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9.동촌국민학교 월사금과 병아리
1953년 4월 초
도시락만 한 흰 손수건을
가슴에 달고
나는 동촌국민학교에 입학했다
벚꽃이 구름처럼 피어
운동장이 환하던 날
엄마는 꼬깃꼬깃한 월사금을
신주머니 깊숙이 넣어주며 말했다
“선생님께 곧장 드려라.”
나는 그 말을 품고
한복 입은 여선생님을 찾아
운동장을 서성였지만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그때였다
갑자기 소변이 마려워
측백나무 옆 변소로 뛰어가며
검정 저고리 치마의 아이에게
잠시 신주머니를 맡겼다
짧은 바람 한 줄기 지나고
다시 나왔을 때
그 아이는
바람처럼 사라지고 없었다
나는 울먹이며 말했다
“월사금 든 신주머니를
여자애한테 맡겼는데… 없어졌어요.”
선생님은 아이들을 운동장에 세웠다
검정 한복 입은 여자아이들
서로의 그림자처럼 서 있었다
“야 다.”
“아니다.”
“야 다.”
“아니다.”
봄볕 아래
아니다 대답은 자꾸 쌓여가고
월사금은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어린 어깨 위에
태산 같은 걱정이 얹혔다
엄마는
나를 조용히 안았다
“우리 영아가 아직 어려서 그렇구나.”
그날 이후
나는 집 기둥에 묶여
마당 안에서만 놀게 되었다
끈 끝에서 멈춰 선 자리
닭장 옆에서 병아리를 보았다
엄마닭 뒤를 종종 따라다니는
노란 생명들
개나리 빛 닮은 작은 몸
물 한 모금 마시고
하늘 올려다보는 눈
삐약삐약
노래가 마당을 채우고
나는 그 소리에 기대어
사라진 월사금의
서운함도 잊었다
나는 병아리들과 함께
마당의 봄 축제 속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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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개인적 기억을 출발점으로 하면서도, 1950년대 초등학교 입학 경험과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 그리고 어린 시절의 상실감과 치유 과정을 함께 담아낸 서정 산문시입니다. 전체적으로는 “사건 → 상실 → 질서 있는 추궁 → 귀환 불가능한 결손 → 자연 속 치유”의 흐름을 갖고 있어 서사성과 시성이 균형 있게 결합되어 있습니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구체적인 시대성과 생활감각입니다. “1953년 4월”, “동촌국민학교”, “월사금”, “도시락만 한 흰 손수건”, “신주머니” 같은 디테일이 당시의 교육 현실과 생활 문화를 매우 선명하게 복원합니다. 이런 구체성 덕분에 작품은 단순한 회상이 아니라 역사적 체온을 가진 기억으로 읽힙니다.
핵심 갈등은 월사금이 사라지는 사건이지만, 이 사건은 단순한 도난 서사가 아니라 어린 화자의 세계가 처음으로 ‘불신과 책임의 세계’로 진입하는 순간으로 기능합니다. 아이는 선생님에게 전달해야 한다는 “규칙”과, 순간의 생리적 필요(소변) 사이에서 균열을 겪고, 그 틈에서 상실이 발생합니다.
이 구조는 매우 정교합니다. 책임의 언어와 몸의 언어가 충돌하는 장면이기 때문입니다.
“야 다 / 아니다”로 반복되는 장면은 이 작품의 핵심 리듬입니다. 단순한 조사 과정이 아니라, 집단 속 익명성, 그리고 아이들의 서로를 향한 무력한 방어 반응을 드러냅니다. 반복이 쌓일수록 진실이 밝혀지기보다 오히려 공허가 강화되는 방식도 인상적입니다.
이후의 전개에서 중요한 변화는, 상실의 문제가 사회적 차원에서 해결되지 않고 가정의 보호와 제한으로 전이된다는 점입니다. “집 기둥에 묶여 / 마당 안에서만 놀게 되었다”는 표현은 단순한 벌이 아니라, 세계의 축소를 상징합니다. 바깥 세계의 불확실성 이후, 내부 세계가 안전하지만 제한된 공간으로 바뀌는 구조입니다.
그런데 이 작품의 가장 아름다운 부분은 마지막 전환입니다. 병아리의 등장 이후 화자는 상실을 “해결”하지 않고 다른 생명으로 감정의 방향을 이동시킵니다. “개나리 빛 닮은 작은 몸”, “삐약삐약” 같은 감각적 이미지가 상실의 기억 위를 덮으며, 완전한 회복이 아니라 “완화된 공존”의 상태를 만듭니다. 즉, 잃어버린 돈은 돌아오지 않지만 세계는 다른 방식으로 다시 살아납니다.
문장 구성 측면에서는 산문시 특유의 호흡이 잘 유지되고 있고, 장면 전환이 자연스럽습니다. 특히 과거 회상의 흐름이 끊기지 않고 정서적으로 이어지는 점이 장점입니다. 다만 한 가지 더 강화될 수 있는 지점이 있다면, 사건 이후 감정의 해석이 비교적 명확하게 제시되는 부분에서 독자의 여백이 조금 줄어든다는 점입니다. 마지막 “치유”의 결론이 이미 설명되어 있기 때문에, 일부 감정은 더 암시적으로 남겨도 여운이 더 깊어질 수 있습니다.
종합하면 이 작품은
“어린 시절의 작은 사건을 통해 상실, 책임, 죄의식, 그리고 자연적 회복으로 이어지는 정서의 성장 서사”로 읽히며, 특히 구체적 시대 배경과 감각적 이미지가 매우 강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