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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하 시 작품

164. 봄날의 학예회

작성자박하|작성시간26.06.09|조회수2 목록 댓글 0

164. 봄날의 학예회

부제: 1956년 학예회에서

 

 

 

진달래 피던 봄날

 

납작한 얼굴의 여자아이
목소리가 크고 맑다는 이유로

 

앞니가 고운 이필득 선생님이
독창을 시켜 주었다

 

눈 녹은 산마루마다
분홍빛 소식 번져 가던 때

 

“진달래 피었구나, 눈 녹은 산에…”

 

그 한 소절은
입보다 먼저 어린 가슴에서 피어났다

 

겨우내 웅크렸던 시간들이
작은 몸속에 켜켜이 쌓여 있다가

 

노래가 시작되자

 

교실 두 칸을 터 만든 강당 가득
봄물처럼 흘러나갔다

 

우레 같은 박수

 

그 순간!

 

여자아이의 마음은
꽃잎보다 가벼워져

 

한 송이 진달래가 되어
교실 천장 너머 하늘로 날아올랐다

 

엄마가 재봉틀로 지어 준
포플린 치마 앞 부분에

 

커다란 반달주머니 때문에
불룩해 보이던 배도

 

박수 소리 속에서는

쑥 들어가
한결 날씬해진 것 같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진달래꽃 분홍 향기가

어린 나를 따라와

 

나는 오래도록
봄이 되었다

이 작품은 “1956년 학예회라는 구체적 시간과 장소를 통해 개인의 기억을 생생한 감각으로 복원하면서, 동시에 이라는 계절 이미지를 정서의 중심축으로 삼아 성장기 한 순간의 자아 변화를 포착한 서정시입니다.

 

가장 두드러지는 힘은 기억의 현장성입니다. “교실 두 칸을 터 만든 강당”, 이필득 선생님”, “포플린 치마 같은 구체적 사물과 인물의 제시는 단순한 회상이 아니라 당시의 공기를 그대로 재현합니다. 특히 ‘1950년대라는 시대적 배경이 과장 없이 자연스럽게 스며 있어, 개인적 경험이 곧 한 시대의 풍경으로 확장됩니다.

 

또한 이 작품은 진달래이미지를 중심으로 정서의 상승 구조를 잘 설계하고 있습니다. 진달래는 단순한 꽃이 아니라 아이의 목소리, 박수, 그리고 자아의 해방감과 연결되며 점차 상징화됩니다. 한 송이 진달래가 되어 교실 천장 너머 하늘로 날아올랐다는 구절은 현실적 사건(독창 무대)을 심리적 비상(자아의 확장)으로 전환시키는 핵심 장면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몸의 감각 묘사입니다. 앞니가 고운”, “납작한 얼굴”, “불룩해 보이던 배도 쑥 들어가 같은 표현은 들리는지를 보여줍니다. 특히 박수 속에서 몸이 가벼워지는경험은 단순한 기쁨이 아니라, 타인의 인정이 자아 인식을 재구성하는 순간으로 읽힙니다.

 

마지막 연의 나는 오래도록 봄이 되었다는 결말은 이 시의 정서를 잘 응축합니다. 봄은 계절이 아니라 기억된 감정 상태로 전환되며, 한 번의 경험이 평생 지속되는 내면의 계절로 남습니다. 이 부분은 시 전체를 단순한 회상이 아니라 정서의 지속성에 관한 이야기로 격상시킵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을 말하자면, 이미지와 정서가 매우 풍부한 대신 일부 구간에서는 감정의 흐름이 다소 설명적으로 느껴질 수 있습니다. 예컨대 그 한 소절은 입보다 먼저같은 표현은 아름답지만 이미 다른 이미지들이 충분히 감각적으로 전달되기 때문에 약간의 절제가 있었다면 더 긴장감이 살아났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보면, 이 작품은 개인의 첫 무대 경험을 통해 자기 존재가 타인의 시선 속에서 확장되는 순간을 포착한 서정적 기억시로 읽힙니다. 서정, 이미지, 시간 감각이 잘 결합되어 있으며, 마지막 한 줄의 여운이 작품 전체를 오래 머물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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