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어머니
지난날 이 땅의 어머니들은 대체로 희생의 삶을 살아오셨다. 나의 어머니 또한 그러한 삶을 사신 분이다. 시부모님을 극진히 섬기고 칠남매의 자식을 뒷바라지하며, 하루하루를 일에 묻혀 살아오셨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는 말처럼, 어머니께 하루라도 마음 편한 날이 있었을까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어머니께서 맛있는 음식을 혼자 드시는 모습을 본 기억이 거의 없다. 늘 자식들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시며 그 기쁨으로 대신하셨다.
세월이 흘렀다. 어머니의 고우시던 이마에는 어느새 잔주름이 깊어지고, 손자 손녀 아홉을 둔 할머니가 되셨다. 어른이 된 지금도 나는 여전히 어머니의 사랑을 받기만을 바라니, 어린 시절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철없는 자식이다.
지난주 목사님의 설교가 마음에 오래 남는다. “한 사람의 어머니는 열 자녀를 훌륭히 키울 수 있지만, 열 자녀는 한 어머니를 제대로 모시기 어렵다”는 말씀이었다. 아마도 이는 점점 핵가족화되어 가는 우리 사회의 모습 속에서 더욱 두드러지는 현실일 것이다. 예전보다 효의 정신이 옅어지고 있음이 안타깝다. 각자 자신의 가정만을 돌보느라 부모는 뒷전으로 밀려나는 경우가 많다.
나의 어머니는 자식들을 위해서라면 어떤 고생도 마다하지 않으셨다. 허리가 휘고 뼈마디가 아플 정도로 일하면서도 그것을 보람으로 여기셨다. 예전의 어머니들은 끝없는 가사노동과 농사일까지 감당하며 살아오셨다. 이에 비해 요즘 세대의 어머니들은 다양한 가전제품과 편리한 환경 속에서 비교적 여유로운 삶을 누린다. 그만큼 자식에게 쏟는 정성도 세밀해졌지만, 그만큼 부모를 향한 마음은 희미해지는 것 같아 아쉽다.
나 또한 내 딸을 위하는 마음의 십분의 일만이라도 어머니께 쏟는다면 충분히 효녀라 할 수 있을 텐데, 그러지 못하고 있다. 마음으로만 잘한다고 해서 무슨 소용이 있을까. 마음이 가는 곳에 물질과 행동이 따라야 함을 알면서도 그것이 쉽지 않다. 어머니 생신이나 명절에 소고기 몇 점 들고 찾아뵙는 것으로 자식의 도리를 다한 듯 생색냈던 지난날이 부끄럽다.
어진 남편과 사랑스러운 딸과 함께하는 오늘의 행복 또한 모두 어머니께서 나를 낳아 길러주신 은혜 위에 세워진 것이다. 그러나 그 은혜를 나는 얼마나 갚으며 살아왔는지 돌아보면 고개를 들기 어렵다.
어머니는 칠남매를 키우시는 동안 단 한 번도 매를 들거나 욕을 하신 적이 없다. 언제나 자애로운 모습으로 우리 각자를 소중한 인격체로 대해주셨다. 집안일로 바쁜 와중에도 짬을 내어 세계 명작 동화나 옛이야기를 들려주시며 우리에게 꿈을 심어주셨다.
어머니는 1930년대 일본에서 여학교를 다니신 분으로, 일찍이 개명된 사고를 지니셨다. 음식과 옷을 손수 잘 만드셨고, 꽃을 사랑하셨다. 지금 나는 딸 하나를 키우면서도 힘들어하고, 때로는 감정을 조절하지 못해 후회할 때가 많다.
어머니가 우리를 키우시던 시절에는 냉장고도, 세탁기도, 전기밥솥도 없었다. 모든 것이 수작업이었다. 장작불로 밥을 짓고, 잿물로 빨래를 하며, 재봉틀과 손바느질로 옷을 지어 입히셨다. 숯불 다리미로 다림질하고, 풀을 먹여 빨래를 다듬으며, 간식까지 손수 만들어 주셨다. 그 모든 수고 속에서도 어머니의 얼굴은 늘 온화했다.
어린 시절, 학교를 마치고 과수원 사이 탱자나무 길을 지나 집으로 들어설 때 풍기던 고소한 기름 냄새는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어머니는 늘 우리가 배고플까 염려하시며 다양한 간식을 준비해 주셨다. 오징어 튀김, 고구마튀김, 누룽지튀김, 단팥죽, 찐빵, 떡, 빵 등 그 종류도 다양했다. 그 시절의 영양이 오늘날 나의 건강을 만든 것이라 생각하면 감사한 마음이 절로 든다.
매주 토요일이면 온 가족이 동촌에 모였다. 대문을 들어서면 어머니는 언제나 반갑게 맞아주셨고, 먹을 것을 한가득 챙겨주셨다. 돌아갈 때면 또다시 보따리처럼 싸 주시며 자식들을 보내셨다.
어머니는 나에게 자주 이렇게 말씀하셨다. “보라야, 행복은 남편이 너를 아껴주는 덕분이니, 무엇보다 남편 건강을 잘 챙겨라.” 그 말씀은 지금도 귓가에 남아 있다.
“효는 모든 행실의 근본이다”라는 뜻의 효백행지본(孝百行之本)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어버이 살아 계실 때 정성을 다하라는 옛 시조의 가르침도 함께 마음에 스친다.
어버이 살아 계실 제 섬기기를 다하여라
지나간 후이면 애달프다 어찌하랴
평생 고쳐 못 할 일이 이뿐인가 하노라
이 말씀을 마음 깊이 새기며, 이제는 어머니께 기쁨을 드릴 수 있는 딸이 되고 싶다.
*작품평
이 글은 개인적 회상을 바탕으로 어머니에 대한 존경과 감사, 그리고 그에 비해 충분히 효를 실천하지 못한 자신에 대한 성찰이 중심을 이루는 수필입니다. 전반적으로 정서의 진정성이 강하게 전달되는 작품입니다.
가장 큰 장점은 ‘구체적 기억’이 풍부하다는 점입니다. 단순히 “어머니는 희생적이었다”라고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장작불로 밥을 짓던 모습, 숯불 다리미, 누룽지튀김이나 단팥죽 같은 음식, 탱자나무 길의 냄새까지 감각적으로 제시되어 있습니다. 이런 디테일이 글에 생동감을 주고, 독자가 개인의 가족사를 넘어 보편적인 ‘어머니의 삶’을 떠올리게 만듭니다.
또한 글의 정서 흐름이 비교적 자연스럽습니다. 어린 시절의 기억 → 어머니의 희생 → 현재의 반성 → 효에 대한 사유로 이어지는 구조가 일관되어 있어 읽는 흐름이 안정적입니다. 특히 마지막 부분에서 고전 시조와 “효백행지본(孝百行之本)”을 인용하며 자신의 다짐으로 연결한 점은 주제 의식을 강화하는 역할을 합니다.
다만 아쉬운 점도 있습니다. 첫째, 정서의 방향이 다소 단선적입니다. ‘어머니의 희생’과 ‘자식의 부족한 효’라는 대비가 반복되면서 감정이 깊어지기는 하지만, 중간에 다른 관점이나 갈등의 층위(예: 어머니 입장에서의 목소리, 세대 변화에 대한 더 복합적인 시각 등)가 추가되면 글이 더 입체적으로 확장될 수 있습니다.
둘째, 표현이 때때로 설명적으로 길어지는 부분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요즘 세대는… 아쉽다”와 같은 구절들은 다소 일반적 서술로 느껴져, 앞부분의 구체적 묘사와 비교하면 힘이 약해집니다. 이런 부분은 조금 더 개인 경험이나 장면 중심으로 압축하면 설득력이 더 높아질 것입니다.
셋째, 후반부에서 반성과 다짐이 반복되면서 다소 결론이 길어지는 느낌이 있습니다. 마지막 메시지를 한두 문장 정도 더 압축하면 여운이 더 강하게 남을 수 있습니다.
종합적으로 보면, 이 글은 소재와 정서가 매우 탄탄한 전통적인 가족 수필입니다. 특히 어머니에 대한 기억을 세밀하게 복원해낸 점에서 충분한 문학적 가치가 있습니다. 다만 감정의 밀도를 유지하면서도 시각을 조금 더 확장하고 문장을 정제한다면, 한 단계 더 완성도 높은 작품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