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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하 시 작품

132.정월대보름의 흉터

작성자박하|작성시간26.06.06|조회수0 목록 댓글 0

132.정월대보름의 흉터

 

1952년 그해 정월대보름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열세 식구 먹일 오곡찰밥 짓느라

엄마는 서 말 가마솥에 장작불 지피고

불린 찹쌀과 차조, 수수, , 검은콩을

정성껏 안치셨다.

 

시래기며 고사리, 도라지, 취나물 맛보시고

흐뭇한 미소 지으신 할머니

 

여섯 살 나는

세 살 터울 언니들 사이에서

함박웃음 피우며

갓 지은 오곡찰밥이 너무 맛있어

옆집 또래친구 늠이에게도

얼른 한 그릇 갖다 주고 싶었다.

 

마루에서 부엌으로 내려가다가,

짧은 다리 허공을 헛디디고

천길 정지 바닥으로

곤두박질쳐.

아궁이 철문 모서리에

이마 쿵. 박았다

 

엄마, 나 아파 죽겠어

비명을 듣고 달려온 엄마는

괜찮아, 영아야.

병원에 가면 금방 낫는다.”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안심시키며,

어린 딸 들쳐 업고

권의사 병원까지 뛰어간 엄마.

 

이마에는 열두 바늘이 놓였고

엄마는 내 손을 꼭 잡으며

우리 딸, 참 착하다.” 하셨지.

 

세월은 강물처럼 흘러

이제 흉터는

두 눈썹 사이에 옅은 주름.

찰밥을 늠이에게 주고 싶었던

어린 마음의 흔적임을.

 

친구를 향해 달려가던 마음,

엄마의 따뜻한 품,

가마솥에 피어오르던 장작불까지

 

이제 시니어가 되어

그 흉터 보며

정월대보름이 준 훈장이라고 부른다.

 

아직도 마음은 푸르러

바람처럼 가벼운 경쾌한 걸음걸이.

 

*작품평

이 시 **「정월대보름의 흉터」**는 어린 시절의 사고와 그 흔적을 단순한 상처가 아닌 사랑과 성장의 훈장으로 승화시킨 따뜻한 회상시입니다.

작품평

시는 1952년 정월대보름이라는 구체적인 시간적 배경에서 시작하여, 전쟁 직후 어려운 시대 속에서도 가족이 함께 명절을 준비하던 정겨운 풍경을 생생하게 그려냅니다. 오곡찰밥과 나물, 장작불이 피어오르는 가마솥 등의 묘사는 당시 농촌의 생활상과 가족 공동체의 온기를 자연스럽게 불러냅니다.

특히 화자의 시선은 여섯 살 아이의 순수한 마음에 머물러 있습니다. 갓 지은 찰밥을 옆집 친구 늠이에게 나누어 주고 싶어 서두르던 장면은 어린아이의 천진한 우정과 나눔의 마음을 보여주며, 이후 이어지는 낙상 사고는 독자에게 안타까움과 긴장감을 안겨줍니다. "엄마, 나 아파 죽겠어"라는 절규와 병원으로 업고 달려가는 어머니의 모습은 당시의 절박함과 모성애를 진솔하게 전달합니다.

후반부에서는 열두 바늘의 상처가 세월 속에서 "두 눈썹 사이의 옅은 주름"으로 변모합니다. 여기서 흉터는 단순한 육체적 흔적이 아니라, 친구를 향한 따뜻한 마음과 어머니의 사랑, 그리고 가족의 추억을 간직한 상징으로 재해석됩니다. 특히 "정월대보름이 준 훈장"이라는 표현은 아픔마저 삶의 소중한 자산으로 받아들이는 시인의 긍정적 인생관을 잘 드러냅니다.

마지막 연의 "아직도 마음은 푸르러 / 바람처럼 가벼운 경쾌한 걸음걸이"는 세월이 흘러 시니어가 된 지금도 순수한 마음과 삶에 대한 활력을 잃지 않은 화자의 모습을 보여주며 작품을 밝고 희망적으로 마무리합니다.

이 작품의 가장 큰 미덕은 개인적 체험을 통해 가족애, 이웃 사랑, 그리고 삶을 긍정하는 태도를 자연스럽게 이끌어낸 점입니다. 소박한 일상의 기억이 한 편의 따뜻한 인생 이야기로 승화되어 독자에게 잔잔한 감동과 미소를 선사합니다. 특히 흉터를 상처가 아닌 '훈장'으로 바라보는 시선은 삶의 아픔을 아름다운 추억으로 바꾸는 성숙한 지혜를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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