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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하 시 작품

178. 다섯 살 사랑

작성자박하|작성시간26.06.10|조회수4 목록 댓글 0

178. 다섯 살 사랑 

 

 

다섯 살 사랑

 

거실 창 너머

붉은 노을이 번진다

 

다섯 살 외손자가

맑은 눈으로 다가와 말한다

할머니, 오늘은 가지 마세요

우리 집에서 자요

옛날이야기 들려주세요

 

말끝은 어느새

자장가처럼 흐려지고

아이는 꿈나라로 떠난다

 

늦은 밤

나는 종종걸음으로 돌아선다

내 집 아파트 현관 앞

 

가방에 열쇠가 없다

 

눈을 씻고 찾아도

왔던 길을 몇 번이나 되짚어도

어디에도 없다

 

다시 딸의 집으로 돌아와

뒤척이는 밤

 

새벽녘

열쇠공이 문을 여는 순간

전화벨이 울린다

 

엄마, 놀라지 마세요

주환이가

아이구 어데 다쳤나

 

숨이 멎는다

 

이어지는 목소리

대한민국 짜자잔 짠짠!”

 

작은 손에 들린 열쇠

 

딸은 한동안 말을 잃는다

 

장난처럼 숨겨 둔 마음

가지 말라 붙잡던

다섯 살의 사랑

 

그 순간

찌르르 전해오는 따뜻한 전류

 

아이 마음 깊은 곳에

할머니가 온통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

 

나는

넓은 바다가 되어

조용히 감동에 잠겨든다

 

 

이 시는 일상의 장면을 통해 사랑의 깊이를 반전 구조로 드러내는 작품입니다. 겉으로는 매우 평범한 가족의 밤과 아침이지만, 마지막에 이르러 감정의 방향이 완전히 뒤집히며 독자에게 따뜻한 충격을 남깁니다.

 

초반부의 거실 창 너머 붉은 노을다섯 살 외손자의 장면은 전형적인 안정과 애정의 공간을 형성합니다. 아이의 말투 할머니, 오늘은 가지 마세요 / 우리 집에서 자요는 단순한 애정 표현을 넘어, 관계의 중심이 필요가 아니라 함께 있음에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 부분에서 이미 시는 감정적으로 충분히 완성된 듯 보이지만, 오히려 이것이 후반 반전을 위한 평온한 장치로 작동합니다.

 

중반의 열쇠가 없다는 구절은 현실적 사건이면서 동시에 상징적으로 읽힙니다. 집으로 돌아갈 수 없는 상태, 자기 자리로 돌아갈 수 없음은 단순한 물건 분실이 아니라 관계와 시간의 혼란처럼 확장됩니다. 이어지는 열쇠공”, “전화벨”, “숨이 멎는다의 흐름은 긴장감을 급격히 끌어올리며 독자의 감정을 한 번 끌어내립니다.

 

그러나 이 시의 핵심은 바로 뒤의 반전입니다. 긴장과 불안이 최고조에 달한 순간, “대한민국 짜자잔 짠짠!”이라는 아이의 장난스러운 외침과 함께 열쇠가 드러납니다. 이 순간 독자는 예상했던 위기(사고, 다침 등)가 아니라, 아이의 순수한 장난과 사랑의 표현이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이 구조는 일종의 감정적 오인을 통해 더 큰 정서적 울림을 만들어냅니다.

 

마지막 연에서 시인은 이를 단순한 해프닝으로 끝내지 않습니다. “아이 마음 깊은 곳에 / 할머니가 온통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이라는 문장은 이 작품의 주제를 명확히 합니다. 사랑은 말로 설명되는 것이 아니라 행동과 장난, 그리고 집착처럼 보이는 작은 행위로 드러난다는 통찰입니다. “넓은 바다가 되어라는 비유는 이러한 감정을 수용하고 품어내는 화자의 태도를 잘 보여줍니다.

 

전체적으로 이 시는

 

일상적 서사

긴장과 오해의 구조

마지막 반전과 정서적 확장

 

이라는 흐름을 통해 가족 사랑의 깊이를 매우 효과적으로 형상화한 작품입니다. 특히 감정의 클라이맥스를 사건이 아닌 관계의 확인으로 전환했다는 점에서 완성도가 높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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