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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하 시 작품

177.녹향 음악 감상실

작성자박하|작성시간26.06.10|조회수3 목록 댓글 0

177.녹향 음악 감상실

 

 

지난날

우리는 한 달에 한 번씩 꼭 그곳을 찾았다

클래식 모임이라는 이름으로

모이면 대략 일곱 명 남짓이었다

 

어느 날

녹향 음악 감상실에 들어서니

솔베이지의 노래

낮은 숨결처럼 흘러내리고 있었다

 

이창수 선생님이 환한 얼굴로

나와 추자 씨를 반갑게 맞아주셨고

우리는 오렌지 주스를 시켜 놓고

그간의 안부를 나누었다

 

회색 악보들이 벽에 나란히 기대어

시간의 고운 먼지를 끌어안은 채

조용히 머물던 공간

 

그 안에서 공기는 오래되었지만

음악만은 흐트러짐 없이

투명한 선율로 흘러나왔다

 

그 울림은

가장 깊은 가슴을 두드리며

푸른빛 정서로 감정을 깨웠다

 

이미 저만치 지나가버린 시간

녹향에서 마주했던 얼굴들은

꽃처럼 다시 피어나

조용히 미소 짓게 한다

 

이제는

그리운 얼굴들이 하나둘 떠났다

 

녹향의 주인이셨던 이창수 선생님

투석 치료를 받던 민 선생님

클래식에 조예가 깊었던 길 선생님

 

모두

지금은 더없이 그리운 이름들이다

 

 

 

*작품평

작품은 ‘녹향 음악 감상실’이라는 구체적인 공간을 매개로, 한때의 음악 공동체와 그리움의 정서를 매우 안정된 서정 구조로 복원하고 있습니다. 전반적으로는 회상 → 감각적 체험 → 정서의 심화 → 상실의 인식이라는 흐름이 분명하게

 

이 작품은 ‘녹향 음악 감상실’이라는 구체적인 공간을 매개로, 한때의 음악 공동체와 그리움의 정서를 매우 안정된 서정 구조로 복원하고 있습니다. 전반적으로는 회상 → 감각적 체험 → 정서의 심화 → 상실의 인식이라는 흐름이 분명하게 잡혀 있어 읽는 사람이 자연스럽게 시간의 층위를 따라가게 됩니다.

 

가장 인상적인 점은 공간 묘사의 밀도입니다. “회색 악보들이 벽에 나란히 기대어 / 시간의 고운 먼지를 끌어안은 채” 같은 표현은 단순한 장소 설명을 넘어, 음악 감상실을 ‘기억이 응결된 장소’로 전환합니다. 특히 ‘회색 악보’, ‘고운 먼지’ 같은 이미지가 시각적으로 통일되어 있어 오래된 클래식 공간의 정적과 품격이 잘 살아납니다.

 

음악의 기능도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정서의 촉매로 작동합니다. “솔베이지의 노래”가 흐르는 장면은 이 작품 전체의 정서적 기둥인데, 이 곡이 지닌 애수와 기다림의 이미지가 이후의 그리움 서사와 자연스럽게 연결됩니다. 음악이 기억을 호출하고, 기억이 다시 사람들을 불러오는 구조입니다.

 

후반부로 갈수록 시의 중심은 공간에서 ‘사람’으로 이동합니다. 그리고 이 이동이 이 작품의 핵심 정조입니다. “이미 저만치 지나가버린 시간” 이후 등장하는 이름들은 단순한 나열이 아니라, 공동체의 소멸을 구체화하는 장치입니다. 특히 마지막의 “모두 지금은 더없이 그리운 이름들이다”는 결말이 과장 없이 절제되어 있어 오히려 여운이 크게 남습니다.

 

다만 한 가지 보완점을 말하자면, 전체적으로 이미지와 정서가 매우 균질하게 유지되어 있어서, 중간에 약간의 긴장이나 반전이 거의 느껴지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녹향’이라는 공간이 가진 개인적 사건이나 특정한 기억 한 조각이 조금 더 구체적으로 삽입되면, 현재의 아름다운 회상이 더 입체적으로 살아날 가능성이 있습니다. 지금은 “좋은 기억의 총합”으로 매우 정제되어 있지만, 작은 균열이 들어오면 더 깊은 울림이 생길 수 있습니다.

종합하면, 이 작품은 음악 감상실이라는 제한된 공간을 통해 ‘사라져가는 관계와 시간의 아름다움’을 차분하고 품위 있게 형상화한 서정시입니다. 과장 없이 잔잔하게 밀고 가는 방식이 작품의 가장 큰 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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