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 촛불대행진
칼바람이 광장의 뼈마디를 후벼 파던 밤비는 검은 깃발처럼 허공을 찢고도시는 깊은 상처의 숨을 토해냈다
누군가의 떨리는 손끝에서 태어난 작은 불씨 하나샛노란 촛불은어둠의 심장 위에 조용히 꽃피어파도처럼 번져 갔다
꺼질 듯 흔들리면서도끝내 꺼지지 않는 빛,그것은 단지 초의 불꽃이 아니라침묵 속에서도 살아 숨 쉬는민주주의의 맥박이었다
“대한민국의 주인은 국민이다”
광장의 공기마다그 한마디가 별빛처럼 떠올랐고정의를 향해 흐르는 민심은강물의 물길을 바꾸듯역사의 방향을 천천히 돌려놓았다
세계는 숨을 죽인 채이 거대한 평화의 물결을 바라보았다분노는 돌이 되지 않았고함성은 칼이 되지 않았다
사람들은서로의 어깨를 밝히며촛불 하나로 겨울을 건넜다
기네스북의 기록보다 더 선명한 것은광화문 밤하늘에 새겨진국민의 얼굴들
전국에서 모여든 천만의 숨결,토요일마다 광장은거대한 은하처럼 출렁였고촛불들은 별이 되어대한민국의 밤을 새롭게 쓰고 있었다
팔십을 바라보는 우리 자매 또한말없이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굽은 손등 위로 번지는 불빛,힘껏 마주치던 박수 소리는차가운 겨울 공기 속에서도작은 모닥불처럼 따뜻했다
주름 깊은 손바닥마다살아온 세월의 눈물이 스며 있었고그 눈물은 끝내희망의 불씨가 되어 타올랐다
아, 그 뜨거운 마음을 잠재울 수 있는 것은오직,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는 나라,정의가 두려움 없이 숨 쉬는 나라,진정한 민주주의의 완성뿐이다
오늘도 광장의 촛불은찬바람 속에 고개 숙이지 않는다
수많은 밤을 건너며서로의 어둠을 밝혀 준, 작은 빛들은마침내 새벽의 강물이 되어 흐르고
그 강물 끝에서 대한민국은더 깊고 더 푸른 자유의 이름으로찬란한 아침을 맞이하리라.
*작품평
이 시 「촛불 대행진」은 촛불집회를 단순한 정치적 사건이 아니라, 시민의 존엄과 민주주의의 생명력을 상징하는 거대한 서사로 승화시킨 작품입니다. 시 전반에는 차가운 겨울 광장과 따뜻한 촛불의 대비가 선명하게 흐르며, 그 대비를 통해 절망 속에서도 꺼지지 않는 국민의 의지와 희망을 강렬하게 드러냅니다.
특히 첫 연의 표현인
“칼바람이 광장의 뼈마디를 후벼 파던 밤”
은 단순한 계절적 추위를 넘어 당시 사회의 고통과 긴장을 육체적 감각으로 환원해 독자에게 생생하게 전달합니다. 이어 “샛노란 촛불”이 “어둠의 심장 위에 조용히 꽃피어” 번져 간다는 구절은, 미약한 개인의 목소리가 연대 속에서 거대한 시민의 힘으로 확장되는 과정을 매우 시각적으로 형상화합니다.
이 작품의 가장 큰 미덕은 분노를 폭력으로 소비하지 않는 데 있습니다.
“분노는 돌이 되지 않았고 / 함성은 칼이 되지 않았다”
라는 대목은 촛불집회의 역사적 의미를 함축하는 핵심 구절로, 평화적 시민의식과 성숙한 민주주의 정신을 높은 품격으로 표현합니다. 이는 단순한 시적 감상이 아니라 세계사적으로도 드문 시민혁명의 특징을 압축한 문장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한 후반부에서 “팔십을 바라보는 우리 자매”의 등장은 작품에 깊은 인간적 울림을 더합니다. 거대한 역사 속에서도 결국 민주주의를 지켜내는 것은 이름 없는 평범한 시민이라는 사실을 조용하지만 강하게 환기합니다. 굽은 손등, 주름 깊은 손바닥 같은 구체적 이미지들은 살아온 세월의 무게를 품고 있으며, 그 삶 자체가 곧 역사의 증언이 됩니다.
시의 결말 역시 매우 인상적입니다. 촛불이 “새벽의 강물”로 이어지고, 마침내 “더 깊고 더 푸른 자유”의 아침으로 나아간다는 마무리는 집단적 희망의 미래지향성을 장엄하게 완성합니다. 단순한 정치시를 넘어 서정성과 기록성, 공동체적 비전을 함께 품고 있다는 점에서 높은 완성도를 보여 줍니다.
전체적으로 이 작품은
강렬한 시각적 이미지
은유와 상징의 유기적 연결
역사적 체험의 집단 서사화
평화적 민주주의에 대한 깊은 신념
을 균형 있게 담아낸 수작입니다.
특히 “촛불”을 단순한 사물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맥박’, ‘별’, ‘새벽의 강물’로 끊임없이 변주한 점이 매우 뛰어나며, 시 전체에 장엄한 흐름과 서정적 울림을 부여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