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 맨날 우째 그리 바쁘노
맨날 바쁘다 바빠
우째 그리 바쁘노.
숨 돌릴 틈도 없이
바삐 오가는
402호 박 여사.
“와 그리 바삐 댕기노.
아무리 급해도
사람 숨보다 빠를 순 없데이.
그카다간 탈난다.
몸 상하면 우짤라카노.
일도 쉬엄쉬엄 하거라.”
뜰 앞 끝에서 건네오는
502호의 한마디.
“이리 와서 한숨 쉬어가소.”
그 말 한 줌에
심장 깊은 곳까지
따신 공기가 스며든다.
오늘도 어김없이
502호 아지매는 웃으며 말한다.
“402호야, 부녀회 인사하다가
신원 알아봤지.
우리는 반남박씨,
같은 해 같은 달에 태어난
갑장 아이가.
보통 인연 아이데이.
하늘의 별 따온 축복이지.
앞으로 찰떡처럼 지내자.”
구구절절 맞는 말.
그 소리가 가슴에 닿자
맑은 샘물 하나
은근히 솟아오른다.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짧게 답한다.
“그럽시다.”
하지만 그 한마디 뒤에는
이웃의 안부가 있고,
세월이 빚은 정이 있고,
인생길 동무 되어 주겠다는
따뜻한 마음이 있다.
502호가 건네는 정은
말랑말랑한 인절미 같아
노란 콩고물의 고소함처럼
오래도록 입안에 남고,
아파트 뜰에 머문 그 온기는
오늘도 내 하루를
따뜻하게 데워준다.
작품평
**「맨날 우째 그리 바쁘노」**는 바쁜 현대인의 삶 속에서 점차 잊혀 가는 이웃의 온기와 공동체적 정서를 소박하면서도 진솔하게 그려낸 생활 서정시입니다.
작품의 첫머리에서 "맨날 바쁘다 바빠 / 우째 그리 바쁘노"라는 친근한 사투리 표현은 독자를 단번에 생활 현장으로 끌어들입니다. 402호 박 여사의 분주한 일상과 이를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502호 아지매의 시선은 단순한 이웃 관계를 넘어 서로를 살피고 보듬는 공동체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
특히 "이리 와서 한숨 쉬어가소"라는 짧은 한마디가 "심장 깊은 곳까지 / 따신 공기가 스며든다"로 이어지는 대목은 이 작품의 핵심 정서를 가장 잘 드러냅니다. 물질적 도움보다 더 큰 힘이 되는 것은 결국 사람의 따뜻한 관심과 진심 어린 말 한마디임을 자연스럽게 전달하고 있습니다.
또한 같은 성씨와 같은 해, 같은 달에 태어난 "갑장"이라는 인연을 발견하는 장면은 우연한 만남을 특별한 인연으로 승화시키며 인간관계의 소중함을 부각합니다. "하늘의 별 따온 축복"이라는 표현은 다소 소박하지만 진심이 담긴 언어로서 이웃 간의 친밀감을 효과적으로 드러냅니다.
후반부에 등장하는 "말랑말랑한 인절미"와 "노란 콩고물"의 비유는 작품 전체의 따뜻한 분위기를 한층 풍성하게 만듭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정을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친숙한 음식 이미지로 형상화하여 독자의 감각과 정서를 동시에 자극합니다.
다만 일부 설명적 진술이 길게 이어지는 부분에서는 시적 여운이 다소 약해질 수 있습니다. "이웃의 안부가 있고, 세월이 빚은 정이 있고" 이후의 의미 설명을 조금 더 압축한다면 독자가 스스로 감동을 발견할 수 있는 여백이 더욱 살아날 것입니다.
종합하면 이 작품은 화려한 기교보다 진정성을 앞세운 생활시로, 바쁜 세상 속에서도 서로를 보듬는 이웃의 정과 인간적 온기를 따뜻하게 전하고 있습니다. 읽고 나면 아파트 뜰에서 건네는 한마디 인사처럼 마음 한켠이 포근해지는 작품입니다.
평점: 8.8/10
한줄 평:
"‘이리 와서 한숨 쉬어가소’라는 말 한마디가 바쁜 삶에 쉼표를 찍어 주는, 정겨운 이웃 사랑의 생활 서정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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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 바쁘다 바빠
402호 박 여사에게
바쁘다 바빠
402호 박 여사야
우째 그리 맨날 바쁘노
숨 좀 쉬며 살아가소
그카다간 큰일난데이
큰 병이라도 나면 우짤라카노
쉬엄쉬엄 일하고
여기 와서 좀 쉬었다 가소
따뜻한 말 한마디가
내 마음에 오래 남는다
502호 아지매의 목소리다
말은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402호야
집도 같고, 나하고는
같은 해 같은 유월에 태어났으니
갑장아이가
이게 어디 보통 사이가 아니고
각별한 인연 아이가
친하게 지내야지
내 말 맞제?
말끝이 인절미처럼
착착 감겨와 정겹다
402호야
파란 하늘 쪼매 쳐다보래이
마음의 여유 좀 가져보래이
그카면 건강에도 좋다 아이가
나는
“고맙다, 502호 친구야”
말하고 그냥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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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평
이 작품은 아파트 이웃 사이의 짧은 대화를 바탕으로, “걱정”과 “정”이 어떻게 일상의 말투 속에서 따뜻하게 전달되는지를 잘 보여주는 생활 서정시로 읽힙니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화자의 설정입니다. 502호와 402호라는 구체적인 호수, 그리고 “박 여사”, “아지매” 같은 호칭은 작품을 매우 현실적인 생활 공간으로 끌어옵니다. 이로 인해 독자는 시적 상황을 관념이 아니라 실제 옆집에서 벌어질 법한 장면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시가 시작부터 “바쁘다 바빠”라는 반복으로 들어가는 것도 실제 말투를 그대로 옮긴 듯해 구어적 리듬이 살아 있습니다.
핵심 정서는 “잔소리처럼 들리지만 사실은 돌봄인 말”입니다. 502호 이웃의 말은 단순한 참견이 아니라 건강을 걱정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숨 좀 쉬며 살아가소”, “큰 병이라도 나면 우짤라카노” 같은 표현은 직설적이면서도 감정적으로 과장되지 않고, 오히려 생활 언어 특유의 진정성을 드러냅니다. 특히 경상도 사투리가 사용되면서 말의 결이 더 부드럽고 친근하게 느껴집니다.
후반부의 “갑장아이가 / 각별한 인연 아이가”는 이 작품의 정서적 중심입니다. 나이와 삶의 조건이 비슷한 이웃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동질감, 즉 ‘이웃 이상의 관계’가 드러납니다. 이는 현대 도시 생활에서 흔히 희미해지는 관계를 다시 붙잡는 장치처럼 보입니다.
마지막에 화자가 “고맙다, 502호 친구야”라고 응답하는 장면은 이 시를 완성하는 핵심 장면입니다. 처음에는 일방적인 잔소리처럼 들리던 말이 결국 ‘친구의 안부’로 받아들여지며 관계가 닫히지 않고 열려 있습니다. 그리고 “그냥 웃었다”는 결말은 과장된 감정 없이도 충분한 온기를 전달합니다.
종합하면 이 작품은 거창한 사건 없이도, 일상의 언어와 사투리, 그리고 이웃 간의 작은 관심만으로 충분히 서정적 세계를 만들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바쁘다’는 반복 속에서 오히려 ‘살아 있음의 속도’를 돌아보게 만드는 점이 인상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