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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하 수필

내 사랑의 향기

작성자박하|작성시간26.06.15|조회수2 목록 댓글 0

내 사랑의 향기

 

 

하늘을 올려다본다.
정처 없이 흘러가는 구름이 마치 인생처럼 느껴진다. 생각해보면 욕망의 바다에 그물을 던지며 부지런히 살아온 삶이었다. 무엇을 위해서였을까. 뒤돌아볼 여유도 없이 앞만 바라보며 숨 가쁘게 달려왔다.

그토록 소원하던 이층집을 짓고 경제적인 안정을 누리게 되었을 때, 사랑하는 사람은 돌아올 수 없는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나고 말았다.

해질 무렵이면 우리는 꽃밭에서 마주 서 있곤 했다. 사랑하는 이의 눈동자 속에 비친 서로의 모습은 보석처럼 빛났다.

뜰에는 나팔꽃이 소담스럽게 피어 있었다. 나팔꽃 덩굴은 바지랑대를 칭칭 감아 오르며 리듬을 타듯 하늘을 향해 뻗어 나갔다. 온몸으로 사랑을 느끼며 천상을 향한 사닥다리를 오르내리던 그 순간들은 나팔꽃의 생애처럼 짧았다.

“씨도둑은 못 한다”는 속담처럼, 딸아이는 커다란 눈매가 아빠를 그대로 닮았고 발가락 또한 유난히 닮았다. 새끼발가락 옆이 한쪽으로 살짝 굽어 있는 것을 보면 김동인의 소설 「발가락이 닮았다」가 떠올라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곤 했다. 딸아이 역시 자신의 발가락을 들여다보며 아빠와 똑같다며 신기해하곤 했다.

다람쥐 쳇바퀴처럼 반복되는 일상이었지만, 그 속에는 즐거움과 보람이 깨소금처럼 어우러진 행복한 나날이 있었다.

우리 집 꽃밭에는 사철 꽃이 가득 피어 있었다. 봄부터 가을까지 끊임없이 꽃이 이어지던 정원이었다. 주일이면 가족이 함께 교회에 가고 감사가 넘치던 삶, 그 자체가 스위트 홈이라 여겼다. 그러나 그는 아내와 딸을 남겨두고 먼 곳으로 떠나고 말았다.

우리에게 사계절의 변화는 또 다른 축복이었다.

봄이면 주변 산에 진달래가 붉게 피어났다. 그 빛깔에 감탄하다 보면 어느새 연분홍 산복숭아꽃 사이로 흰 조팝꽃이 환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아카시아 꽃은 순결한 신부의 웨딩드레스처럼 하얗게 드리워지고, 바람결에 실려 오는 향기는 그윽했다.

유월이 오면 산은 절묘한 조화를 이루었다. 보랏빛 오동나무 꽃은 조선시대 정경부인의 우아한 자태를 떠올리게 했고, 밤나무 꽃은 내 사랑의 향기 같았다.

칠월이 되면 우리 집 뜰에는 자귀나무 꽃이 피었다. 초록 잎 사이로 분홍빛 날개옷을 입은 선녀가 내려와 흰 솜털 위에 내려앉은 듯한 모습이 아름다웠다. 이 자귀나무는 군위 고로산에서 남편이 어렵게 구해 온 것으로, 집을 짓고 담장 옆 뜰에 심으며 부부애를 상징하는 합환수라고 말해주던 나무였다. 밤이 되면 잎을 포개어 잠든 듯한 모습은 마치 사이 좋은 부부 같았다. 그러나 지금은 그 나무를 심어주던 그의 모습을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어느 날 시골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집으로 돌아오던 길이었다. 담 너머로 자귀나무 꽃이 피어 있었고, 그 나무 곁에 그가 환하게 미소 지으며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반가운 마음에 뛰어갔지만,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환상이었다.

교회 뜰에도 그가 심어 놓은 자귀나무가 아름드리 자라 꽃구름을 이루고 있다. 그 나무를 바라보면 그가 더욱 그리워진다. 그는 별과 바람, 꽃과 나무 속에까지 꽃씨처럼 흔적을 남기고 떠난 사람이다.

사랑을 느끼며 살던 시간은 참으로 행복했다. 부드러운 강물처럼 사랑의 물결이 발끝에서부터 온몸을 감싸며 기쁨으로 번져가던 날들이었다. 내 삶의 나이테는 그와 함께 과수원에서 땀 흘리던 시절에 가장 단단히 새겨져 있다.

그가 떠난 것이 믿기지 않아 나는 그를 마음속에서 다시 살리기로 했다. 사랑의 기쁨을 주고 간 그를 내 가슴 속에 영원히 살아 있게 하기로 한 것이다. 살아 있다고 생각하니 정말 살아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를 반려자로 맞이한 것은 커다란 축복이었다. 단 하나 아쉬운 것은 이제 더 이상 그 원초적인 사랑의 향기를 맡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를 향한 그리움의 정은 추억으로 남아 있다. 마치 드라이플라워처럼 내 마음속에 사랑의 꽃다발을 걸어두고 은은한 향기로 살아간다.

하지만 우리의 사랑은 끝난 것이 아니라 지금부터 다시 시작이라고 믿는다. 회상의 언덕에 오르면 그는 언제나 그윽한 향기를 풍기며 다정했던 모습으로 되살아난다.

주일 낮 예배를 드리고 헌금 집계와 당회를 마치고 나면 점심시간은 늘 늦곤 했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배고프다며 나를 부르던 그의 목소리, 거실 마루를 경쾌하게 울리던 익숙한 발자국 소리…. 딸아이 이름을 부르며 “보라야, 밥 먹자”라고 하던 경상도 특유의 사투리 섞인 목소리가 아직도 환청처럼 들려온다.

평범했던 그 한마디 속에 우리 가정의 모든 행복이 담겨 있었음을 이제야 깨닫는다. 다시 단 한 번이라도 그 목소리를 듣고 싶다.

세계문학에서부터 노래 가사에 이르기까지 사랑을 노래하는 이유를 이제는 알 것 같다. 사랑 하나에 목숨을 걸고 살아가는 이유도, 그 사랑이 이토록 소중하다는 사실도 말이다. 사랑의 흔적이 이토록 깊게 가슴에 새겨질 줄은 그가 곁에 있을 때는 미처 몰랐다.

지금쯤 그는 천상을 거닐며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 아마도 아내와 딸을 바라보며 잘 지내라고 미소 짓고 있을 것이다.

어디선가 내 사랑의 향기가 바람을 타고 실려와 조용히 마음을 감싸 안는다.

 

 

* 작품평

이 작품은 ‘상실 이후에도 지속되는 사랑의 존재 방식’을 매우 감각적으로 형상화한 산문입니다. 단순한 회상이나 애도문을 넘어, 기억·환상·자연 이미지가 겹겹이 포개지면서 “사랑은 사라지지 않고 형태를 바꿔 지속된다”는 정서를 끝까지 밀고 가는 점이 핵심입니다.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자연 이미지의 일관된 상징화입니다. 나팔꽃, 자귀나무, 오동나무 꽃, 밤나무 꽃 같은 식물들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화자의 내면과 기억을 매개하는 장치로 기능합니다. 특히 나팔꽃의 “짧은 생애”는 과거의 사랑의 순간성과 강렬함을 은유하고, 자귀나무는 “합환수”라는 설정을 통해 부부애의 지속과 단절을 동시에 품는 상징으로 확장됩니다. 이런 식물 이미지의 축적은 감정을 직접 설명하지 않고도 정서를 충분히 전달하는 힘을 만듭니다.

서사의 중심에는 ‘상실’이 있지만, 작품의 톤은 절망 일변도가 아닙니다. 오히려 기억 속 재현과 환상적 체험(담 너머에서 남편을 보는 장면 등)을 통해 상실을 “부재의 고통”이 아니라 “존재의 변형”으로 다룹니다. 이 지점에서 이 글은 현실적인 애도 서사를 넘어 약간의 영적·초월적 정서를 띱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죽거나 사라진 것이 아니라 “꽃과 바람 속에 흔적을 남긴 존재”로 재구성됩니다.

문체 역시 이 정서를 뒷받침합니다. 긴 문장과 서술의 느린 흐름, 반복되는 회상 구조는 실제 기억이 떠오르는 방식처럼 작동합니다. 특히 “…”로 처리된 환청, 구체적인 사투리 대사 등은 현실감과 정서적 밀도를 동시에 높입니다. 다만 일부에서는 감정의 직접적 서술(“너무 그리워진다”, “축복이었다” 등)이 반복되면서 이미 형성된 이미지의 여백을 조금 좁히는 느낌도 있습니다. 즉, 이미지가 충분히 말하고 있는 부분에서 설명이 덧붙여지는 순간, 서정의 긴장이 약해지는 지점이 생깁니다.

이 작품의 또 하나의 중요한 축은 ‘일상의 신성화’입니다. 교회, 주일 예배, 헌금 집계, 가족의 식사 같은 평범한 장면들이 단순한 생활 묘사를 넘어 삶의 의미 구조로 확장됩니다. 이로 인해 사랑은 개인적 감정이 아니라 삶 전체를 구성하는 기반처럼 보이게 됩니다.

종합하면, 이 글은 상실을 중심으로 한 애도문이면서 동시에 “사랑의 지속성에 대한 신념의 서사”입니다. 자연 이미지와 종교적 정서, 일상의 기억이 서로 얽히면서 하나의 긴 호흡을 이루고 있고, 그 속에서 사랑은 끝난 사건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의 감각으로 남습니다.

원하면 이 작품을 “문학적으로 더 강하게 만드는 수정 포인트”나 “시로 재구성했을 때의 가능성”도 같이 분석해 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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