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 1953년 봄날의 벚꽃
1953년 봄
벚꽃이 만발하던 사월
국민학교에 입학한 여자아이
도시락만 한 흰 무명 손수건을
가슴에 달고
큰언니 손을 꼭 잡고 걸어갔다
학교 운동장 가에
활짝 웃고 있던 벚꽃
아이의 눈은 온통
그 꽃에 머물러
하얀 꽃송이 하나하나를 바라보다
어느새 벚꽃나무와 하나가 되었다
선생님의 “하나, 둘” 구령에
아이들은 “셋, 넷”으로 화답하며
운동장을 돌았지만
여자아이는 오직
벚꽃만 바라보며 걷다가
그만 넘어지고 말았다
무릎에서는 피가 났지만
아이는 그것조차 몰랐다
“선생님예, 쟈 무릎에 피 납니더”
아이들의 놀란 소리가 퍼지고
한복을 입은 여선생님이 다가와
조용히 아이의 무릎에 약을 발라주며 말했다
“곧 나을 테니 걱정 말아라”
부드럽고 따뜻한 목소리
반세기하고도 이십 년의 강물이 흘러도
그날 벚꽃을 바라보던 마음만은
여전히 한결같아
흩날리던 꽃잎처럼
지워지지 않는 봄날 하나
*작품평
이 시 **「1953년 봄날의 벚꽃」**은 어린 시절의 첫 학교 경험과 벚꽃에 대한 순수한 감동을 회상하며,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아름다움과 기억의 힘을 담담하게 그려낸 작품입니다.
작품평
이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은 어린아이의 순수한 시선입니다. 국민학교에 입학한 여자아이가 운동장 가득 핀 벚꽃에 마음을 빼앗기는 장면은 독자에게도 그 설렘과 경이로움을 생생하게 전달합니다. 아이는 선생님의 구령도, 운동장도 잊은 채 오직 벚꽃만 바라보다 넘어지지만, 무릎에서 피가 나는 사실조차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이는 아름다움에 완전히 몰입한 어린 영혼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또한 작품은 1953년이라는 시대적 배경을 짧지만 효과적으로 제시합니다. 전쟁의 상흔이 채 가시지 않았던 시기임에도, 아이의 눈에는 벚꽃이 가장 먼저 들어옵니다. 이는 어려운 시대 속에서도 자연의 아름다움과 생명의 희망이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했음을 암시합니다.
여선생님의 따뜻한 말 한마디 또한 인상적입니다.
"곧 나을 테니 걱정 말아라"라는 짧은 위로는 단순한 응급처치를 넘어, 어린아이의 불안을 감싸 안는 인간적 온기를 전합니다. 벚꽃의 아름다움과 선생님의 다정함이 함께 기억 속에 남아 한 편의 따뜻한 봄 풍경을 완성합니다.
마지막 연은 작품의 정서를 한층 깊게 만듭니다. "반세기하고도 이십 년의 강물이 흘러도"라는 표현을 통해 긴 세월의 흐름을 보여주면서도, 벚꽃을 바라보던 마음만은 변하지 않았음을 고백합니다. 이는 단순한 추억 회상을 넘어 순수했던 어린 시절의 감성과 아름다움을 향한 사랑이 평생 지속될 수 있음을 말해 줍니다.
전체적으로 이 작품은 화려한 수사보다 소박하고 진솔한 서술로 독자의 공감을 이끌어 내며, 벚꽃 한 송이에 담긴 첫 설렘과 그 기억의 영속성을 아름답게 표현한 서정시라 할 수 있습니다. 특히 마지막 구절인 **“흩날리던 꽃잎처럼 지워지지 않는 봄날 하나”**는 작품 전체를 아우르는 여운을 남기며, 누구나 마음속에 간직한 자신의 ‘잊히지 않는 봄날’을 떠올리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