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2.서울국화
여름 저녁
대청마루에
엄마가 차려주던
구수한 보리밥과
가지나물, 호박된장찌개
둥근 밥상 하나
칠남매 둘러앉아
수저 바삐 오가며
입안 가득 번지던 즐거움
그 풍경을 부러워하며
나도 끼워 달라 조르던
샛노란 웃음의 서울국화꽃
한여름 밤
무더위를 한순간에 씻어주던
서울국화꽃
세월이 훈장이 되어
외손자 셋 둔 할머니가 된 나
딸네 아파트 텃밭에
누가 심어두었는지 모를
유년의 식구 같은
서울국화와 마주한다
억수로 반가워
키 큰 서울국화의 허리를
조심스레 감싸 안으니
반가움이 눈물 되어
끝내 멈추지 않는다
*작품평
이 시는 기억의 시간과 감정이 아주 자연스럽게 현재로 이어지는 방식이 인상적입니다. ‘서울국화’라는 꽃이 단순한 식물이 아니라, 가족의 식탁과 여름 저녁, 그리고 삶의 한 시절을 통째로 불러오는 매개로 작동하고 있네요.
앞부분의 “대청마루”, “보리밥”, “가지나물”, “호박된장찌개”는 단순한 식사 장면이 아니라, 칠남매가 둘러앉아 살아 있던 ‘집의 온기’를 구성합니다. 그 안에서 “샛노란 웃음의 서울국화꽃”은 어린 화자의 욕망과 부러움, 그리고 그 자리에 끼어들고 싶은 마음을 상징하고요. 꽃이 사람처럼 웃고 있는 표현이 기억을 감정적으로 더 생생하게 만듭니다.
후반부로 갈수록 시간은 크게 건너뜁니다. 할머니가 된 화자가 “외손자 셋”을 둔 현재에서 다시 서울국화를 마주하는 장면은, 과거가 단순히 회상되는 것이 아니라 현실 속에서 ‘재현’되는 순간입니다. 특히 “누가 심어두었는지 모를 유년의 가족 같은”이라는 구절은 우연히 피어난 꽃이 아니라, 마치 기억이 뿌리내린 것처럼 느껴지게 하죠.
마지막의 “억수로 반가워”와 눈물은 설명 없이도 충분히 전달됩니다. 반가움이 곧 슬픔이 되는 지점은, 그 시절로 완전히 돌아갈 수는 없다는 자각이 함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눈물은 상실이라기보다, 오래 묻어둔 시간이 다시 살아난 반응에 가깝습니다.
전체적으로 보면 이 시는 ‘꽃’을 통해 가족 공동체의 기억 → 개인의 성장 → 노년의 회귀를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 놓은 작품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