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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하 수필

육이오의 기억

작성자박하|작성시간26.06.23|조회수0 목록 댓글 0

육이오의 기억

2025년 6월 23일 화요일.

수필

 

1950년 6월, 전쟁이라는 단어가 무엇을 뜻하는지도 모르던 네 살 아이에게 세상은 갑자기 떠나야 하는 곳이 되었다.

6·25가 터지고 며칠 뒤였다. 마을 소방서 지붕 위에 달린 나팔꽃 모양의 경보기에서 평소와 다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동촌 면민 여러분, 빨리 피난하십시오.”

확성기 소리는 여름 하늘을 가르며 온 동네를 흔들었다. 어른들의 얼굴에는 순식간에 그늘이 드리웠고, 집집마다 분주한 발걸음이 이어졌다. 우리 집도 예외가 아니었다. 급히 보퉁이를 꾸리고 떠날 채비를 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끝까지 집을 지키겠다며 버티셨다. 평생 일궈온 삶의 터전을 두고 떠난다는 것이 얼마나 막막했을까. 하지만 삼촌과 숙모는 여기 남아 있으면 포탄에 맞을 수도 있다며 두 분의 등을 떠밀었다. 결국 모두가 울먹이는 마음으로 집을 나섰다.

마당 한편에는 쌀과 보리쌀이 담긴 자루가 있었고, 미숫가루와 간장, 된장, 고추장이 담긴 항아리들이 옹기종기 놓여 있었다. 엄마는 머리에 커다란 보따리를 이고, 갓난아기 남동생을 등에 업었다. 네 살이던 나는 엄마 치맛자락에 바짝 붙어 걸었고, 언니들은 손을 맞잡고 뒤를 따랐다.

 

과수원집을 떠나는 순간, 아직도 잊히지 않는 풍경이 있다.

마당을 맴돌던 개와 닭들이 우리를 바라보며 울고 있었다. 어린 마음에도 그 울음이 꼭 “나도 데려가 달라”고 말하는 것처럼 들렸다. 그 슬픈 눈빛은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내 기억 한구석에 남아 있다.

아버지는 이미 후생원 아이들을 트럭에 태워 피난길에 오른 뒤였다. 우리는 뒤늦게 기차에 몸을 실었다. 객차 안은 사람과 짐보따리로 가득 차 있었다. 땀 냄새와 불안한 숨결이 뒤엉켜 숨쉬기조차 어려웠다.

겨우 구석 한자리를 얻어 앉았지만 어린 우리 형제들은 사람들 틈에 눌려 지쳐갔다. 그때 엄마가 품속에서 꺼내 건네준 것이 있었다.

“배 고프제?”

엄마 손에는 커다란 주먹밥 세 개가 들려 있었다. 아버지 주먹만큼 단단하게 뭉친 밥덩이와 마른 명태포 한 조각.

우리는 그것을 조금씩 베어 먹었다.

짭조름한 생선 맛. 씹을수록 은은하게 퍼지던 밥알의 단맛.

그날의 허기 앞에서는 세상 어떤 진수성찬도 그 주먹밥보다 맛있을 수 없었다. 지금도 그 맛을 떠올리면 혀끝이 아니라 가슴이 먼저 기억한다.

 

돌이켜보면 그때 전쟁은 우리에게 현실이라기보다 먼 소문 같은 것이었다. 총성과 포탄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어른들이 가라는 곳으로 따라가는 긴 여행이었다.

해 질 무렵, 우리는 월래의 바닷가에 도착했다.

 

폭격을 맞아 지붕 한가운데가 뻥 뚫린 초가집. 바람이 주인처럼 드나드는 그 집이 우리의 피난처가 되었다. 가진 것 하나 없이 시작한 삶이었지만, 그래도 살아 있다는 사실만으로 감사해야 했던 시절이었다.

아침이 되면 언니들은 천막학교로 갔다. 홀로 남은 나는 바닷가에 쪼그리고 앉아 소꿉놀이를 했다. 조개껍데기에 모래를 담아 밥을 짓고, 바닷물에 씻은 지렁이를 반찬 삼아 밥상을 차렸다.

아이의 놀이는 가난도 전쟁도 모른 채 계속되었다.

그러던 어느 흐린 날이었다.

먹구름이 바다 위로 밀려오고 있었다. 문득 하늘을 올려다보는데, 아기 갈매기 한 마리가 바다를 향해 울며 날아가고 있었다. 어미를 찾는 울음소리는 바람을 타고 멀리 퍼졌다.

그 순간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그동안 아무렇지 않던 마음속에서 갑자기 그리움이 밀려왔다. 갈매기가 어미를 찾듯, 어린 나도 엄마가 보고 싶어졌다.

“엄마! 엄마!”

나는 울먹이며 바닷가를 뛰어갔다.

모래밭에 찍히는 작은 발자국 소리보다 더 빠르게 엄마가 달려왔다. 그리고 환하게 웃으며 나를 품에 안아 주었다.

 

따뜻한 품. 포근한 체온. 머리카락 사이로 스며들던 엄마 냄새.

그 순간만큼은 전쟁도 없었다. 가난도 없었다. 무너진 집도, 피난살이도 없었다.

세상은 엄마 품 안만큼 크고 안전한 곳이었다.

 

세월이 흘러 전쟁의 참혹함을 알게 되었고, 그 시대를 살아낸 어른들의 눈물도 이해하게 되었다. 그러나 내 기억 속 6·25는 총성과 포연보다 먼저 엄마의 품으로 남아 있다.

사람은 무엇으로 살아가는가.

굶주림 속에서는 주먹밥 한 덩이로,

두려움 속에서는 서로의 손을 잡는 온기로,

그리고 모든 것을 잃은 순간에는 사랑 하나로 살아간다.

전쟁은 많은 것을 빼앗아 갔지만, 그날 엄마가 내게 안겨준 품만은 빼앗아 가지 못했다.

내 어린 시절의 피난길 끝에는 아직도 한 장면이 환하게 남아 있다.

 

먹구름 아래 울던 갈매기 한 마리,

그 갈매기보다 더 간절하게 엄마를 부르던 아이.

엄마는 달려와 나를 안아 주었고,

나는 그 품 안에서

온 세상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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