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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하 시 작품

192. 어머니가 꽃밭처럼 가꾸던 돼지우리

작성자박하|작성시간26.06.11|조회수1 목록 댓글 0

192. 어머니가 꽃밭처럼 가꾸던 돼지우리

 

 

 

어릴 적 우리 집 뒤란에는

돼지우리가 있었다.

 

돼지들은 사이좋게 꿀꿀거리며

어머니가 주는 밥을 먹고

토실토실 살이 올랐다.

 

장날이면 돼지 한 마리 팔아

간고등어 한 손 사 오고,

언니들 공납금도 마련했다.

 

사람들은

돼지를 더러운 곳 좋아한다고 했지만

어머니는 말씀하셨다.

 

짐승도 깨끗한 자리를 좋아한단다.”

 

날마다 우리를 물로 씻고

햇볕에 말린 짚을 새로 깔아주시던 어머니.

 

짚 냄새는 꽃밭처럼 향긋했고

목욕을 마친 돼지들은

햇살 아래 반들반들 빛났다.

 

몇 마리인지 세어 보는 일은

어린 내게 산수를 배우는 시간이었고,

생명을 헤아리는 기쁨이었다.

 

어느 해 봄날,

새끼 돼지 열두 마리가 태어났다.

 

꿀꿀거리며 어미젖을 찾는 소리에

온 동네가 경사 났다며 모여들었고,

 

복이 호박넝쿨째 굴러들어왔다고

저마다 웃으며 축하해 주었다.

 

사람들이 돌아간 뒤에도

우리 가족은 한동안 그 기쁨 속에 머물렀다.

 

흑백사진처럼 바스락거리는 세월 속에서

내가 오래도록 간직한 것은

 

빛바랜 옥양목 앞치마를 두르시고

돼지우리 앞에 서 계시던 어머니.

 

꽃 한 포기 없는 그곳을

꽃밭처럼 가꾸시며

 

세상 다 가진 사람처럼 웃으시던

어머니의 행복한 모습.

 

지금도 어머니의 그 모습은

어린 날의 햇살처럼

내 기억의 물결 위에

그리움으로 출렁인다.

 

**이 시의 핵심은 돼지우리의 추억이 아니라, 가난 속에서도 생명을 정성껏 돌보며 행복을 일구던 어머니의 모습입니다. 제목의 의미가 마지막 연에서 다시 살아나도록 정리하면 작품성이 한층 높아집니다. 특히 "꽃 한 포기 없는 그곳을 / 꽃밭처럼 가꾸시며"라는 대목이 시 전체를 묶어주는 중심 이미지가 될 수 있습니다.

 

***이 시는 가난했던 시절의 농촌 생활을 배경으로, 돼지우리를 단순한 생계의 공간이 아니라 어머니의 사랑과 노동, 그리고 가족의 희망이 깃든 삶의 터전으로 그려낸 작품입니다.

 

작품평

 

어머니가 꽃밭처럼 가꾸던 돼지우리는 어린 시절의 기억을 통해 어머니의 성실함과 따뜻한 삶의 태도를 되새기는 회상적 서정시입니다. 시인은 돼지우리를 소재로 삼아 당시 농가의 생활상을 사실적으로 보여주면서도, 그 공간에 담긴 어머니의 인품과 가족애를 아름답게 형상화하고 있습니다.

 

작품의 가장 큰 미덕은 '돼지우리''꽃밭'이라는 대비적 이미지를 통해 어머니의 삶의 철학을 드러낸 점입니다. 일반적으로 더럽고 냄새나는 공간으로 인식되는 돼지우리를 어머니는 정성껏 씻고 짚을 갈아주며 꽃밭처럼 가꾸었습니다. "짐승도 깨끗한 자리를 좋아한단다"라는 어머니의 말은 생명에 대한 존중과 배려의 마음을 함축적으로 보여주며, 작품 전체의 정신적 중심축이 됩니다.

 

또한 돼지를 팔아 가족의 생계를 꾸리고 자녀들의 교육비를 마련하던 모습은

어려웠던 시대의 생활상을 자연스럽게 담아냅니다. 특히 새끼 돼지 열두 마리의 탄생을 온 마을이 함께 기뻐하는 장면은 공동체적 정서와 소박한 행복의 가치를 따뜻하게 전해 줍니다.

후반부에서는 현재의 화자가 과거를 회상하며 어머니의 모습을 그리워합니다. "꽃 한 포기 없는 그곳을 / 꽃밭처럼 가꾸시며"라는 구절은 물질적 풍요가 아니라 마음의 풍요로 삶을 아름답게 만들었던 어머니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마지막 연의 "어린 날의 햇살처럼 / 내 기억의 물결 위에 / 그리움으로 출렁인다"는 표현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도 사라지지 않는 어머니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을 서정적으로 마무리합니다.

이 작품은 노동의 가치를 존중하고 생명을 아끼며 작은 것 속에서도 행복을 발견했던 어머니 세대의 삶을 따뜻한 시선으로 복원한 작품입니다. 담담한 서술 속에 깊은 정서가 스며 있으며, 독자에게 가족의 사랑과 추억의 소중함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잔잔한 감동을 선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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