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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하 시 작품

134. 야시홀 연가의 오후

작성자박하|작성시간26.06.07|조회수0 목록 댓글 0

134. 야시홀 연가의 오후

 

 

 

십 년 전 문학회 모임에서

 

마른 나뭇가지에서 떨어지는
작은 잎새 하나……

 

'옛 시인의 노래'를 즐겨 부르시던
노 시인은

 

이제는 그 노래를 부를 기력도 아끼신 채
후배들의 노래를
미소로 듣고만 계신다

 

가을날 문득
그 안부가 궁금해

 

조영자 시인과 함께
노 시인 댁을 찾았다

 

현관 인터폰 너머
반가운 목소리

 

문을 열어주신 노 시인과 따님은


오래 기다린 손님처럼
우리를 맞아주었다

 

가져간 과일로
정성껏 다과상을 차리는 따님

 

싱싱한 딸기를 건네는 손끝마다
기쁨의 결이 번져갔다

 

요즘은 바깥출입은 못 하셔도
건강은 괜찮으십니더.”

 

차분히 전하는 근황에
우리의 웃음도 한결 편안해졌다

 

따님의 청에 못 이겨

 

나는 송민도의 여옥의 노래
마음을 담아 불렀다

 

가수보다 더 낫다는 과찬에
모두 웃음꽃을 피우고

 

방 안에는
오랜 정이 익어갔다

 

노 시인은

 

시집 야시홀 연가의 제목처럼
추억의 바다에 노를 맡긴 채

 

고향 영덕 이야기를 들려주셨고

 

우리는 어느새
그 바다에 함께 젖어들었다

 

창밖으로는
해가 서서히 기울고

 

즐거웠다는 인사와 함께
일어서는 우리를

 

노 시인은 못내 아쉬운 눈빛으로
배웅하셨다

 

다음에 오시면
오늘 그 노래 또 불러 주이소.”

 

따님의 부탁에
기쁜 마음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대구역에서

 

조 시인과 나는

아이들처럼 손을 흔들며

 

모래 주일날 봅시더.”

 

짧은 약속을 남기고 헤어졌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노 시인과 따님의 마음을 닮은
따뜻한 노을 하나가

 

오래도록 따라왔다

 

**이 시의 가장 좋은 부분은 마지막 연입니다. 특히 "노 시인과 따님의 마음을 닮은 / 따뜻한 노을 하나가 / 오래도록 따라왔다"는 마무리가 독자에게 잔잔한 여운을 남깁니다. 시를 공모전이나 동인지에 싣는다면 마지막 3연을 중심으로 조금 더 압축해도 더욱 단단한 작품이 될 수 있습니다.

 

 

**작품평

이 시는 단순한 방문기를 넘어 노 시인과의 만남을 통해 인간적 온기와 문학적 연대의 가치를 담담하게 그려낸 서정시입니다. 특히 과장된 감정 표현 없이 사실적인 장면들을 차곡차곡 쌓아가면서 독자에게 깊은 여운을 남기는 것이 장점입니다.

 

작품의 강점

1. 자연스러운 서사 전개

 

시는 과거 문학회에서의 추억으로 시작하여 노 시인의 집 방문, 대화와 노래, 귀가 장면으로 이어집니다. 마치 한 편의 수필을 읽는 듯한 구성 속에서도 시적 정서가 살아 있습니다.

 

"현관 인터폰 너머

반가운 목소리"

 

와 같은 표현은 방문 전의 설렘과 기대감을 자연스럽게 전달합니다.

 

2. 따뜻한 인간미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정서는 '배려'''입니다.

 

"가져간 과일로

정성껏 다과상을 차리는 따님"

 

"싱싱한 딸기를 건네는 손끝마다

기쁨의 결이 번져갔다"

 

이 대목은 단순한 접대 장면을 넘어 노 시인을 돌보는 따님의 사랑과 손님을 맞는 기쁨을 섬세하게 보여줍니다.

 

3. 노년과 문학에 대한 아름다운 시선

 

첫 연에서 노 시인은 한때 노래를 즐겨 부르던 분으로 등장하지만 지금은

 

"후배들의 노래를

미소로 듣고만 계신다"

 

고 표현됩니다. 노쇠함을 안타까움으로만 그리지 않고, 여전히 따뜻한 미소를 지닌 문학인으로 형상화한 점이 인상적입니다.

 

4. 뛰어난 마무리

 

마지막 연은 작품의 백미라 할 수 있습니다.

 

"노 시인과 따님의 마음을 닮은

따뜻한 노을 하나가

오래도록 따라왔다"

 

실제 풍경인 노을을 만남의 여운과 겹쳐 놓음으로써 시 전체를 따뜻하게 마감합니다. 독자 역시 화자와 함께 집으로 돌아오는 듯한 감정을 느끼게 됩니다.

 

보완하면 좋을 점

1. 제목의 개성 강화

 

노 시인을 뵈러 가다는 내용을 잘 설명하지만 다소 평이한 느낌이 있습니다. 작품의 정서를 살린다면 다음과 같은 변형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따뜻한 노을을 따라

여옥의 노래를 부르던 날

야시홀 연가의 오후

노을이 따라오던 길

2. 일부 서술적 표현의 압축

 

이 시는 이야기성이 강한 장점이 있지만 몇몇 부분은 산문에 가까워 보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건강은 괜찮으십니더"

 

앞뒤 문맥에서 이미 건강 상태를 전하고 있으므로, 시적 함축을 조금 더 부여하면 밀도가 높아질 수 있습니다.

 

3. 노 시인의 내면 묘사 확대

 

현재는 화자의 시선이 중심입니다. 노 시인의 표정이나 눈빛, 잠시 침묵하는 모습 등을 한두 군데 더 구체적으로 포착하면 인물의 존재감이 더욱 살아날 것입니다.

 

종합평

 

이 작품은 문학적 스승에 대한 존경, 노년의 품격, 그리고 사람 사이의 따뜻한 정을 잔잔하게 그려낸 생활 서정시입니다. 특별한 사건 없이도 한 번의 방문이 얼마나 깊은 감동으로 남을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무엇보다 마지막 노을의 이미지는 시 전체를 은은하게 감싸며 독자의 마음에도 오래 머무는 여운을 남깁니다.

 

평점으로 표현한다면 ★★★★☆(4.5/5) 수준의 완성도를 지닌 작품으로, 지역 문예지나 동인지에 발표하기에 충분한 감동과 진정성을 갖춘 작품이라 평가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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