눈, 그날의 길, 그리고 서로를 향한 작은 손길들까지도.

 

지금도 창밖에는 눈이 내리고 있다. 흰 눈은 모든 것을 덮어 조용히 정리해 주는 듯하다. 과거의 기억은 때로 현재를 더 따뜻하게 만든다. 사철나무 위에 내려앉은 눈꽃처럼, 그 겨울의 추억은 여전히 마음 한켠을 조용히 밝혀 준다.

 

 

*작품평

이 글은 단순한 회고가 아니라 “폭설이라는 외부 자연”과 “가족의 생애 기억”이 겹쳐지면서, 시간의 층이 생기는 서사입니다. 전반적으로 감정의 과잉 없이 차분하게 서술되어 있어서 오히려 마지막의 상실이 더 깊게 남습니다.

가장 두드러지는 힘은 구체적인 생활 디테일입니다. 설날 음식(, 나물, 조기구이, 탕국, 감주), 1톤 트럭, 뻥튀기 장수, 스노체인 없는 고갯길 같은 요소들이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그날을 복원하는 물질적 증거처럼 기능합니다. 이런 디테일 덕분에 글이 회상임에도 흐릿해지지 않고, 영화처럼 장면이 이어집니다.

또 하나 중요한 축은 긴장과 완화의 리듬입니다. 정체 사고의 암시 고갯길에서의 위기 후진의 좌절 낯선 사람의 개입 탈출이라는 구조가 잘 설계되어 있습니다. 특히 차가 뒤로 밀리기 시작한 순간사람들이 내려오는 장면은 감정적으로 가장 팽팽한 지점이고, 이후 젊은 남자의 개입으로 긴장이 급격히 풀리면서 서사가 숨을 고릅니다. 이 흐름이 자연스럽게 이어져 읽는 사람이 실제 상황을 체험하게 만듭니다.

마지막 부분은 이 글의 핵심 의미를 형성합니다. 단순한 귀성길의 사건이 아니라, 남편의 부재 이후에도 지속되는 기억의 구조로 전환됩니다. “그가 남긴 겨울의 기억이라는 문장이 전체 글을 현재로 끌어오면서, 회상이 아니라 현재진행형 감정으로 바뀝니다. 이 지점이 글의 가장 강한 정서적 결절점입니다.

다만 한 가지는 의도적으로 생각해볼 만합니다. 후반부의 감정이 매우 정제되어 있어서 오히려 독자 입장에서는 “슬픔의 밀도”가 더 커질 수 있는데, 그에 비해 남편의 죽음이나 상실의 맥락이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부분은 짧습니다. 이 선택은 절제된 미학으로 볼 수도 있지만, 어떤 독자에게는 감정의 원인과 결과 사이가 약간 압축되어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지금 형태는 ‘설명’이 아니라 ‘잔상’ 중심이라서, 문학적으로는 충분히 설득력이 있지만 감정의 배경을 더 강화하고 싶다면 중간에 아주 작은 단서 몇 개(예: 그 이후의 시간 변화나 일상의 공백)를 추가하는 방식도 가능합니다.

문장 운용은 전반적으로 안정적이고, 특히 반복되는 “그날” 구조가 기억의 회로처럼 작동해서 글 전체를 하나의 흐름으로 묶어줍니다. 마지막 문단의 “사철나무 위에 내려앉은 눈꽃” 비유는 결말 이미지로 적절하고, 과하지 않으면서도 잔향을 남깁니다.

정리하면 이 글의 핵심 강점은

구체적 생활 디테일의 현실감

위기에서 구조로 이어지는 서사 리듬

현재와 과거를 겹쳐 놓는 기억의 구성

그리고 이로 인해 만들어지는 효과는 “사건의 기록”이 아니라 “기억이 감정을 재구성하는 방식” 자체를 보여주는 데 있습니다.

 

 

 

 

그 겨울의 폭설

 

창밖으로 흰 눈이 조용히 내리고 있다.

온 세상이 순식간에 하얗게 지워진 듯 고요하다. 문득 오래전, 폭설 속에서 가슴 졸이며 보냈던 어느 겨울날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떠오른다. 그날의 기억을 따라, 나는 다시 천천히 그 길을 걸어본다.

 

그날은 설날 다음 날이었다. 오후부터 하늘은 잿빛으로 낮게 내려앉았고, 곧 눈이 올 것 같은 기운이 감돌았다. 아니나 다를까, 해가 기울 무렵부터 눈발이 흩날리기 시작했다. 대구로 돌아갈 채비로 집안은 분주했다. 설날에 차려 두었던 음식—전과 나물, 조기구이, 탕국, 감주—를 위생용기에 담으며 짐을 꾸렸다. 남편은 하루 이틀 뒤 다시 시골로 올 텐데 짐을 줄이라며 서두르게 했다.

 

세 식구가 1톤 트럭에 올랐다. 집 앞 사거리는 이미 귀성 차량으로 가득 막혀 있었다. 한참이 지나서야 겨우 대구 방향으로 길이 트였다. 그때 어디선가 앰뷸런스의 사이렌이 울리며 지나갔고, 곧이어 경찰 기동대 차량과 레커차가 뒤따랐다. 가까운 곳에 사고가 난 듯했다. 도로는 사실상 마비 상태였다.

 

그 와중에 뻥튀기 장수가 차량 사이를 오가며 과자를 팔고 있었다. 우리도 무심코 한 봉지를 샀다. 입이 심심한 긴 정체 속에서 그것은 작은 위안이 되었다. 청로에 이르자 마을 사람들은 길게 늘어선 차 행렬을 구경하느라 목을 길게 빼고 있었다. 그 틈에서 뜻밖에도 먼 친척 아주머니를 만나 서로 손을 흔들며 반가운 인사를 나누었다.

 

그러나 청로 고갯마루에 이르렀을 때 상황은 심각해졌다. 차가 오히려 뒤로 밀리기 시작한 것이다. 스노체인도 없이 올라온 길은 이미 얼어붙어 있었다. 뒤차들의 경적이 이어지고, 남편은 브레이크에 의지한 채 차를 붙잡고 있었다. 반대편 버스 기사까지 조언을 건넸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결국 우리는 더 이상 오를 수 없음을 인정해야 했다.

 

후진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남편은 고개를 돌린 채 조심스럽게 차를 움직였고, 나는 창밖을 보며 길을 살폈다. 미안한 마음에 손을 들어 뒤차들에게 연신 양해를 구했다. 그러나 점점 더 많은 차량이 멈춰 서더니, 몇몇 사람들이 차에서 내려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중 한 사람이 다가와 날카로운 목소리로 물었다.

 

“언제까지 이렇게 갈 겁니까?”

 

남편이 연신 죄송하다고 말하자, 불만 섞인 말들이 이어졌다. 다행히 한 어르신이 나서서 갑작스러운 폭설임을 감안하자며 상황을 중재해 주었다. 사람들은 다시 차로 돌아갔지만, 그 순간의 긴장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눈은 점점 거세졌다. 바람은 날카롭게 휘몰아쳤고, 세상은 마치 시베리아 벌판처럼 변해 있었다. 옆 차선의 사람들은 우리를 안쓰럽게 바라보았다. 딸아이는 앞유리를 닦으며 작은 손을 분주히 움직였다. 남편은 시야조차 흐린 가운데서도 끝까지 차를 움직이려 애쓰고 있었다.

 

그때였다. 호루라기 소리가 울리며 젊은 남자가 다가왔다. 그는 차들 사이의 간격을 정리하더니, 우리 차에 올라탔다. 그리고 직접 방향을 잡아 길을 틀어주었다. 그의 도움으로 우리는 다시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그는 손을 들어 환하게 인사한 뒤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그 짧은 도움 하나가 얼마나 큰 안도였는지 모른다. 우리는 겨우 청로 다리를 지나 가음과 춘산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리고 마침내, 멀리 빨간 벽돌의 집이 눈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그 순간의 반가움과 안도는 오래도록 잊히지 않는다.

 

집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해가 저물고 있었다. 출발한 지 세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가까운 거리였지만, 그날 우리는 자연 앞에서 얼마나 무력한 존재인지 절감했다. 동시에 낯선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의 온정이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도 깨달았다.

 

그날 밤, 딸아이는 개근상을 받지 못할지도 모른다며 속상해했다. 그러나 다음 날, 폭설로 인해 학교도 정상 운영이 어렵다는 소식을 듣고는 금세 웃음을 되찾았다. 눈 속에서 아이는 아버지와 함께 눈사람을 만들며 마음껏 뛰놀았다. 그 모습을 보며 남편은 연신 사진을 찍었다.

 

그로부터 많은 세월이 흘렀다. 딸아이의 아버지는 이제 이 세상에 없다. 하지만 그가 남긴 겨울의 기억은 여전히 내 마음 속에 선명하다. 그날의 눈, 그날의 길, 그리고 서로를 향한 작은 손길들까지도.

 

지금도 창밖에는 눈이 내리고 있다. 흰 눈은 모든 것을 덮어 조용히 정리해 주는 듯하다. 과거의 기억은 때로 현재를 더 따뜻하게 만든다. 사철나무 위에 내려앉은 눈꽃처럼, 그 겨울의 추억은 여전히 마음 한켠을 조용히 밝혀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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