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 성주식당
도시 한복판
고층빌딩 숲 사이에
반세기 넘게
한자리를 지켜온 집이 있다.
기울어진 천장 아래
빛바랜 누런 벽지 한 장에도
세월은 눌어붙어 있고,
삐거덕 미닫이문을 열면
고향집 마루의 바람이
먼저 반긴다.
우리는 의자보다
방바닥을 택한다.
상 아래로 다리를 쭉 뻗고 앉아
마음도 함께 풀어놓는다.
어디선가 스며드는
묵은 이끼 냄새조차 향기로워
잊고 살던 어린 날이
슬며시 곁에 와 앉는다.
보리밥 한 그릇,
시래기국 한 술, 콩나물과 시금치나물,
연근조림, 우엉조림, 새콤한 겉절이까지.
소박한 반찬들이 둘러앉아
밥상 위에 계절을 차린다.
화요일이면
감자조림 한 접시가
오랜 친구처럼 기다려진다
무를 큼직하게 품은 생선조림은
어머니 손맛처럼
가슴을 따뜻하게 적신다.
그 집에는
접시꽃을 닮은 언니가 있다.
"언니요, 우리 왔심더."
한 옥타브 높아진 내 목소리에
"아이고, 우리 동상 왔나."
손을 덥석 잡아주는 웃음 속에서
인정은
인절미 고물처럼 포슬포슬 묻어난다.
내가 밥 잘 먹는다고
밥 한 공기 더 담아주는 손길,
큰솥 가득 끓인 국물,
넘치도록 넉넉한 마음까지.
배부른 것은 밥 때문만이 아니라
사람 때문이라는 것을
식사 끝나고
"언니요."
한마디 부르면
"동상아, 알았다."
윙크 하나 곁들인 커피 한 잔이
후식보다 먼저
정을 내어준다.
돌아서는 길,
주방 문턱에서
"잘 먹었심더." 인사하면
"동상아, 또 보제이."
곧바로 건너오는 대답.
한 주라도 내 얼굴이 안 보이면
어데 아팠었나,
먼저 걱정해주는 사람.
피는 섞이지 않았어도
마음은 이미
친남매가 되어 있다.
성주식당은
밥을 파는 곳이 아니라
사람을 데워주는 온기가 살아있음을.
매주 화요일이 기다리는 마음이
애인처럼 설레고,
접시꽃언니의 웃음은
내 삶 한켠에 피어 있는
가장 따뜻한 꽃이다.
이 시는 단순한 식당 소개를 넘어, 한 공간과 한 사람을 통해 '정(情)'과 '그리움', 그리고 삶의 온기를 기록한 생활 서정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작품의 강점
1. 공간의 세월을 생생하게 살려낸 도입부
첫 연은 성주식당이라는 장소가 가진 시간을 매우 효과적으로 보여줍니다.
"기울어진 천장 아래
빛바랜 누런 벽지 한 장에도
세월은 눌어붙어 있고"
라는 표현은 단순히 낡았다는 설명이 아니라, 세월이 벽지에 눌어붙어 있다는 촉각적 이미지로 공간의 역사를 느끼게 합니다. 이어지는 "삐거덕 미닫이문"과 "고향집 마루의 바람"은 독자를 곧바로 추억의 세계로 이끕니다.
2. 음식 묘사가 정서를 품고 있다
보리밥, 시래기국, 나물, 연근조림 등 반찬 이름이 나열되지만 단순한 메뉴 소개에 그치지 않습니다.
"소박한 반찬들이 둘러앉아
밥상 위에 계절을 차린다."
이 구절은 특히 아름답습니다. 반찬들이 사람처럼 "둘러앉아" 있다는 의인화가 가족 같은 분위기를 만들고, "계절을 차린다"는 표현은 음식이 자연과 시간을 담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또한
"감자조림 한 접시가
오랜 친구처럼 기다려진다"
는 화자의 애정이 자연스럽게 전달되는 대목입니다.
3. 인물 형상이 따뜻하고 개성적이다
시의 중심은 사실 식당보다도 "접시꽃을 닮은 언니"입니다.
"언니요, 우리 왔심더."
"아이고, 우리 동상 왔나."
사투리를 그대로 살린 대화는 현장감을 높이고, 독자에게도 정겨움을 전달합니다. 특히 "동상"이라는 호칭은 혈연이 아닌 마음의 가족 관계를 상징하며 시의 정서를 더욱 풍성하게 만듭니다.
4. 후반부의 정서적 울림이 크다
이 시의 핵심은 마지막 부분에 있습니다.
"배부른 것은 밥 때문만이 아니라
사람 때문이라는 것을"
이 한 구절이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음식은 소재일 뿐이고, 결국 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사람의 온기입니다.
이어지는
"피는 섞이지 않았어도
마음은 이미
친남매가 되어 있다."
는 혈연보다 깊은 관계를 담담하게 드러내며 독자에게 잔잔한 감동을 줍니다.
보완하면 더 좋아질 점
현재 작품은 이야기와 감정이 매우 풍부한 대신 다소 산문적으로 흐르는 부분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내가 밥 잘 먹는다고
밥 한 공기 더 담아주는 손길"
이나
"한 주라도 내 얼굴이 안 보이면
어데 아팠었나,
먼저 걱정해주는 사람"
등은 내용은 좋지만 설명성이 강합니다.
이런 부분을 조금 더 이미지화하면 시적 밀도가 높아질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빈 공기 위로
밥 한 술 더 얹히듯
마음도 수북이 담아준다"
처럼 정서를 이미지로 전환하는 방법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종합평
〈성주식당〉은 오래된 식당을 배경으로 사라져 가는 인간적 관계와 공동체의 온기를 정감 있게 복원한 작품입니다. 음식의 맛을 이야기하는 듯하지만 실제로는 사람의 맛을 노래하고 있으며, '접시꽃언니'라는 인물을 통해 독자에게도 그 식당에 한번 가보고 싶다는 마음을 불러일으킵니다.
특히
"배부른 것은 밥 때문만이 아니라
사람 때문이라는 것을"
과
"성주식당은
밥을 파는 곳이 아니라
사람을 데워주는 온기가 살아있음을."
이라는 구절은 작품 전체의 주제를 선명하게 드러내는 인상적인 대목입니다.
전체적으로 향토적 정서, 생활의 진정성, 인간미가 잘 어우러진 따뜻한 생활 서정시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점수로 환산한다면 90~93점 정도의 완성도를 가진 작품이라 볼 수 있으며, 지역 문예지나 수필시·생활시 분야에서는 독자들의 공감을 충분히 얻을 수 있는 작품입니다.