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4. 봄날의 학예회
부제: —1956년 학예회에서
진달래 피던 봄날
납작한 얼굴의 여자아이
목소리가 크고 맑다는 이유로
앞니가 고운 이필득 선생님이
독창을 시켜 주었다
눈 녹은 산마루마다
분홍빛 소식 번져 가던 때
“진달래 피었구나, 눈 녹은 산에…”
그 한 소절은
입보다 먼저 어린 가슴에서 피어났다
겨우내 웅크렸던 시간들이
작은 몸속에 켜켜이 쌓여 있다가
노래가 시작되자
교실 두 칸을 터 만든 강당 가득
봄물처럼 흘러나갔다
우레 같은 박수
그 순간!
여자아이의 마음은
꽃잎보다 가벼워져
한 송이 진달래가 되어
교실 천장 너머 하늘로 날아올랐다
엄마가 재봉틀로 지어 준
포플린 치마 앞 부분에
커다란 반달주머니 때문에
불룩해 보이던 배도
박수 소리 속에서는
쑥 들어가
한결 날씬해진 것 같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진달래꽃 분홍 향기가
어린 나를 따라와
나는 오래도록
봄이 되었다
이 작품은 “1956년 학예회”라는 구체적 시간과 장소를 통해 개인의 기억을 생생한 감각으로 복원하면서, 동시에 ‘봄’이라는 계절 이미지를 정서의 중심축으로 삼아 성장기 한 순간의 자아 변화를 포착한 서정시입니다.
가장 두드러지는 힘은 기억의 현장성입니다. “교실 두 칸을 터 만든 강당”, “이필득 선생님”, “포플린 치마” 같은 구체적 사물과 인물의 제시는 단순한 회상이 아니라 당시의 공기를 그대로 재현합니다. 특히 ‘1950년대’라는 시대적 배경이 과장 없이 자연스럽게 스며 있어, 개인적 경험이 곧 한 시대의 풍경으로 확장됩니다.
또한 이 작품은 ‘진달래’ 이미지를 중심으로 정서의 상승 구조를 잘 설계하고 있습니다. 진달래는 단순한 꽃이 아니라 아이의 목소리, 박수, 그리고 자아의 해방감과 연결되며 점차 상징화됩니다. “한 송이 진달래가 되어 교실 천장 너머 하늘로 날아올랐다”는 구절은 현실적 사건(독창 무대)을 심리적 비상(자아의 확장)으로 전환시키는 핵심 장면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몸의 감각 묘사입니다. “앞니가 고운”, “납작한 얼굴”, “불룩해 보이던 배도 쑥 들어가” 같은 표현은 들리는지를 보여줍니다. 특히 박수 속에서 몸이 ‘가벼워지는’ 경험은 단순한 기쁨이 아니라, 타인의 인정이 자아 인식을 재구성하는 순간으로 읽힙니다.
마지막 연의 “나는 오래도록 봄이 되었다”는 결말은 이 시의 정서를 잘 응축합니다. 봄은 계절이 아니라 기억된 감정 상태로 전환되며, 한 번의 경험이 평생 지속되는 내면의 계절로 남습니다. 이 부분은 시 전체를 단순한 회상이 아니라 ‘정서의 지속성’에 관한 이야기로 격상시킵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을 말하자면, 이미지와 정서가 매우 풍부한 대신 일부 구간에서는 감정의 흐름이 다소 설명적으로 느껴질 수 있습니다. 예컨대 “그 한 소절은 입보다 먼저…” 같은 표현은 아름답지만 이미 다른 이미지들이 충분히 감각적으로 전달되기 때문에 약간의 절제가 있었다면 더 긴장감이 살아났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보면, 이 작품은 개인의 첫 무대 경험을 통해 ‘자기 존재가 타인의 시선 속에서 확장되는 순간’을 포착한 서정적 기억시로 읽힙니다. 서정, 이미지, 시간 감각이 잘 결합되어 있으며, 마지막 한 줄의 여운이 작품 전체를 오래 머물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