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4.유월에 익어가는 복분자딸기
경산 어느 야트막한 야산
오백여 평 남짓한 숨결 위에
복분자딸기 밭을 일구는 친구가 있다
유월이 오면
딸기들은 별처럼 낮게 맺히고
햇살보다 먼저 익은 마음들이
잎사귀 사이로 흔들리는 조용함
주인의 숨결이 스며든 손끝이
하나하나를 더듬어 따내면
그것들은 위생용기 속에서도
아직 풀잎의 따뜻한 온기
땀으로 건져 올린 여름 한 통
세라믹 찬통을 건네받는 순간
내 손바닥에는 과일보다 먼저
수고의 무게가 닿는 묵직함
그 안에는 단지 열매만이 아니라
말하지 않은 시간과
흙을 믿어온 마음이 함께 담겨 있다
고마운 마음으로 밥상을 차려 내면
밥 한 그릇이 말없이 속도를 잃고
금세 바닥을 드러내는 고마움
네 살 외손자는
복분자딸기를 입에 넣고
세상의 단맛을 처음 배우듯
“맛있다”는 말을 별처럼 반짝 떨어뜨린다
앵두빛 입술을 벌려
복스럽게도 잘 받아먹는 그 얼굴 위로
여름의 빛이 한 겹 더 얇게 포개지는
나는 그 모습을 오래 바라보다가
외손자와 복분자딸기가
하나의 풍경이 되는 순간을 보며
맛을 보지 않아도
이미 배는 가득히 찬다.
이 작품은 ‘복분자딸기 수확’이라는 아주 구체적인 생활 장면을 통해, 노동·시간·관계·세대의 감각을 자연스럽게 엮어낸 서정시로 읽힙니다. 전반적으로는 “과일의 맛”보다 “그 과일이 만들어지기까지의 시간과 마음”을 더 중심에 놓고 있다는 점이 핵심입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이미지의 촉감이 매우 살아 있다는 점입니다.
“별처럼 낮게 맺히고”, “햇살보다 먼저 익은 마음”, “풀잎의 따뜻한 온기” 같은 표현들은 단순한 관찰이 아니라, 자연을 감정의 언어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특히 복분자딸기를 ‘열매’가 아니라 ‘마음이 익는 것’처럼 다루는 방식이 인상적입니다. 이로 인해 자연 풍경이 곧 정서의 풍경으로 겹쳐집니다.
중심 정서는 ‘노동의 무게’와 ‘정서적 감사’입니다.
“세라믹 찬통을 건네받는 순간 / 내 손바닥에는 과일보다 먼저 / 수고의 무게가 닿는 묵직함” 이 부분은 단순한 수확의 묘사가 아니라, 노동이 타인에게 전달되는 방식—즉 ‘사람의 시간’이 물질로 전이되는 순간을 잘 포착하고 있습니다. 복분자딸기는 결과물이지만, 실제로 강조되는 것은 그것을 길러낸 과정입니다.
후반부로 갈수록 시는 개인 경험에서 관계와 세대로 확장됩니다.
외손자의 등장 이후, 시의 중심은 “수확한 과일”에서 “그 과일을 받아 먹는 아이의 표정”으로 이동합니다. “맛있다”라는 말이 “별처럼 반짝 떨어진다”는 비유는 다소 낯설지만, 아이의 순수한 반응을 ‘언어 이전의 감각’으로 포착하려는 의도가 읽힙니다.
마지막 연은 이 시의 정서를 압축하는 핵심입니다.
“맛을 보지 않아도 / 이미 배는 가득히 찬다”는 구절은 물리적 충족이 아니라 정서적 충만을 말하며, 이 시 전체가 지향하는 결론입니다. 결국 이 작품에서 중요한 것은 복분자딸기의 맛이 아니라, 그것이 만들어내는 관계의 온도입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을 꼽자면, 이미지가 매우 풍부한 대신 몇몇 비유는 다소 밀도가 높아 독자가 감각을 따라가기 전에 의미가 앞서 느껴질 수 있는 부분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햇살보다 먼저 익은 마음”, “말없이 속도를 잃고” 같은 표현은 아름답지만 약간 추상적이라 장면의 구체성이 잠시 흐려지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전체적으로 보면, 이 작품은 “농촌의 노동”을 미화하는 것이 아니라 “그 노동을 둘러싼 인간의 온기”를 섬세하게 기록한 시입니다. 복분자딸기는 결국 소재이자 매개이고, 진짜 중심은 그것을 나누는 사람들 사이의 시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